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4살짜리 아들과 어린이 대공원에 갔다. 오랜만에 미세먼지가 없는 화창한 날이었다. 사실 처음부터 아들과 놀러를 가기 위해 미리 계획한 것은 아니었다. 어제 해야 할 일이 여러 가지 있었는데 마음속 깊은 곳에서 한 가지 질문이 서서히 기어 올라왔기 때문이다.
'오늘 하루를 행복하게 지내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요즘 이 질문이 나의 하루를 바꾸고 있다. 어제도 이 질문으로 인해 원래의 계획을 모두 취소하고 아들의 손을 잡고 어린이 대공원에 간 것이었다. 하지만 막상 아들과 집을 나서니 몇 가지 걱정되는 것이 있었다. 우선 우리 아들은 아직 오래 걷지를 못한다. 한 예로 우리 집에서 어린이 집까지는 아들 걸음걸이 속도로 15~20분 정도 되는데 아들은 이 거리를 매일 유모차로 다녔다. 그다음으로 나는 아들이 오후가 되면 졸려서 각종 잠투정을 부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어린이 집에서는 점심 식사 후 항상 2시간씩 낮잠을 자는데 밖에서는 적절한 숙면을 취할 수 없으므로 잠투정을 부릴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나는 모든 가능성에 대비를 해야 했다. 그래서 일단 불필요하게 걷는 거리를 최소화하기로 했다. 평소 나 혼자라면 걸어서 가는 지하철역까지도 마을버스를 이용했다. 그리고 돗자리 하나를 준비했다. 어린이 대공원 안에서 걷다가 힘들거나 혹시 졸리다고 하면 언제든 돗자리를 펴서 휴식을 취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이다. 이 외에도 시원한 물과 물티슈 그리고 여벌 옷 등 필요한 모든 것을 챙겼다. 가방은 점점 무거워졌지만 걱정과 근심은 줄일 수 있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나는 아들과 손을 잡고 집에서 나와 마을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마을버스에 올라타 자리에 앉으니 열린 창문 틈으로 시원한 바람이 들어왔다. 따스한 햇살을 맞으며 아들과 소풍을 간다고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마음이 들떴다. 버스에 내려 우리는 지하철 역으로 가는 길에 있는 과일 주스 집을 들려 둘이 나누어 먹으면 충분한 1리터짜리 청포도 주스를 하나 주문했다. 우리는 시원한 주스를 사이좋게 서로 나누어 마시며 지하역으로 가서 전철을 탔다. 지하철 안에서 엄마에게 보내 줄 셀카도 하나 찍고, 아들이 조금 지루함을 느낄 때는 잠깐 뽀로로 동영상을 보여 주었다. 덕분에 집에서 어린이 대공원까지 즐거운 마음으로 올 수 있었다.
어린이 대공원 정문에 들어서니 저 멀리 타요 버스 3대가 보였다. 타요와 가니 그리고 로기였다. 타요를 좋아하는 아들이 신이 나서 주먹을 쥐고 방방 뛰기 시작했다.
"아들, 우리 타요까지 달려가 볼까?"
"응"
나는 아들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달렸다. 어린이 대공원 정문에서 타요까지 아들에게는 제법 먼길이었지만, 아들은 중간에 쉬거나 넘어지지 않고 한 번에 타요버스가 있는 곳까지 달렸다. 타요 버스 안에 도착하니 알록달록한 어린이 의자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각종 타요 관련 장난감도 있었고, 타요 동영상도 상영되고 있었다. 아들도 신나 했지만 나 역시 신기하게 여기저기를 훓터 보았다. 평소 타요 버스를 많이 타 보았지만 겉모습만 타요지 속까지 이렇게 어린이 감성으로 해 놓지는 않았기에 거기에 있는 모든 것이 흥미로웠다. 평일 오전이라 사람도 많이 없어서 우리는 여유롭게 그 공간을 모두 누리고 즐길 수 있었다.
타요 버스에서 내리자 어디선가 음악이 흘러나오며 하늘 높이 분수가 솟구치는 것이 보였다. 나는 아들의 손을 잡고 분수대 앞으로 갔다. 아름다운 동요의 선율을 따라 분수가 춤을 추듯 이리저리 흔들렸다. 아들은 그 모습에 신기했는지 "우와~ 우와~"하며 감탄사를 연발하기 시작했다. 나도 평소 같았으면 "어, 분수 쇼하네. 근데 물튀긴다 빨리 지나가자."라며 심드렁하게 그냥 지나쳤을지 모른다. 하지만 어제는 나도 아들의 마음처럼 동심으로 돌아가 연신 뿜여져 나오는 물줄기를 보며 감탄을 하였다. 분수의 물줄기가 하늘에 뿌려지자 아름다운 무지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여유로운 마음으로 아들과 분수 그리고 무지개를 바라보면서 서서히 행복한 기운이 온몸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비록 오늘 해야 할 일을 모두 취소하기는 했지만 오늘 하루 행복 해 지기 위해 아들과 이곳에 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수쇼가 끝나고 우리는 어린이 대공원 안에 있는 동물원으로 향했다. 분수에서 동원원까지 약 300미터 거리라고 하는데, 걸음이 느린 아들과 함께 걸으니 1000미터도 더 되어 보였다. 하지만 나는 아들을 재촉하며 목적지로 빨리 가기보다 아들과 함께 걷는 그 길을 즐기기로 했다. 아들과 함께 걸으며 좌우를 둘러보니 넓은 잔디밭 사이로 나무가 우거져 그늘이 있었고, 그 아래에서 몇몇 사람들이 여유롭게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나도 갑자기 입에 뭔가를 넣고 싶어 졌다. 그래서 우리는 앞에 보이는 편의점에 들어가 오징어 땅콩 과자 하나를 골랐다. 그리고 아들과 오징어 땅콩을 나눠 먹으며 천천히 동물원까지 걸어갔다. 아들은 힘들 만도 했지만 쉬자는 말 한마디 없이 씩씩하게 걸어갔다. 집에서 나올 때 아들이 잘 안 걸으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걱정거리 하나가 저절로 해결되는 순간이었다.
