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심(童心)

by 노용기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면서 한 번쯤 해보고 싶었던 일이 있었다. 바로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의 일일교사가 되는 것이다. 학창 시절 친구의 아버지가 일일교사로 수업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나는 그 친구를 쳐다보며 부러워했었다. 사실 부럽다기보다, '저 친구는 얼마나 아빠가 자랑스러울까?'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게 더 정확한 내 마음이었던 것 같다. 나 역시 우리 딸에게 자랑스러운 아빠이고 싶었다. 그래서 육아휴직을 하고 어린이집 일일교사에 도전해 본 것이다. 사실 거창하게 '도전'이라는 말을 하기에 어린이집에서 하루 교사로 활동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함께 밥을 먹어주고 하는 것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 조차 처음 해보는 나에게는 두려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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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내가 책을 읽을 때, 내 얘기는 듣지 않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면 어떡하지?'

'딸아이의 같은 반 친구들이지만, 대부분 처음 보는 아이들인데 같이 밥 먹을 때 어색하지는 않을까?'

'혹시 내가 실수해서 아이를 울리면...?'


막상 어린이집에 일일교사를 호기롭게 신청은 해 놓았는데, 어린이집에 가는 발걸음은 가볍지 않았다.


'띵동'

초인종을 누르고 어린이집 로비로 들어섰다.

"어서 오세요 아버님, 3층으로 올라가시면 됩니다."

"예 감사합니다."

나는 엉거주춤 인사를 하고 3층으로 조심스럽게 올라갔다.


2층으로 올라가자 내 무릎 높이 정도의 외양간에서나 쓸만한 여닫이 문이 가로막고 있었다.

나는 손을 문 위로 넣고 걸쇠를 풀었다.

그리고 문은 연 다음 다시 걸쇠를 잠갔다.

그때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빠~!"

둘째 아들의 목소리다.

갑자기 저 끝에서 넘어질 듯 달려와 나에게 와락 안긴다.

나는 아들을 덥석 들어 360도 한 바퀴를 돌고 얼굴에 뽀뽀를 하였다.

"아들~!"

"아빠~!"

이산가족 상봉하듯 우리는 서로를 얼싸안고 좋아했다. 아이는 가녀린 팔로 나의 가슴을 있는 힘껏 끌어안았다. 집에서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아들의 힘이었다.

'얘가 그래도 어린이집에서 아빠 봤다고 더 좋아하네... 하하'

"잘 놀고 있었어?"

"응"

"아이고 사랑해 아들... 근데, 아빠가 위에 가서 누나 좀 보고 올게"

너무 일찍 어린이집에 가면 조금은 뻘쭘할 것 같아 거의 시간 맞춰 도착했기에 늦지 않으려면 어서 한 층 더 올라가야 했다. 그런데 순간 아이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그리고 얼굴이 뻘게 지면서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한다.

"안돼~~~!"

아이는 나를 더 세게 끌어안았다. 옆에서 선생님이 와서 아이를 떼어 놓으려고 했다. 아이는 강한 완력으로 나의 옷깃을 붙잡았다. 평소에 잘 안 먹어서 살도 안 찌는 아이가 그렇게 강한 손 힘이 있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미안해 아들. 아빠가 다음에는 영준이 반 일일 교사할게."

우는 아이를 간신히 뿌리치고 한 계단 더 올라갔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이명처럼 남아 귓가를 맴돌았다. 우는 모습이 너무 애처로워 둘째부터 먼저 일일교사 신청할걸 그랬나 잠깐 후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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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둘째와 작별을 하고 3층으로 올라갔다. 잠시 어린 시절 한 층마다 왕을 한 명씩 깨고 올라가는 이소룡이 나왔던 게임의 주인공이 된 느낌이었다. 3층에 올라가자 아이들은 선생님이 읽어 주는 책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선생님께 인기척을 하고 인사를 나눈 뒤, 선생님께서 나를 아이들에게 소개하여 주었다.

"친구들, 오늘은 OO이 아빠가 여러분들의 선생님이 되어주실 거예요."

소개를 마치고 선생님은 나에게 대신해서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 달라고 하였다. 책을 받자마자 제목을 보았다.

'아차~ 내가 모르는 책이다.'

갑자기 얼굴이 화끈 거리는 것이 느껴지면서 긴장감이 몰려왔다. 어린이 집에서 책을 읽어 줄 때 아이들의 눈을 마주치고 책은 아이들이 볼 수 있도록 펼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집에서는 항상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읽었기 때문에, 나는 연습이 되어 있지 않았다. 책을 받아 들고 아이들을 한 번 쳐다보았다. 20명 남짓한 아이들이 눈이 마치 무대 위 서치라이트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순간 눈앞이 하얘지고 아이들의 얼굴만 희미하게 보였다. 마음속으로 기도를 하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평소처럼 하자. 평소처럼...'


