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들...

아빠 육아 휴직 후 깨달은 것들....

by 노용기


다시, 시작...


회사에서 마지막 하루를 버티는 것은 쉽지 않았다. 오랜 일이지만, 마치 군대에서 첫 휴가를 가기 바로 전날의 느낌이었다. 대학 졸업 후 9년 넘게 직장 생활을 하고 처음 얻은 긴 휴가라 그렇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날 따라 국방부 시계처럼 회사의 시계도 느리게만 갔다. 사실 노트북도 반납을 마친 뒤라 딱히 할 일 없이 갓 입사한 신입사원처럼 몇 시간을 시계만 보며 멀뚱멀뚱 앉아 있는 것도 대단한 곤역이었다. 그나마 퇴근하기 한 두 시간 전부터 회사 동료들과 당분간 작별을 위한 인사를 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퇴근 시간이 다가오자 모두들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키보드를 바쁘게 두들겨 대고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 내가 조심스럽게 다가가자 동료들은 흔쾌히 시간을 내주었고, 짧은 시간이지만 작별의 정을 나눌 수 있었다. 주말을 제외하고 매일 보는 사이라 동료들을 마주하는 것이 덤덤했지만, 한 동안 못 본다고 생각하니 아쉬운 마음과 벌써부터 그리운 마음이 교차했다.


기쁘고 설레는 마음과 동료들을 뒤로하고 떠나는 무거운 마음을 안고 드디어 회사 문 밖을 나섰다. 공기는 차고 바람은 세게 나의 뺨을 스쳐 지나갔다. 나는 서둘러 지하철을 타고 아내를 만나기 위해 약속 장소로 향했다. 오랜 기간 아내와 함께 대화하며 준비한 육아 휴직인지라 아내와 소회를 풀고 싶었다. 내가 먼저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잠시 후 아내가 저 멀리서 나를 향해 뛰어 왔다. 그리고 나를 꼭 안아 주었다. 그곳의 공기는 여전히 찼지만, 나의 가슴은 따뜻했다. 그리고 아내가 나에게 말하였다. “그동안 수고했어...”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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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들어가는 몸...


그동안 알게 모르게 나의 몸과 마음은 휴식을 필요로 했던 것 같다. 외향적으로는 30대 중반에 머리털이 조금씩 빠지기 시작하는 것을 경험했다. 탈모는 남의 일로만 생각했는데 벌써부터 앞머리가 조금씩 훤해질 때마다 점점 늙어가는 털 빠진 사자의 마음과도 같았다. 그래서 길을 가다 머리카락이 풍성한 20대를 보면 한없이 부러워했었고, 앞 머리가 훤하신 40~50대 분들을 보면 저게 내 미래인가 하는 생각에 식은땀이 흐르기도 했다.


이뿐만 아니다. 저녁을 조금이라도 늦게 먹거나 고기류를 먹고 잠자리에 들 때면 소화가 되지 않아 몸을 뒤척이며 밤새도록 고생을 하기도 했다. 철근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플라스틱은 씹어 먹을 수 있을 나이인데, 그깟 고기 좀 먹었다고 소화 안 되는 내 몸이 한심했다. 이제는 환자처럼 저녁마다 죽 같은 유동식만 먹어야 하나 하는 생각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리고 목부터 시작해서 등과 허리까지 군데군데 통증 부위가 점점 확대되어, 쉬는 날이면 정형외과나 한의원을 찾아 침을 맞거나 부황을 뜨는 날이 잦아졌다. 그럴 때마다 내가 이런 몸을 가지고 흔히 얘기하는 60세 정년까지 버틸 수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심장은 점점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병들어가는 마음...


내향적으로는 작은 일이 쉽게 흥분을 하거나 짜증을 냈다. 마음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라고 생각이 되었다. 내 마음이 평온하다면 화가 날만한 일도 조금 참고 견디며 지낼 수 있었을 텐데, 왠지 모를 삶에 대한 불만이 목까지 차올라 있었다. 그러니 누가 툭툭 건들기만 해도 바로 입을 통해 불평의 말들이 튀어나오는 것이었다. 후회를 하고 마음을 다 잡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했지만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말실수하는 느낌이 계속 들었다. 대화를 마치고 사람들과 헤어지고 나면 내가 말을 잘못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머리를 쥐어짜며 괴로워했던 경험이 자주 있었다. 이런 경험들이 쌓이자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조금씩 멀리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리고 만나는 일이 있더라도 대화에 참여하지 않고 주로 듣는 편을 택하였다. 그러다 보니 외향적이었던 성격도 점점 내향적으로 바뀌어 갔다. 심할 때는 ‘나는 누구인가?’하는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겪기도 했다.


이런 상황들에 대해 나는 자주 아내와 대화를 나누었다. 가족들에게 잘 하고 싶은 생각은 굴뚝같은데, 실제 몸과 마음이 힘들다 보니 생각처럼 행동으로 잘 옮겨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내도 나의 힘듬과 어려움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아내가 육아휴직 전 회사에서의 마지막 업무를 마치고 온 나를 안아주며 “그동안 수고했다.”라는 말을 하자, 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며 나를 이해해주고 지지해준 아내에게 고마운 마음과 함께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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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안식년...


