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무게

by 노용기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빌리 엘리엇(Billy Elliot) 뮤지컬을 본 적이 있다. 영화가 2000년에 상영되었고 뮤지컬 버전은 2005년 5월에 초연되었다고 한다. 내가 빌리 엘리엇 뮤지컬을 2005년 여름에 보았으니까 운 좋게도 공연 첫 해에 본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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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엘리엇은 1980년대 초 영국 북부의 한 탄광 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1984~85년은 영국의 대처 정부가 국영기업을 민영화하는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강력하게 반발하던 시기이다. 특히 대처 정부는 1984년 20개의 탄광을 폐쇄하고 인력을 감축하겠다고 하자 전국광부노조의 대부분이 총파업에 참가했다. 주인공인 11살 소년 빌리는 어머니를 잃고 할머니, 아버지 그리고 형과 살고 있는데, 아버지와 형은 탄광에서 광부로 일하다가 대처 정부의 민영화 추진을 반대하며 총파업에 참가하고 있다. 그 와중에 어린 빌리는 아버지가 원하는 권투 대신 발레에 흥미를 느끼고 있다. 발레강사인 윌킨스 부인은 빌리의 재능을 보고 런던의 로열발레스쿨에 입학시키려고 하지만 아버지와 형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혀 그만 꿈이 좌절될 위기에 처하고 만다. 그러다 크리스마스 밤 빌리의 아버지는 우연히 아들이 발레하는 모습을 보게 되고 재능을 발견하게 된다. 아버지는 빌리를 위해 배신자가 되는 것을 각오하고 파업하는 동료들을 뒤로 한 채 돈을 벌기 위해 탄광으로 향한다. 그러나 빌리의 형 토니의 만류로 어떻게든 돈을 마련하여 로열발레스쿨의 오디션을 보러 간다. 어렵게 로열발레스쿨에에서 오디션을 보게된 빌리는 긴장을 많이 하여 오디션을 망치게 되고, 설상가상으로 빌리를 위로해 주던 한 아이를 때리게 되면서 오디션에 탈락할 위기를 맞게 된다. 오디션을 마치고 긴장된 마음으로 심사위원들 앞에선 빌리는 춤을 출 때는 어떤 기분이 드냐라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변한다.

"마치 내 몸 안이 모두 바뀌어서 마치 내 몸 안에 불길이 치솟고 전 그냥 거기서 날아가요 새처럼요 마치 전류를 탄 것처럼 그래요 전류를 타고 날아다니는 것 같아요"

billy-elliot-father.png Source - www.schoolworkhelper.net

빌리와 아버지는 아쉬움을 남긴 채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그러던 어느 날 빌리는 로열발레스쿨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게 된다. 편지의 내용은 빌리가 로열발레스쿨로부터 합격을 했다는 소식이 담겨 있었다. 빌리와 가족들은 합격 소식을 접하고 축제의 분위기에 빠진다. 하지만 그 순간 아버지와 형은 파업이 실패로 끝났다는 소식을 접하고 다시 탄광으로 돌아가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리고 몇 년 후 빌리는 어른으로 성장하고 아버지와 형은 빌리가 출현하는 〈백조의 호수〉 공연을 보러 온다. 그들 앞에서 빌리는 백조 분장을 하고 무대에서 힘차게 뛰어오른다.


빌리 엘리엇은 발레를 좋아하는 11살 소년의 단순한 성장 이야기가 아니다. 그 안에는 영국 탄광 노동자들의 생존을 위한 치열한 분투기가 있고 그 가운데 아들을 위해 자신의 신념을 포기한 아버지의 이야기가 있다. 빌리의 아버지 재키 엘리엇은 아들 빌리의 재능을 발견하고 오랜 기간 파업을 함께 한 동료들을 뒤로 한 채 다시 탄광으로 들어가려고 하였다. 그는 파업에 동참했던 동료들과 그의 첫 째 아들 토니로부터 배신자라는 소리를 들어가면서까지 아들 빌리의 꿈을 위해 자기 자신을 포기한 아버지였다.





