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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기 May 31. 2016

잃어버린 웃음을 찾아서

웃음을 잃어버린 모던 타임즈

    회사 프린터 앞에서 출력물을 기다리면서 주위를 둘러본 적이 있다. 사람들은 어떤 모습으로 일할까 궁금해졌던 것이다.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함께 있는 사람들이지만 정작 그들의 얼굴과 세세한 표정들까지 자세히 볼 기회는 없었던 것 같았다.  


    출력물이 나왔지만, 나는 자리에 바로 돌아가지 않고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괜한 짓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료들의 얼굴 표정을 보니 내 마음이 심히 우울해졌기 때문이다. 대부분 마치 얼굴이 모니터에 빨려 들어갈 것처럼 상체를 앞으로 숙이고 모두들 기계처럼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단 한 명도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순간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즈가 떠올랐다. 무심한 표정으로 하루 종일 컨베이어 벨트 옆에 서서 나사를 조이던 찰리 채플린이 나오는 영화다. 마치 내가 있는 사무실도 그 영화에 나오는 공장과 별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컨베이어 벨트 대신 노트북이 놓여 있고, 우리는 여전히 노트북과 이메일을 통해 일거리를 옆사람에게 나르고 있었다.



핀라드 헬싱키에서 다시 찾은 웃음

    사실 이 얘기를 하고 있는 나도 별반 다를 것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아마 나의 동료 중에 한 명이 내가 일하는 모습을 보았다면 그는 나 보다 더 우울해졌을 것이다. 불평을 늘어놓는 고객과 전화를 끊고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 있는 모습, 어딘가 문제가 터졌다는 메일을 읽으며 미간을 찌푸리는 모습, 마치 화가 난 듯 엄한 키보드만 마구 두들기는 모습까지 그런 모습들이 모두 내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웃음 없는 시간을 보내던 차에 핀란드 헬싱키에서 3주간 머물며 나는 웃음을 잠시 되찾았다.  핀란드 체류를 마치고 한국으로 되돌아 오는 공항에서 나도 모르게 기쁨과 환희에 찬 웃음을 짓게 된 것이다. 핀란드에 머물면서 느꼈던 여유와 행복한 순간들을 회상하다 보니 저절로 가슴속에서 따뜻한 기운이 올라왔고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미소로 번졌었다.


    나는 그때 공항에서 느꼈던 그 경험을 지속하고 싶었다. 그래서 거울 앞에서 억지로 웃음을 지어 보이기도 했다. 억지웃음도 웃음인지라 잠시 효과가 있기는 했다. 하지만 삶 속에서 웃음 유발 요소를 더 찾아야 했다. 억지웃음만으로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회복 탄력성과 행복

    며칠 전 우연히 서가에 꽂혀 있던 '회복탄력성'이라는 책을 꺼내어 본 적이 있다. 그 책의 내용 중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미국에서 정교수가 되면 정년까지 금전적인 걱정 없이 원하는 연구를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한 실험팀이 정교수 임용 심사를 앞두고 있는 사람들을 인터뷰했다고 한다. 그리고 임용이 끝나고 합격한 사람, 탈락한 사람을 차례차례 인터뷰했다. 여기서 끝나지 않고, 실험팀은 몇 년 후에 그들을 다시 찾아가 인터뷰했다. 결과는 어떠했을까?


    사람들은 임용 심사 전에 합격이 되면 행복할 것이고, 불합격이 되면 불행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합격이 되면 정년 걱정 없이 연구를 계속할 수 있지만, 불합격이 되면 여기저기 학교를 떠돌아다녀야 하기 때문에 생활이 안정되지 않을 뿐더러 원하는 연구를 계속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임용 심사 후 인터뷰 결과 합격한 사람들의 행복 지수는 크게 올라갔고, 불합격한 사람들의 행복 지수는 크게 낮아졌다고 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다음이다. 임용심사가 끝난 몇 년 후에 합격자들과 불합격자들을 다시 인터뷰하니 그들 모두의 행복 수준이 임용 심사 전으로 다시 돌아갔다고 한다. 합격한 사람들은 정교수가 되고 바쁜 강의 일정과 연구를 소화하며 합격의 행복을 점점 잊었고, 불합격한 사람들도 각자 자신의 인생 경로를 재조정하며 조금씩 원래의 행복 수준으로 돌아갔다. 즉, 모두 원래의 행복 수준으로 복귀한 것이다.


    우리도 실생활에서 이러한 경험을 자주 한다. 원하는 목표를 이루면 행복할 것 같지만 실제 원하는 것을 이루었을 때 잠시 동안 행복을 크게 느낄 뿐, 시간이 지나면 원래의 행복 수준으로 돌아간다. 구직자로서 계속 낙방을 하다가 취업이 되면 크게 기뻐하다가도 3주 또는 3개월 정도만 지나면 원래대로 돌아오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저자는 원래의 행복 수준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는 행복 수준이 행복한 순간 또는 불행한 순간을 겪더라도 원래대로 다시 돌아오는 회복 탄력성 때문이다.


행복과 불행의 롤러코스터

나는 '랜터 윌슨 스미스'의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시를 좋아한다. 참고로 이 시는 류시화의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에 수록되어 있다. 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어느 날 페르시아의 왕이 신하들에게

마음이 슬플 때는 기쁘게

기쁠 때는 슬프게 만드는 물건을

가져올 것을 명령했다.