다음 날 아침 나는 애써 게으름을 부렸다. 그동안 바쁘게만 지내온 나의 몸과 마음에 작은 보상이라도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부러라도 게으름을 피우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지금까지 축적되어온 관성으로 인해 나는 또다시 바쁜 삶을 살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안식년을 가지기는 쉽지 않다. 교수님들이나 목사님들 그리고 극히 일부 회사에서 안식 제도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일반 직장인들이 1달에서 1년 정도의 긴 안식년을 가지기란 아직 요원한 일인 것 같다. 비록 나는 아직 경력이 10년이 채 되지는 않았지만 안식년을 가지고 싶었다.


우리 세대는 큰 사고와 질병을 겪지 않는 한 평균적으로 100살까지 살 수도 있다고 한다. 나의 앞으로의 경력 관리를 생각한다면 1년이라는 육아휴직 시기가 어쩌면 경쟁에서 뒤처지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런 생각으로 인해 내 마음에 불안이 불씨처럼 남아 있다. 그리고 잘 나가는 지인들의 소식을 접할 때면 그 불씨는 대형 산불로 변해 내 온몸 구석구석을 태우기도 한다. 나라고 천하태평한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인생을 더 길게 본다면 나는 이 시간을 잠시 숨을 돌리고 몸과 마음을 추스르며 가족들의 사랑을 통해 진정한 삶의 목적과 방향을 다시 세울 수 있는 소중한 시간으로 만들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전처럼 데드라인에 맞추어 바쁘게 하루를 살아가기보다는 조금은 여유를 부릴 필요가 있다고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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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중요한 것...


아침에 아이들과 어린이 집에 갈 때 나 혼자서 가면 5분이면 가는 길을, 아이들과 갈 때면 30분이 넘게 걸릴 때가 있다. 그 길을 빨리 가는 것에만 목적을 두면 아이들을 재촉하게 되고, 말을 듣지 않을 때는 화를 낼 때도 있다. 그러나 빨리 가야지 하는 마음이 들 때 나의 목적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내가 왜 아이들과 이 시간에 어린이 집을 가는가?’ 나는 아이들을 빨리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기 위해 함께 가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과 손 잡고 가는 그 길이 좋아서이다. 이렇게 나는 원래의 목적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나는 어린이집까지 가는 동안 아이와 많은 대화를 나눈다. 아이의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 어린이 집에서 있었던 이야기, 어젯밤 꿈 이야기 등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다. 또 때로는 퀴즈를 내기도 한다. 어린 시절 했던 ‘스무고개’라는 게임인데, 조금 변형하여 내가 생각한 사물과 인물들에 대해 힌트를 주면 아이가 맞추는 것이다. 이렇게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퀴즈를 내면서 가는 길은 참 행복하다.


아이들 등원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집 청소와 설거지 그리고 저녁 식사 준비 등을 한다. 이러한 집안일을 빨리 끝내야 나를 위한 개인 시간을 조금 더 많이 가질 수 있다. 그래서 처음에는 회사에 하던 습성대로 빨리 일을 끝내려고 했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미간이 찌푸려졌다. 집안일이 생각보다 많고, 빨리 끝내고 쉬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하다 보니 집안일이 하나도 즐겁지 않은 것이었다. 그래서 다시 마음을 가다듬었다. ‘이 시간, 가족들을 위해 집안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 아닐까?’ ‘사실 내가 그토록 가족들을 위해 하고 싶었던 일인데, 너무 빨리 끝내야겠다는 결과에만 치중하며 짜증을 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자 조금은 더 여유를 가지고 집안일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하나씩 정리가 되어가는 집을 보며 내 마음도 깨끗해지는 것 같았다. 따로 산속에 들어가 마음 수련할 필요 없이 집안일을 하면서도 충분히 수련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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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러한 일상의 작은 변화를 통해 인생에 대해 조금은 새로운 시각을 가질 수 있었다. 어쩌면 원래 책에는 있었던 것인데, 그동안 내 삶 가운데 적용하지 못하고 미루었던 것일 수도 있다. 바로 삶의 목적을 제대로 설정하고 그 목적대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깨달음이다. 목적을 잘못 설정하면 인생은 행복이 충만한 선물상자가 아닌 번뇌로 가득한 흙 구덩이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수단과 목적이 바뀔 때도 있다. 나 역시 그런 실수를 자주 한다.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가족여행을 가고 있는데, 조금 더 빠른 길을 가려고 어느 고속도로를 탈까 언쟁이 붙어 본의 아니게 서로 마음이 불편해지는 때가 있는 것이다. 어느 길로 가든 그리고 설사 돌아가든 아니면 도로가 막히든 가족과 함께 하는 현재의 시간을 즐기기보다 어느 순간 빨리 도착하는 것이 목적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사실 그렇게 언쟁하고 가면 목적지에 빨리 도착 한들 마음이 그리 즐겁지만은 않을 때도 있다.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돈이 목적이 아니고 수단이라고 한다. 하지만 때론 돈이 목적이 되어 몸을 망치고 가족을 희생한다. 가족들이 행복한 삶을 살게 하기 위해 그리고 본인의 노후를 위해 열심히 돈을 벌지만, 자녀들은 부모를 점점 멀리하고 노후에는 건강을 잃어 병원 신세와 약으로 연명하다 쓸쓸히 세상을 마감하는 경우도 있는 것을 본다. 슬픈 일이다. 이러한 슬픈 일을 겪지 않기 위해 원래의 삶의 목적대로 오늘 하루를 살고 있음에 나는 그저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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