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방콕 여행 - 2일 차
침대에 누워 자고 있는데 어디선가 아이들 목소리가 들린다. 6시부터 시작하는 조식을 먹기 위해 새벽 5시에 알람을 맞춰 놨는데 아직 알람은 울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새벽 5시도 되지 않았는데 아이들이 일어나서 뛰어놀고 있다는 뜻이다. 역시 아이들은 체력이 좋다.
아이들 떠드는 소리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세수를 하고 거실로 나가니 "아빠다!"하며 아이 둘이 달려든다. 그리고 서로 안아달라고 내 양다리를 잡고 놓아주질 않는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안아주는 시간도 줄어들 거란 생각에 힘이 들지만 두 아이 모두를 번쩍 안았다. 두 아이를 안은채 창밖을 보니 저 멀리 스멀스멀 해가 올라오기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에 장인 장모님 그리고 아내 모두 잠에서 깼다. 모두들 간단히 세수를 하고 조식을 먹기 위해 1층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나는 어제 야채를 많이 섭취하지 못한 것 같아 마치 코끼리 밥처럼 샐러드를 접시에 잔뜩 덜어 왔다. 아이들은 소시지와 베이컨 등 몸에 좋지 않은 것만 접시에 담아 왔다.
밥을 먹고 있는데 어디선가 프랑스 말이 들렸다. 건너편 테이블에 엄마 1명과 아들 2명이 대화를 나누며 식사를 하고 있었다. 첫 째는 초등학생쯤 되어 보이고, 둘 째는 우리 첫 째딸과 나이가 비슷한 것 같았다. 예전에 '프랑스 아이처럼'이라는 책을 본 적이 있다. 그 책에 따르면 프랑스 아이들은 식사예절 교육이 잘 되어 있어 부모들이 아이들과 함께 풀코스 요리를 우아하게 먹을 수 있다고 한다. 실제로 건너편 테이블에 앉은 두 아이들은 모두 얌전히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반면에 우리 아이들은 의자에 앉았다 일어났다는 반복 하며 바닥에 음식을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얌전히 앉아서 먹으라는 소리만 여러 번 했다. 무엇이 차이일까? 나도 아이들과 코스요리를 우아하게 먹을 수 있는 날이 언제쯤 올까?
왕궁에 가기 위해 우버를 부르려고 했더니 러시아워라 평소보다 2배 이상의 요금을 내야 했다. 우버는 다 좋은 데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시간대에 가격이 올라가는 게 안 좋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호텔에 요청 해 콜택시를 불렀다. 택시를 타고 왕궁으로 가는데 도로가 꽉 막힌 하수구처럼 좀처럼 뚫리지 않는다. 신호 한 번 받을 때 고작 30미터 가는 게 전부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걷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러나 장인 장모님 그리고 아이들을 데리고 이 더운 날씨에 택시에서 내려 1시간이 넘는 거리를 걸어가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구글 지도로 검색 해 보니 왕궁으로 바로 가는 전철 노선은 아예 없고, 버스는 택시로 가는 것보다 더 불편할 뿐 도착 시간에는 차이가 없었다.
택시를 탄지 한 시간이 넘었지만 전철역으로 치면 고작 두 정거장을 되는 거리를 왔다. 우리의 불편함을 눈치챘는지 택시 기사 분이 한 가지 제안을 하셨다. 그런데 기사 분이 영어와 태국어를 번갈아 가며 말하는 통에 우리가 알아들은 것은 '트래픽 잼'과 '보트' 두 단어였다. 아내가 추측하길 교통체증이 심하니 왕궁까지 보트를 타고 가라고 하는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일단 오케이 했다.
30분 정도를 더 달려 우리가 도착한 곳은 배를 타는 곳이었다. 그곳에 내려 배 승선 요금을 물어보니 어른 4명에 우리나라 돈으로 5만 원 정도를 달라고 했다. 1시간 넘게 택시를 타고 오는데 1만 원이 조금 넘는 돈을 지불했다. 그런데 잠깐 배를 타고 왕궁까지 가는데 5만 원 이라니? 뭔가 미심쩍은 우리는 그곳에서 나와 우버를 부르기로 했다. 다행히 러시아워 시간이 지나 가격이 많이 내려갔다. 우버는 왕궁까지 10분 안에 도착했고, 우리는 불과 5,000원에 갈 수 있었다. 배로 가는 것보다 1/10 정도 가격에 도착한 것이다.
태국 왕궁은 라마 1세라는 역대 국왕들부터 살았던 곳이라 한다. 새로운 건물들을 계속 지으면서 현재의 규모를 갖췄다고 한다. 왕궁을 제대로 보려면 최소한 반나절은 걸릴 정도로 그 규모가 제법 큰 편이다. 유럽의 화려한 성당들처럼 태국 왕궁 곳곳에도 역사적 사실들을 표현한 그림들이 왕궁 벽과 천장에 가득 그려져 있었다. 또한 황금빛으로 치장된 건축물이 있는가 하면, 손톱 크기 만한 유리 조각과 타일 조각으로 건물 전체가 아름답게 수놓아져 있는 곳도 있었다.
태국 관광 비수기에도 왕궁을 보러 온 관광객은 줄어들 줄 몰랐다. 아침부터 왕궁에 입장하여 점심때쯤 밖으로 나왔는데 그때까지도 왕궁은 관광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이러한 세계적인 문화유산을 가진 태국이라는 나라가 부러울 정도였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이러한 화려한 궁을 짓기 위해 흘렸을 백성들의 피와 땀을 생각하니 한 편으로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역사적 사실들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크고 화려하게 지어진 역사적인 건축물 뒤에는 항상 누군가의 헌신적인 노력과 희생이 있기 마련이다. 때로는 한 개인의 노력일 수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수백수천 명의 목숨과 바꾼 결과물일 수 있다. 그래서 화려한 건축물을 볼 때면 처음에는 감탄을 하다가도 나중에는 엄숙해지는 편이다.
