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방콕 여행 - 1일차
태국 방콕으로 가족 여행을 가기 위한 모든 준비를 마쳤다. 비행기와 숙소 예약은 이미 몇 달 전에 했으며, 여행 짐도 모두 싸놓았다. 이제 떠날 준비만 하면 된다.
비행기 타기 3일 전, 인터넷 뉴스를 통해 태국 폭탄 테러 소식을 접했다. 사망자와 부상자가 발생했고, 관광객들이 태국을 떠나고 있다는 소식이다. 외교부 홈페이지에서 태국 관광 주의 소식이 떴는지 확인해 보았다. 태국 남부 일부 지역이 철수 권고 지역으로 표시되어 있다. 혹시 발생할 수도 있는 사고를 피하기 위해 가족 여행을 취소해야 할까 고민이 되었다. 하지만 이 여행은 아내가 오랫동안 부모님을 모시고 가기 위해 준비한 여행이니 내가 쉽게 결정 내릴 수 없었다.
태국에 추가 폭탄 테러가 발생했다. 테러 발생 후에 검문검색이 더 강화되었겠지 생각했는데, 또다시 폭탄 테러가 발생한 것이다. 여행을 취소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머리 끝까지 미쳤다. 외교부 홈페이지를 다시 확인 해 보니 태국 방콕은 아직 여행 유의 정도로만 표시되어 있다.
생전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떠나는 장인 장모님 그리고 그 두 분을 위해 오랜 기간 여행을 준비한 아내가 여행에 거는 기대가 있기에 이제 와서 취소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어쩌면 지금 가지 않으면 언제 다시 장인 장모님을 모시고 여행을 갈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가족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기에 걱정을 떨칠 수는 없었지만 결국 기도하는 마음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를 타고 한 참을 가니 첫 째가 스르르 잠들기 시작했다. 아이는 머리를 가누지 못하고 연신 허공에 머리를 쪼아대고 있었다. 장인어른께서 그 모습을 보자 아이를 자리에 눕히기 시작했다. 아이의 발을 내 쪽으로 뻗게 하고 본인의 허벅지에 아이의 머리를 올려놓으셨다. 그리고 아이가 에어컨 바람에 추워할까 봐 담요도 덮어 주셨다.
나는 아이를 높이고 계속 영화를 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냄새가 났다. 냄새가 나는 근원지는 바로 아이의 발이었다. 물이 뭍은 발로 신발을 오랫동안 신고 있어서 고약한 냄새가 났던 것이다. 그리고 그 발이 내 무릎에 닿자 왠지 모를 간지러움이 느껴졌다. 마치 아이의 발에 있는 세균이 내 허벅지로 옮겨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담요로 아이의 발을 감싸 냄새를 차단했고, 세균이 내 허벅지로 오는 것을 막았다.
잠시 옆을 쳐다보니 장인어른께서 의자의 반만 걸터앉고 계신 것이 보였다. 나보다 덩치도 더 크신 분께서 이코노미석 자리의 반을 아이에게 양보한 것이다. 아이가 낮은 베개에 머리를 대고 잘 수 있도록 해 주셨기 때문이다.
순간 반성이 되었다. 나는 내 자녀인데도 냄새를 참지 못해 아이의 발을 내 허벅지에서 떨어뜨려 놓기 위해 노력했었다. 그런데 장인어른은 손녀의 편안한 잠자리를 위해 불편을 아무 말 없이 감수하고 계셨던 것이다.
사실 이 뿐만 아니다. 평소에도 나는 피곤하다고 아이와 잘 놀아 주지 못할 때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장인어른께서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이와 놀아주셨다. 그것도 모자라 아이는 잠자지 말고 계속 놀아달라고 떼를 쓰면, 장인어른은 졸음을 참고 아이가 잠들 때까지 놀아주셨다. 나는 언제쯤 장인어른처럼 아이를 사랑할 수 있을까? 태국 방콕 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나는 이러한 생각에 잠겼다.
방콕의 날씨는 예상보다 훨씬 선선했다. 동남아시아 국가여서 우리나라보다 더 덮고 습할 줄 알았다. 그런데 우리나라 초여름 날씨 수준이었다. 여름에 폭염이 몇 주씩 계속되는 우리나라보다는 더 쾌적한 날씨였다.
나는 우버를 불러 숙소로 갔다. 가는 길에 갑자기 먹구름이 일더니 강한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폭포수처럼 내리는 비 때문에 차창밖을 제대로 볼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5분 정도 지나니 언제 그랬냐는 듯 해가 내리쬐기 시작했다.
숙소에 도착하여 짐을 풀었다. 그리고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저녁식사에 가까운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숙소 근처에 있는 쇼핑몰로 향했다. 호텔에서 쇼핑몰까지는 도보로 10-15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지만 느낌상으로는 2배 이상 걸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유는 자동차만큼이나 많은 오토바이와 거리에서 구걸하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사실 나 혼자 여행을 왔다면 아무렇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이들과 해외여행이 처음이신 어른들과 함께 하는 여행이라 안전에 꽤 많은 신경이 쓰였다. 게다가 오토바이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연과 휘발유 냄새로 머리가 다소 어지럽기까지 했다.
