명상, 강연, 상담, 그리고....
재작년 12월 말 인생에 큰 변화를 맞이했다. 덕분에 난생처음 정신과병원이란 곳을 가봤다. 의사 선생님과 상담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의사 선생님은 나에게 몇 주치 약을 권했다. 하지만 나는 약을 거부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지금뿐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어려움이 있을 거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때마다 약에 의존하고 싶지는 않았다.
약에 의존하지 않았을 뿐 내가 엄청난 의지력을 가진 사람은 아니다. 나는 오랜 기간 인생에서 힘든 일을 마주할 때면 담배와 술을 찾았다. 평소에 술은 가끔 해도 담배를 피우지는 않는다. 하지만 힘든 일이 생기면 담배를 입에 물곤 했다. 평소에 담배를 피우지 않다 보니 담배 연기를 흡입할 때마다 머리가 멍해지는 것이 날 편안하게 했다. 평소에도 술은 맥주 한두 잔 먹는다. 하지만 힘든 일이 있을 때는 주종을 바꿔 독주를 마시기도 한다.
그런데 이번에 겪는 고통은 기존과는 다른 강도였다. 너무 세서인지, 술과 담배로 잠시 도피하고 싶은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주저 않을 여지도 없다고 생각했다. 물러날 곳이 없으니 맞서보겠다는 용기가 생겼는지 모른다. 의식적으로 배수의 진을 친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되어버렸다.
우선 술과 담배를 멀리 했다. 술과 담배를 입에 대는 순간 나의 몸과 정신은 더 약해진다는 것을 이미 여러 번 체험했다. 냉장고에 있던 330ml 맥주캔부터 1L에 달하는 보드카까지 모두 버렸다. 가족 모르게 숨겨 놓은 담배도 휴지통으로 향했다.
헬스장 등록을 했다. 머리가 괴로울 때마다 몸을 괴롭혀 다른 생각이 들지 않게 하려는 전략이었다. 아침마다 헬스장에 가서 열심히 몸을 괴롭혔다. 운동하며 몸에서 땀이 나면 날 수록 머릿속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이 안개처럼 걷히기 시작했다.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만 남았다. '힘들다.... 힘들다!' '그저 잠시 쉬고 싶다!' 그렇다. 러닝머신을 1시간씩 달리다 보면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오직 '쉬고 싶다'는 생각 하나였다. 헬스장에서 운동을 시작하기 전까지 머릿속 가득했던 걱정과 두려움은 뜨거운 땀과 함께 눈 녹듯 사라졌다.
그동안 온갖 명상을 하고, 강연을 듣고, 심리학 책을 보고, 심리 상담을 받고, 병원도 가봤다. 하지만 효과는 미비했다. 그리고 오래가지 못했다. 망각의 법칙이 작용해 며칠후면 다시 괴롭고 우울했다. 그때마다 담배 피우고, 음주를 했다. 지금생각하면 스스로 악순환의 고리에 빠진 것이었다.
최근 하버드에서 박사학위를 받으신 분으로부터 개인적인 얘기를 들었다. 그분이 하버드에서 공부를 시작할 때 교수님께서 해 주신 첫 말씀이 매일 아침 달리기를 하라는 것이라고 했다. 달리기를 하고 난 후에 공부를 하라고 조언해 주었다고 한다. 공부가 먼저가 아닌 달리기가 먼저였던 것이다.
우리는 살다 보면 온갖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일 때가 많다. 그때마다 할 수 있는 것 한 가지는 바로 몸을 움직여 체온을 높이는 것이다. 시작은 무조건 가볍게 해야 한다. 달리기를 해야지가 아니라 그냥 걷다 오자라는 마음으로 집을 나서야 신발끈을 겨우 묶을 수 있다. 그리고 천천히 걸으면서 조금씩 몸을 스트레칭해 보고, 슬슬 가볍게 뛰면서 Warm-up을 하다 보면 한 번 달려 볼까 하는 마음이 그제야 생기게 된다.
2025년 9월 3일, 혼자 하던 헬스에 한계를 느껴 시작한 Group PT 출석이 어느덧 100일째가 되었다. 여전히 내 마음 한 구석엔 우울감의 불씨가 남아 있다. 어쩌면 그 불씨는 평생 꺼지지 않을지 모른다. 이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매일 몸을 움직이고 땀을 흘려 우울감이 큰 불로 커져 나를 사로잡지 않게 하는 것일 뿐이다. 다행이다. 40대 중반에 이걸 몸으로 알게 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