나는 딸아이의 얼굴을 쳐다보며 평소처럼 큰 목소리로 읽어 나갔다. 책 내용 중에 혹시 아이들이 이해 안 될 것 같은 내용이 있으면 상황을 다시 한 번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가끔씩 아이들에게 질문도 하고, 질문에 답한 아이들을 칭찬해주며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지루한 부분에서 한 두 명의 아이들이 일어나서 어딘가로 향하는 것 같았다. 다행히 그때마다 선생님이 제지를 해 주었다.

'이 녀석들 억지로 듣고 있는 건 아니겠지?'

순간 이런 마음이 들어 잠시 고개를 아이들 쪽으로 향했다. 다행히 아이들은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듣고 있었다. 다행이었다. 등골에 땀이 흐르는 듯했지만 무사히 한 권의 책을 다 읽었다. 그리고 잠시 한숨을 돌리고 있는데, 옆에서 불쑥 책 한 권이 내 시야로 들어왔다.

"아버님 잘 읽으시네요. 한 권만 더 읽어 주세요."

선생님은 상냥한 미소를 띠며 나에게 또다시 내가 모르는 책 한 권을 건넸다.

"아~ 예, 선생님, 알겠습니다."


나는 다시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책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앞에서 읽었던 책과 스토리는 다른데 주제는 동일한 것 같았다. 다르게 생긴 친구들을 이해하고 배려해야 한다는 내용 같았다.

'나도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건 잘 안 되는 부분인데, 요즘엔 어린이들에게 이런 것을 가르치나 보군.'

어린이집에서 좋은 책을 잘 선정해서 구비해 놓은 것 같아 더 믿음이 갔다.


중간에 조금 버벅거리기는 했지만, 걱정과 달리 아이들 모두 내 질문에 적극적으로 대답도 하고 집중해서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우리 딸은 그 아이들 틈에서 걱정스러운 눈빛과 입가에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알 수 없는 이중적인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잠시 틈을 이용해 딸에게 다가가 물었다.

"아빠 잘했어?"

"응, 잘했어."

둘째와 달아 첫째는 조금은 부끄러운 듯 몸을 비비 꼬며 나의 품에 안기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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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시간이 흘러 점심식사시간이 되었다.

아이들과 조그만 식탁에 둘러앉았다. 마치 소인국의 걸리버가 된 느낌으로 아이들 사이에 앉았다. 딸아이는 내가 보이지 않는 구석에 앉았고, 나는 딸아이의 친구들 사이에 앉았다. 그중에는 평소에 어린이집을 마치고 놀이터에서 자주 봤던 아이도 있었고, 맨날 우리 집에 놀러 오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아이도 있었다. 그리고 우연히 수영장에서 만났던 아이도 있었으니 이 역시 걱정했던 것보다는 나은 조합이었다. 아이들과 짧게 인사를 하고 숟가락을 들었다. 조미료를 최소로 한 음식들이 부드럽게 식도를 타고 내려갔다. 천천히 먹으며 아이들과 얘기를 해야 하는데, 아침도 대충 먹은 터라 배가 고파서인지 아이들보다 너무 일찍 식사를 마쳤다. 밥과 반찬 그리고 국을 싹싹 비워냈고, 요즘 자극적인 음식은 조금 줄이려고 하던 터라 김치만 조금 남겼다. 그러자 내가 남긴 김치를 보고 한 아이가 말했다.

"선생님, 저도 김치 먹고 싶어요!"

우리 딸아이와 가장 친한 여자아이 한 명이 내 식판에 있는 김치를 보며 하나 달라는 것이었다.

웃을 때 반달 모양이 되는 눈 모양이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다. 그렇게 예쁘게 웃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나 역시 마음이 따뜻해진다.


"매울 텐데..."

나는 다소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김치를 한 덩어리 채 주지 않고, 잘게 쪼개어 물에 휘휘 저은 후 건네었다.

"저... 매운 것도 잘 먹을 수 있어요. 히~~"

아이는 밥 한 숟가락을 입에 넣고 내가 건넨 김치를 덥석 입에 넣는다.

"잘 먹는구나!"

"김치 하나 더 주세요!"

아이는 자기 반찬이 있는데도 계속 내 김치를 달라고 졸라댔다.

"매워서 입에 불이 나면 어떡하려고...?"

혹시나 내가 준 김치를 먹고 갑자기 얼굴이 시뻘게져 혀를 내밀고 물을 찾으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었다.

"김치 먹다가 어린이집에 불나겠다. 히히"

그 한마디에 옆에 있는 다른 아이들까지 덩달아 웃는다.

아이들의 상상력이 넘치는 표현에 나도 아이들과 함께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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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이들과 함께 하면서 동심의 소나기를 맞고 온 기분이었다. 조금 더 아이들의 동심으로 적시고 싶었지만, 정해진 시간이 다되어 나는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어린이집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무겁게 발걸음을 옮겼는데, 새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어린이집을 나설 수 있어 다행이었다.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웃음 그리고 해처럼 밝은 미소로 잠시 나도 때 묻지 않은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행복한 하루였다. 또한 육아휴직 중에 일일교사로 활동하며 딸아이에게 아빠로서 추억을 남겨 주었다는 것이 무엇보다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이제 첫째는 무사히 마쳤으니 다음 달엔 둘째반에 도전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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