빌리 엘리엇 뮤지컬을 봤던 당시 나는 영국 런던에서 어학연수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던 상황에 있었다. 영국에서 어학연수를 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영국에서 생활비를 벌어가며 공부를 해야 했기에 학원에서 오전 수업을 마치면 호텔에서 새벽 1~2시까지 일을 해야 했다. 그리고 어렵게 모은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 다락방과 창문이 하나도 없는 창고 같은 방에서 1년 가까이 생활을 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마음으로 했지만 난생처음 가족을 떠나 말도 잘 통하지 않는 타지에서 적잖이 고생을 했다. 그러한 고생을 하면서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미래에 대한 꿈이 있었고 그러한 꿈을 응원해 주던 가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빌리 엘리엇 뮤지컬을 보면서 나는 꿈을 향해 나아가는 빌리를 통해 나 자신을 보았고, 빌리를 위해 자신의 신념을 내려놓고 아들의 삶을 묵묵히 지원하는 아버지를 보면서 지금의 나를 있게 한 부모님의 희생이 떠올랐다. 그러한 마음이 한데 뭉쳐 모든 비난을 뒤로하고 탄광으로 들어가려는 빌리 아버지의 모습과 빌리가 로열발레스쿨 오디션에 서기까지의 과정을 지켜 보면서 가슴과 눈 시울 점점 뜨거워졌다. 빌리 엘리엇이 아직도 추억으로 남는 이유는 나도 모르게 감정에 북받쳐 울면서 보았던 첫 뮤지컬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빌리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우리 부모님이 나에게 보여준 사랑과 응원 그리고 보이지 않는 희생이 오버랩되면서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billy-elliot-1621.jpg Source - www.stageandcinema.com




며칠 전 나는 부모님 그리고 두 아이들과 함께 문경에 있는 석탄 박물관을 방문하였다. 석탄 박물관은 1980년 중후반에 국제 유가가 안정되어 석유 공급이 원활하여지고 청정원료에 대한 선호 증대로 각 가정마다 가스가 보급되면서 사라진 탄광의 역사와 탄광 노동자들의 생활상 등을 전시를 해 놓은 곳이다. 박물관을 구경하면서 어릴 때 집 난방을 위해 사용했던 연탄과 학교에서 사용했던 갈탄 등이 떠올랐다. 부모님과 나만 석탄의 추억을 공유하고 있고 이제 겨우 4살과 6살이 된 아이들은 전혀 알지 못하는 이야기라는 생각에 어떤 면에서는 나도 구시대에 살았다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우리나라의 석탄산업의 호황기는 1973년과 1978년이라고 한다. 당시 중동전쟁 발발 이후 OPEC 가입국들이 석유 생산량을 줄이고 가격을 인상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석유파동을 겪게 되었다. 우리나라 역시 석유파동의 영향권에서 자유롭지 못해서 우리 정부는 석탄 증산에 박차를 가했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로 당시 석탄은 재고가 없어서 팔지 못할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석탄 산업도 1980년대 중후반에 들어서면서 국제유가가 안정되고 사람들의 생활수준이 점차 높아지면서 사양길에 접어들게 되었다. 특히 빌리 엘리엇의 시대적 배경과 유사한 이 시기에 우리나라도 석탄산업합리화를 위해 모두 334개의 탄광을 폐광시킴으로써 석탄 산업은 우리나라에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IMG_2076.jpg 석탄 박물관 전시물 이미지


나는 석탄 박물관에서 노동의 무게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석탄 박물관에는 1970~80년 대 광부들의 다양한 삶이 전시되어있다. 광부들의 노동 강도는 매우 높았다. 광부들은 하루 8시간씩 3교대로 근무를 했는데, 갑반 (8~16시), 을반(16~24시), 병반(24~8시)로 나누어 근무를 했다. 그중 새벽에 일하는 병반이 가장 힘들었는데 당시 탄광에서 10년 근무한 한 광부는 이런 말을 남겼다.

"병반이 힘든데 자다가 일어나가지고 갈려면 엄청 서글프거든요. 뭐 온 식구들은 다 잠들어 있는데 마누라가 부스스 일어나가지고 라면이나 하나 끓여 주는 거 먹고 갈라하면 진짜 발이 안 떨어져요. 광업소라는 직장이 살아서 올 수 있는...... 주로 살아서 왔지만, 살아서 못 오는 경우도 많고, 다쳐서 오는 경우도 많고 하니까. 그런 겁도 나고 해가지고 그만큼 가기 싫더라고..."


이처럼 하루 3교대로 일하는 것뿐만 아니라 탄광에 들어가 일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고되고 힘들었다고 한다. 당시 탄광의 광부들은 공무원이나 자영업자들보다 대우가 좋아 많은 사람들이 탄광에 지원을 했는데, 첫날 근무부터 너무 힘들다 보니 대부분 적응을 하지 못해 중도에 그만두었다고 한다. 다음은 13년 차 광부의 이야기이다.

