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피천득 선생의 수필집'인연' 중에서 '서영이'라는 제목의 수필이다.
서영이는 나의 딸이요. 나와 뜻이 맞는 친구다. 또 내가 가장 존경하는 여성이다. 자존심이 강하고 정서가 풍부하고 두뇌가 명석하다. 값싼 센티멘털리즘에 흐르지 않는, 지적인 양 뽐내지 않는 건강하고 명랑한 소녀다.
버릇이 없을 때가 있지만, 나이가 좀 들면 괜찮을 것이다. 나는 남들이 술마시느라고 없앤 시간, 바둑 두느라고 없앤 시간, 돈을 버느라고 없앤 시간, 모든 시간을 서영이와 이야기하느라고 보낸다. 아마 내가 책과 같이 지낸 시간보다도 서영이와 같이 지낸 시간이 더 길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시간은 내가 산 참된 시간이요.아름다운 시간이었음은 물론, 내 생애 가장 행복한 부분이다.
내가 해외에 있던 일 년을 빼고는 유치원서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거의 매일 서영이를 데려다 주고 데리고 왔다. 어쩌다 늦게 데리러 가는 때는 서영이는 어두운 운동장에서 혼자 고무줄 놀이를 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안타까운 것은 일 년 동안이나 서영이와 떨어져 살던 기억이다. 오는 도중에 동경에서 3일 간 체류할 예정이었으나, 견딜 수가 없어서 그날로 귀국했다. 그래서 비행장에는 마중 나온 사람이 하나도 없게 되었다. 나는 택시에 짐을 싣고 곧장 학교로 갔다.
피천득 수필집에는 딸 서영이에 대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여럿 있다. 그 중에서 나의 눈길을 멈추게 한 글은 바로 '나는 남들이 술마시느라고 없앤 시간, 바둑 두느라고 없앤 시간, 돈을 버느라고 없앤 시간, 모든 시간을 서영이와 이야기하느라고 보낸다. 아마 내가 책과 같이 지낸 시간보다도 서영이와 같이 지낸 시간이 더 길었을 것이다.'라는 대목이다.
나 역시 결혼하기 전부터 딸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딸을 출산했을 때 나도 모르게 감격하며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이었지만, 사회 생활을하며 관계 형성을 위해 지인들을 만나러 나간다고, 자기 계발하러 대학원 다닌다고, 돈을 벌기 위해 회사를 다닌다고 점점 딸과 보내는 시간을 줄여만 갔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계속 뭔가를 배워야 한다는 생각에 끊임없이 각종 책을 사서 보았다. 그 모두가 딸을 잘 키우기 위해서였다고 말할 수 있지만, 어딘가 모르게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마음은 지울 수 없었다.
그러던 중 몇일전 우연히 피천득 선생의 '인연'이라는 수필집을 다시 꺼내 읽게 되었고, 딸바보 피천득의 삶을 엿볼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 우선순위에 따라 삶을 살았던 것 같다. 그래서 남들이 술마시고 바둑두고 돈을 벌기 위해 없애는 시간에 그는 딸 서영이와 더 오랜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그리고 서울대학교의 교수로서 나보다 책을 봤으면 더 많이 봤을 것이고, 또 더 많이 봐야 하는 상황이었을 텐데 책과 같이 지낸 시간보다도 딸 서영이와 같이 지낸 시간이 더 길었다는 내용은 나를 반성하게 했다.
피천득 선생은 서울대학교 교수 시절 1년 정도 하버드 대학에서 연구원으로 있었다. 사실 하버드 대학에서 연구를 할 수 있고 그 것이 내 이력서에 한 줄을 장식할 수 있다면 가족과 1년쯤은 떨어져 살 수 있을 거라고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피천득 선생은 그 시간마저 안타까웠다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미국에서 돌아오는 길에 하루라도 일찍 딸이 보고 싶어 동경에서 3일간 체류하지 않고 바로 귀국했다고 한다. 그 덕분에 공항에는 아무도 마중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가 삶에서 소중한 것들을 어떤 태도로 지키며 살아갔는지 잘 알 수 있는 또 하나의 대목이다.
나는 자식을 위해 사는 삶을 무조건적으로 찬양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피천득 선생의 글을 보면서 자식을 위해 산다고 하면서 내 욕망만 쫒아갔던 삶을 잠시 뒤돌아 보게 되었다. 때로는 남들보다 더 높이 오르기 위해, 그리고 더 빨리 오르기 위해 살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어제는 MBA 졸업 후 동기분들을 만나는 시간을 가졌다. 그 중 한 분이 다들 어떻게 지내는 지 안부를 물었다. 어떤 분은 대학원 졸업 후 지사장으로 승진하여 가게 되신 분도 있고, 더 좋은 연봉을 받고 이직하신 분도 있었다. 그리고 새로운 조직을 맡아 향후 임원 승진을 위해 한 걸음 더 가까이 가고 계신 분, 신규 브랜드를 런칭하여 사업 다각화를 시도하고 계신 분도 있었다. 다들 각자의 분야에서 열심히 사시고 하시는 일이 잘 되어 가는 것을 보면서 내 마음도 흐뭇했다. 나는 지금 육아휴직을 하고 있다. 나 역시 육아휴직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그 분들처럼 더 좋은 곳으로 가기 위해 노력했을 것 같다. 나는 지금 어쩌면 동기분들과 조금은 다른 방향을 걷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각자 삶의 우선순위에 따라 살고 있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피천득 선생의 딸 피서영 씨는 현재 보스턴 대학교(Boston University)물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라고 한다. 피서영 씨는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미국으로 석박사를 하기 위해 유학을 갔었는데, 피천득 선생은 그 때 마음과 상황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딸이 소학교 다닐 때 6년 동안 내가 늘 학교에 데려다 주었어요. 큰 다음에는 딸과 함께 눈이 내리는 덕수궁 돌담길도 걷곤 했지. 딸이 미국에 간 뒤로는 고적해서 못 살겠더라고…. 그래서 정년도 3년 앞당겨 교수 생활을 마쳤지요.”
나는 우리 딸을 얼마나 사랑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사랑을 어디까지 표현할 수 있을까? 오늘 피천득 선생의 글에 대해 쓰면서 다시 한 번 더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