쇼핑몰의 안과 밖은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다. 설국열차라는 영화를 보면 마지막 칸에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 바퀴벌레로 만든 양갱을 먹으며 살아간다. 그런데 열차 앞칸에는 소수의 사람들이 사우나를 즐기고 스테이크를 먹으며 살아간다. 쇼핑몰 밖은 설국열차의 맨 마지막 칸이라면 쇼핑몰 안은 열차의 앞칸과도 같았다. 쇼핑몰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다시 나가는 것이 두렵게 느껴졌다.
쇼핑몰 안에 들어가기 전, 공항에서나 하는 검문검색을 받았다. 쇼핑몰 안전요원은 가방을 열어 검사했다. 폭발물 테러로 인한 조치로 여겨졌다. 검문검색 때문에 안전을 보장받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검문검색이 강화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테러 위협이 더 높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참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항공사에서 점심을 주긴 했지만 고기가 들어 있는 전병 하나 정도가 전부였다. 그래서 우리는 쇼핑은 잠시 뒤로 하고 식사부터 하기로 했다. 태국에 왔으니 제대로 된 태국 음식을 먹을 수 있을 거란 기대감에 이것저것 고르기 시작했다. 새우를 넣어 걸쭉하게 끓인 수프인 똠양꿍, 볶음 요리인 팟타이, 태국식 샐러드인 쏨땀, 그리고 태국식 게요리는 풋팟퐁 커리 등을 주문했다. 특히 이 중에서 커리 소스에 게살이 버무려져 있는 푸팟퐁 커리의 맛은 일품이었다. 특히나 하얀 쌀밥을 게살이 어우러진 커리에 비벼 먹으면 없던 식욕도 저절로 생기는 것 같았다.
식사와 간단한 쇼핑을 마치고 오늘 하루의 피로를 풀기 위해 마사지 샵을 찾았다. 우리가 찾아간 곳은 매우 저렴한 곳이었다. 가격은 한 시간 발마사지에 약 3,000원이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일반적인 태국 마사지 샵에서는 1시간 발마지가 약 만 원정도 한다. 가격이 저렴해서인지 시설은 마치 뒷골목 구석진 곳에 있는 퇴폐업소처럼 보였다. 게다가 냄새도 심해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강한 맨소래담 향이 코끝을 자극하였다.
아내는 인터넷 블로그를 통해 이 곳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가격에 비해 마사지 수준이 괜찮다고 해서 일단 믿어보기로 했다. 장인어른은 마사지는 받고 싶지 않다고 하셔서 장모님, 아내 그리고 나만 마사지를 받았다. 약 50분가량 이어진 발마사지는 별 감흥이 없었다. 그런데 마지막 10분을 남겨두고 머리부터 등 그리고 허리까지 마사지를 해주었는데, 이 마사지가 정말 예술이었다. 마치 태국 마사지의 진수를 보는 것 같았다. 온몸에서 뚜드득 소리가 났으며 순간 온몸의 긴장과 막혀있던 혈이 풀어지는 느낌이었다. 불과 3,000원으로 이런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 감동이었다. 우리는 감사의 뜻으로 소정의 팁을 전하고 마사지 샵을 나왔다.
마사지를 마치고 나오자 해는 점점 기울어 어두운 저녁이 되었다. 숙소로 돌아와 소파에 앉아 휴식을 취하였다. 아이들도 하루 종일 장시간 비행으로 지쳐 보였다. 수영장에 가고 싶었으나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8박 9일의 긴 여행이라 여유가 있다. 무리하지 않는 여행, 그것이 내 여행 신조다.
아이들을 침대에 누이고 텔레비전을 켜자 CNN에서 이런저런 뉴스가 나왔다. 일본의 총리인 아베가 경제를 살리기 위해 일과 삶의 균형 정책을 밀어붙인다는 기사가 나왔다. 그 기사를 보면서 세상이 변하고 있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에는 열심히 일하는 것이 경제를 살리는 길이라 여겼는데, 요즘은 경제를 살리기 위해 오히려 쉬라고 하니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징검다리 휴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고 있다. 이유는 경제 살리기. 그 날 쉬면서 여행도 가고 돈도 쓰라는 것이다.
나는 육아휴직 중이다. 육아휴직을 하면서 적지 않은 연봉을 포기해야 했다. 수입은 없는데, 아이들과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다 보니 지출은 늘어났다. 단순 계산을 해 보면 경제적으로 손해이다. 그러나 나는 손해라고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이 시간 달리는 기차 안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것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남들은 먼저 가라 하고 잠시 정차역에 내려, 나와 주위를 둘러보면서 그전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인생의 소중한 보물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 보물들이 내 인생을 더욱 풍요롭게 해 줄 것을 믿는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나라의 경제 발전에도 조그마한 도움이 될 거라 믿는다. 다행스러운 것은 나 뿐만 아니라 세상도 일과 삶에 대한 태도가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행의 첫날부터 너무 많은 생각에 사로잡혔다. 테러와 안전, 아이에 대한 사랑, 설국열차, 육아휴직 등등. 전에는 이러한 생각을 머리 속에만 넣어두고 뱅뱅 돌리기만 했다. 그래서 머리가 복잡했다. 그런데 지금은 이러한 생각들을 글로 옮길 수 있는 시간과 여유가 있어 행복하다. 글로 생각을 적어두면 머리 속 복잡함이 사라지고 점점 가벼워진다. 그리고 생각이 하나 씩 정리되어 간다. 그러나 생각을 정리하는 것도 오늘은 이만하면 된 것 같다. 바로 내일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