"나 같은 경우에도 그때 총각이지만은 예를 들어서 나한테 딸린 학교 다니는 동생이 없다든지, 부모님이 참말로 집안이 괜찮다든지 이러면 제가 벌써 치았지요. 그러나 인제 환경도 어렵고 동생 학비도 보태야 되고, 나 아니믄 안 되겠다는 그런 신념이 있기 때문에 견디고 나간 거지. 안 그러면 벌써 때려 치았어."


마지막으로 많은 광부들이 진폐증으로 고생했다. 진폐증은 갱내에서 발생되는 분진을 흡입함으로써 폐가 점차 딱딱해지고 굳게 되는 증상을 말한다. 진폐증에 걸리게 되면 폐결핵 및 기흉 등 합병증을 유발하는데, 이러한 합병증은 치료할 수 있으나 진폐증 자체는 지료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석탄 박물관에는 이러한 진폐증에 걸린 광부들의 폐를 전시해 놓고 있는데, 석탄처럼 새까맣게 변해버린 폐를 보면서 광산 노동자들의 겪었을 노동의 무게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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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무거운 마음을 안고 석탄 박물관을 나왔다. 석탄 박물관 밖에는 탄광 밖에서의 광부들의 삶이 묘사되어 있었다. 탄광에서의 힘든 일과를 마치고 귓속까지 가득 찬 석탄가루를 빼내며 목욕을 하는 모습. 월급날 동료들과 삼겹살에 막걸리로 노동의 힘겨움을 이겨냈던 모습. 그리고 집에 돌아와 아들과 함께 작은 방에서 딱지를 만드는 자상한 아버지의 모습들이 전시 되어 있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치열했던 하루를 마치고 광부에서 동료로 그리고 아버지와 남편으로 돌아온 모습을 보며 시대를 뛰어넘는 동질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예나 지금이나 노동의 무게는 무겁고 그 무거운 노동의 무게를 이겨낼 수 있는 힘의 근원은 가족들과 동료들에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삶을 치열하게 살아나갔던 광부가 아닌 한 개인으로서의 삶을 보면서 나는 무거웠던 마음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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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며칠 전 우연히 빌리 엘리엇 뮤지컬 라이브를 동영상으로 다시 보게 되었다. 대학생 시절 영국 런던의 한 극장에서 남모르게 울면서 봤던 그 뮤지컬을 이제는 두 아이의 아빠가 되어 다시 보게 된 것이다. 그때의 감정이 떠올라 다시 눈물을 보이면 어떡하지라는 작은 걱정과 함께 떨리는 마음으로 빌리 엘리엇을 감상했다. 지금으로부터 10년이 훨씬 넘었지만 뮤지컬의 감동은 여전히 나에게 살아 움직였다. 다만 달라진 것은 내 상황과 마음이었다. 알 수 없는 미지의 꿈을 향해 두려움과 떨림으로 앞만 보며 나아갔던 청년은 이제는 변화와 안정 가운데서 균형을 잡아가며 단지 내 꿈만을 좇을 수 없는 30대 중반의 가장이 되었다. 그리고 나를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한 부모님의 사랑과 헌신에 눈물 흘리던 나는, 이제는 방 한켠에서 꿈을 꾸며 자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 때로는 내 삶의 가치와 신념들을 희생해야 하는 아빠가 되었다. 나는 이제 아들의 꿈을 위해 자신의 소신을 내려놓은 빌리의 아버지처럼 그리고 지하 깊은 곳에서 노동의 무게를 감내했던 광부들처럼 살아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다. 그 무게에 짓눌려 때로는 휘청거리며 퇴근길 지하철 손잡이를 힙겹게 움켜지기도 하고, 가족들이 모두 잠든 밤 조용히 거실에 나와 맥주 한 캔을 들이키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한 삶이 계속 무겁게만 느껴지지 않는 것은 퇴근 후 나의 하루를 위로해 주는 아내와 온몸으로 나를 반기는 아이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참조:

1) [네이버 지식백과] 빌리 엘리엇[Billy Elliot] (세계영화작품사전 : 청춘과 성장에 관한 영화, 씨네21)

2) 문경 석탄 박물관 전시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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