신하들은 밤새 모여 앉아 토론한 끝에                    

마침내 반지 하나를 왕에게 바쳤다.        

왕은 반지에 적힌 글귀를 읽고는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만족해했다.

반지에는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슬픔이 그대의 삶으로 밀려와 마음을 흔들고

소중한 것들을 쓸어가 버릴 때면

그대 가슴에 대고 다만 말하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행운이 그대에게 미소 짓고 기쁨과 환희로 가득할 때

근심 없는 날들이 스쳐갈 때면

세속적인 것들에만 의존하지 않도록

이 진실을 조용히 가슴에 새기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인생은 행복과 불행의 롤러코스터와도 같다. 행복과 불행을 겪을 때, 그 순간에는 행복과 불행이 계속될 것 같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내 곧 바람처럼 지나가 버린다. 나의 간절한 목표가 성취되었을 때 행복도 잠시 뿐이었고, 반대로 성취되지 않았을 때 평생 나를 괴롭힐 것만 같은 불행도 그때뿐이었다.


    그렇다면 나의 평소 행복 수준을 어떻게 해야 높일 수 있을까?  최근 나는 한동안 알 수 없는 고민들로 웃음보다는 원래의 무표정한 모습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이유를 알 수 없어 그저 시간이 해결 해 주기를 바라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다행히 어제와 오늘 그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경험을 하였다.


행복의 발견

    다음은 어제 밤에 있었던 일이다. 어제저녁 조카가 집에 놀러 왔다. 조카는 나의 첫째 딸과 동갑인지라 둘이 알콩달콩 재밌게 놀고 있었다. 그런데 조카가 집에 갈 무렵 한 가지 사건이 벌어졌다. 바로 조카가 딸이 아끼는 공주 스티커를 뜯어 사용 해 버린 것이다. 딸아이는 보물처럼 아끼던 스티커가 타인의 손에 의해 뜯겨나가는 것을 보자 마치 자신의 마음이 뜯겨 나가는 것처럼 슬퍼했다. 나는 딸아이를 타이르며 친구랑 나누어 써야지 하며 달랬지만 아이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평소에 딸아이가 자신의 물건을 잘 나눠 쓰기 바라는 마음에서 계속 타일렀지만 소용이 없었다. 아이는 점차 더 크게 그리고 더 서럽게 울었대기만 할 뿐이었다. 울음을 그치지 않는 딸에게 나도 조금씩 화가 나기 시작했고 점차 아이에게 언성을 높였다. 그러자 아이는 자기는 잘못을 안 했는데, 왜 자신한테만 혼을 내냐고 더 크게 울먹였다. 자신은 매일 동생 때문에 혼나고, 오늘 아침에도 어린이 집에서 자신은 정리를 하고 친구가 정리를 안 했는데 선생님이 자신을 혼냈다고 하며 더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그 말을 듣자 나는 아이가 안쓰러웠다. 어른들도 자기 소유를 다른 사람들과 잘 나누지 못하는데, 6살 아이에게는 더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또한 매번 동생과 다툴 때 첫째인 딸이 가장 많이 혼이 나는데, 어린 시절 나 역시 첫째로서 그런 경험이 있었던 지라 아이의 서러움이 이해가 되었다. 게다가 전후 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어린이집에서도 억울한 일을 당했으니 지금은 아이에게 훈육보다는 이해와 사랑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이에게 "네가 오늘 많이 힘들었겠구나."라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아빠가 스티커 사줄 테니까 그만 울음을 그치라고 하였다. 계속 울면 몸이 힘들기 때문이다. 아이는 울음을 조금씩 그치더니 나에게 그럼 지금 바로 마트에 가자고 하였다. 나는 아이의 손을 잡고 근처 마트에 갔다. 그리고 아이는 그곳에서 평소에 자신이 갖고 싶어 하던 스티커를 골랐다. 집으로 가는 길에 나는 아이에게 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해 주었다. 아빠도 누가 와서 아빠 물건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으면 참 힘들었다고, 그리고 첫째로 태어나서 동생 때문에 너처럼 힘들 때가 있었다고, 그런데 아빠가 보기에 너는 그래도 동생들한테 그리고 친구들한테 양보를 잘 하는 것 같다고 얘기해 주었다. 집에 도착해서 아이는 마음이 편안 해 졌는지 이내 스르르 잠이 들었다.


    그 다음날 아이는 어느 때 보다 나에게 더 애교를 부렸다. 내 얼굴 앞에서 크게 웃어 보이고, 평소에는 시켜야 하는 뽀뽀도 여기저기 해 주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얌전히 앉아서 밥도 잘 먹고, 스스로 옷을 입고 어린이 집에 갈 준비를 하였다. 아이의 밝은 모습을 보자 내 마음에도 행복한 기운이 퍼졌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저절로 웃음이 났다. 오랜만에 되찾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웃음이었다.


     그 순간 깨달음이 왔다. 평소의 행복의 수준을 높이는 방법. 그건 우리 아이를 행복하게 하고 평생을 함께할 가족을 웃음 짓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아이가 웃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나의 얼굴에도 자연스럽게 미소가 번지게 된다. 굳이

억지로 웃으려 하지 않아도 저절로 웃음꽃이 피게된다. 매일 가족들을 행복하게 할 일을 생각하고 실천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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