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에 쫓겨 책을 볼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어설프게 익힌 속독법으로 책에 적힌 글자들을 쭉쭉 읽어 내려간다. 이렇게 빠르게 책을 읽다 보면 책의 대략적인 내용을 파악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정작 그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 주제를 놓칠 때가 많다.
가끔 동네를 산책하다 보면 기존에 있던 집을 부수고 새로운 건물을 짓는 모습을 볼 때가 있다. 나는 그 집의 주인이 아니기에 집 짓는 과정을 띄엄띄엄 보게 된다. 처음에는 '어? 여기 집이 있었는데 어디로 갔지?' 하는 생각에서 '어? 벌써 다 지었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 집 짓는 과정이 금세 지나간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내 삶 조차도 마치 속독하듯이 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래서 시간에 쫓겨 하루하루 나에게 일어나는 작은 행복들을 그저 무심코 스쳐 보내지 않았나 싶다. 특히 내 가족에게 일어나는 작지만 놀라운 변화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긴 호흡으로 바라보지 못했던 과거의 내 모습에 반성하게 된다. 그때는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도 마치 남의 집 짓는 모습을 흘겨보는 것 마냥 띄엄띄엄 수동적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난 6개월 동안 육아 휴직을 통해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들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육아휴직 처음에는 두 아이 모두 잘 걷지 않으려고 했다. 둘이 서로 유모차를 타겠다고 다투기도 했다. 그러다 내가 유모차를 두 개 다 끌 수 없으니 자연히 첫째 아이가 걸어가고 둘째 아이가 유모차를 타고 가게 되었다. 그렇게 5개월 동안 첫 째는 내 손을 잡고 걸어가고 둘 째는 유모차에 태우고 어린이집에 등원을 시켰다.
그리고 이번 달 초부터 아이들은 어린이 날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사주신 킥보드를 타고 등원을 하기 시작했다. 이젠 첫째뿐 아니라 둘째도 유모차를 타기보다는 킥보드를 타고 신나게 등원하는 것을 좋아한다. 둘이 거의 매일 킥보드를 타다가 가끔씩 첫째 아이가 자전거를 타고 갈 때도 있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 오르막이 나오면 4살짜리 둘째가 킥보드에서 내려 6살 누나의 자전거를 뒤에서 밀어준다. 그 모습을 뒤에서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두 아이 모두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다. 그렇게 자전거와 킥보를 타고 등원을 하다가 오늘은 둘 다 나의 손을 잡고 두 발로 걷기도 하고 때론 신나게 뛰기도 하면서 어린이 집까지 갔다. 아마 육아휴직을 하지 않았다면, 그저 아이들 엄마나 할머니를 통해서 이런 소식을 사무실에서 미팅하는 중에 핸드폰 문자로나 전달받았을지도 모른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라는 시다. 이 시가 지금 내 마음을 잘 표현해 주고 있는 것 같다. 요즘 두 아이들이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을 바라볼 때마다 흐뭇하다. 키나 몸무게 같은 외형적인 변화부터 친구들을 배려하고 누나와 동생 간에 서로 양보하는 모습들까지,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이 참으로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어쩌면 아이들은 그대로인데 아빠로서 아이들을 자세히 보고 오래 볼 수 있어서 더 예쁘고 사랑스럽게 느껴지나 보다.
엄마들은 아기를 뱃속에 10개월 동안 품고 있어서 아기와 친숙한데, 아빠들은 엄마와 달라 처음 아기를 볼 때 매우 어색 해 한다. 유전적으로도 엄마들은 아이가 내 배에서 나왔으니 100% 내 아이가 되지만, 아빠들은 그저 옆에서 지켜볼 뿐이니 '지금 태어난 아이가 정말 내 아이인가?'하는 의심을 한 번쯤은 품는다고 한다. 비록 생물학적으로 아빠들은 아이를 뱃속에 품을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 방법이 있다. 바로 육아휴직이다. 아빠들도 육아휴직을 통해 12개월 동안 아이들을 품에 안아본다면 아이들에 대한 사랑도 더욱 깊어지리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