궁궐을 나와 우리는 카오산 로드로 향했다. 궁궐에서 카오산 로드로 가기 위해서는 배를 타야 했다. 배에는 50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승선했다. 배에 타니 시끄러운 모터 소리로 인하여 옆 사람이 말하는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그로 인해 사람들은 더 큰소리로 대화를 나누다 보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조용한 것을 선호하는데 이 배안은 전혀 나의 취향과는 맞지 않는 곳이었다. 순간 방콕에 온 것이 후회가 되었다. 너무도 산만해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게다가 방콕 시내를 관통하는 차오프라야 강에 떠다니는 쓰레기들과 후각을 자극하는 매캐한 냄새 때문에 점점 몸과 마음은 지쳐만 갔다.
배는 2~3 정거장을 거친 후 드디어 카오산 로드로 향하는 선착장에 도착했다. 우리는 배가 고팠기에 한 음식점으로 향했다. 그곳에서는 고기 국수를 팔고 있었고, 한국 관광객들에게 꽤나 알려진 곳인지 군데군데 한국말로 된 안내글이 보였다. 그곳에서 우리는 고기국수와 생수, 콜라 그리고 얼음을 시켰다. 전반적으로 고기는 질겼으며, 콜라는 생전 처음 보는 브랜드의 제품이었다. 그나마 마음에 들었던 것은 물과 얼음뿐이었다. 나는 얼음이 잔뜩 들어 있는 컵에 생수를 붓고 시원하게 들이켰다. 하루 종일 더위에 고생을 했는데, 이제야 조금 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점심 식사를 마친 후 잠시 뜨거운 태양도 피하고 휴식도 취할 겸 마사지를 받으러 갔다. 장인 장모님과 함께하는 여행이라 아내와 내 기준에 맞추어 너무 무리를 해서 돌아다니면 안 되기 때문이다. 아이들 또한 점심 식사 후에는 낮잠을 잘 시간이기 때문에 마사지샵은 우리 가족 휴식을 위한 최적의 장소였다. 오늘 받은 마사지 가격은 1시간에 만 원 정도였다. 어제는 발마사지를 받았다면 오늘은 정통 타이 마사지를 받기로 했다. 역시 정통 타이 마사지답게 마사지사들은 정확하게 통점을 읽어 냈다. 마치 한의사들이 혈점에 침을 놓는 것처럼 주물러야 하는 부위를 정확히 집어내고 있었다. 덕분에 오랜 기간 막혀있던 혈이 풀리고 온 몸에 기가 순환하는 것이 느껴졌다.
마사지를 받고 드디어 카오산 로드에 도착했다. 그런데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문제가 발생했다. 슬슬 배가 아파오더니, 마치 배속에 난쟁이가 들어가 내 대장과 소장을 빨래 짜듯이 쥐어짜는 것처럼 통증이 느껴졌다. 이마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한 걸음 한 걸음 걷는 것이 힘들어졌다. 다행히 아내가 약국을 발견했고, 그곳에서 장염 약을 처방받았다. 위약 효과가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약을 먹고 나니 통증이 조금은 가라앉기 시작했다. 하지만 배가 아픈 것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어서 방심할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우리는 카오산 로드 관광을 포기하고 우버를 불러 숙소로 향했다.
숙소에 돌아오니 장인어른도 장염 같다며 고통을 호소하셨다. 무엇이 문제일까 생각해 보니 점심때 식당에서 먹은 얼음이 문제였던 것 같다. 사실 식당에서 얼음을 시킨 사람은 우리 밖에 없었다. 나는 그때만 하더라도 얼음과 함께 콜라나 생수를 마시면 시원할 텐데 사람들은 왜 얼음을 시키지 않을까 의아했었다. 그런데 얼음을 시키지 않는 이유를 우리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으로 관광지에 와서 장염에 걸려 당황스럽기도 하고 앞으로의 여행 일정이 걱정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효도한다고 함께 모셔온 장인어른께서 장염에 걸려 고생하고 계시는 모습을 보니 참으로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아직 해는 지지 않았지만, 오늘 여행은 여기까지 해야 할 것 같다. 저녁은 아내가 끓여준 쌀 죽으로 대신했다. 나는 지친 몸을 이끌고 침대에 누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이들은 아프지 않다는 것이다. 아이들마저 아팠다면 여행이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여행을 하다 보면 좋은 일도 생기고, 안 좋은 일도 생긴다. 나쁜 사람들을 만나 어려움을 겪을 때도 있지만, 어떤 때는 마음씨 좋은 사람을 만나 생각지도 못한 도움을 받는 경우도 많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아 여행 온 것 자체가 불만으로 생각이 되다가도,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주위 환경에 적응이 되면 모든 것이 편안해지고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한다. 그래서 어쩔 때는 여행이 인생의 축소판처럼 느껴진다. 오늘은 마사지를 제외하면 개인적으로는 고된 하루였다. 하지만 내일은 좋은 일이 있을 거라 기대하며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매일매일이 똑같은 평소에는 오늘과 내일이 별 다를 것이 없다. 하지만 하루하루가 새로운 여행 중에는 내일에 대한 기대가 있다는 것이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