따사로운 햇살 아래서 시원한 산들바람을 맞으며 산책하듯 천천히 걷다 보니 어느새 동물원에 도착했다. 동물원에는 그동안 아들과 함께 책에서 보았던 코끼리, 사자, 호랑이 등 맹수들부터 각종 재롱을 부리는 원숭이들까지 다양한 동물들이 있었다. 아들은 거대한 코끼리를 보자 연신 신기해하며 눈을 뗄 줄 몰랐다. 그리고 유리벽이 있었지만 사자 바로 앞에 가니 무섭다고 얼른 내 다리 사이로 숨기도 했다. 동물원에서 파는 먹이를 원숭이에게 던져 주니 덥석 덥석 받아먹는 모습도 아들은 흥미로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평소와 같으면 한 번 쓱 보고 지나갔을 동물이지만, 이 날은 아들과 함께 동물 하나하나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호랑이가 누워서 자면서 배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모습, 코리끼리의 주름이 몸 전체 중 어느 부위에 가장 많은 지 등을 천천히 관찰했다. 내가 이렇게 한 이유는 많은 동물을 보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하나를 보더라도 오래 그리고 깊게 보는 습관을 아들에게도 전해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동물원 투어를 마치고 어린이 대공원 안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어린이 대공원 밖에 나가서 더 맛있는 것을 사주고 싶었지만,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아들에게는 힘들 수 있기 때문이다. 식사를 마치고 나와 보니 오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유모차를 끌고 어린아이와 함께 산책을 나온 부부도 있었고,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놀러 나온 아이들 그리고 우리 아들과 동갑처럼 보이는 예쁜 여자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식사를 하러 가는 외국인 아빠의 모습도 보였다. 그런데 그 순간 묘한 감정이 들었다. 자세히 둘러보니 아들과 유모차도 없이 온 사람은 나 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 사실이 나로 하여금 묘한 성취감을 느끼게 했다. 사실 나는 육아휴직 전까지만 하더라도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을 어색해하고 두려워했다. 무엇을 해야 할지, 혹시 갑자기 응가를 하면 어떡해 대처해야 할지 모르는 초보 중에 상초보였다. 그런데 오늘은 아내도 없이 그리고 유모차도 없이 아들과 단 둘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 사실은 마치 인간이 처음으로 우주선을 쏘았을 때와도 비견될 만큼 내 인생에 하나의 큰 도약처럼 다가왔다.
가끔씩 외국 영화를 보다 보면 외국의 아버지들이 아이들과 친구처럼 잘 지내는 모습이 나온다. 몇 년 전 인상 깊게 보았던 어바웃 타임(About Time)이라는 영화에서도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친구 같은 인생의 동반자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나 역시 결혼하고 아이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그런 아빠가 되겠다고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생각과는 달리 하루 종일 바쁜 일과로 회사에서 돌아오면 항상 녹초가 되기 일쑤였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을 키우는 것은 점점 육아휴직 중인 엄마의 역할이 되어 갔다. 그러는 사이 친구 같은 아빠가 되겠다는 처음 다짐은 서서히 녹아 없어지고, 어느 새 나는 집에만 오면 골골되는 아빠로만 존재하고 있었다.
요즘은 외국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아이들과 친밀하게 지내는 아빠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도 어느새 부익부 빈익빈처럼 되어 버렸다는 사실이다. 어느 가정에서는 매주말만 되면 가족들끼리 캠핑을 가거나, 놀이동산을 가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다른 한 편에서는 주중에 매일 야근과 회식 때문에 주말에는 피로에 사로잡혀 아이들과 동네 공원이나 놀이터도 가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하루 종일 집안에서 누워서 체력을 보충하며 주말의 대부분을 보내는 가정도 있다. 그러나 집에서 잠만 자는 아빠들도 언젠가는 아이들과 여행을 다니면서 세상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 주고 싶은 꿈을 꾸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어제 아들과 하루를 함께 보내면서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아이들과 세계 여행을 하지 않아도 된다. 아이들과 단 둘이 근처 공원에 가서 산책을 하거나, 동네 놀이터에서 함께 그네를 타고 성공이라고 본다.' 나는 군대에 입대해서 얼차려를 받는 도중 난생처음 팔 굽혀 펴기 하나를 제대로 하는 데 성공했다. 그 후로 팔 굽혀 펴기에 재미 들려서 매일 틈만 나면 연습했던 기억이 난다. 최근에는 운동을 하면서 난생처음 턱걸이를 하나 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아이들과 놀이터에 가거나 공원에 갈 때 철봉이 보이면 한 두 개라도 계속하고 있다. 완전 저질 체력이었던 지라 뒤늦게 팔 굽혀 펴기와 턱걸이에 성공하고 재미가 들렸다. 아이를 키우는 것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매일 집에서 누워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책을 보고 영감을 받아 아이들과 세계여행을 하거나 제주도 한 달 살기를 하지는 못할 것이다. 처음에는 동네 놀이터에서 그리고 어느 정도 적응이 되면 근처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그리고 그다음에는 공원, 놀이동산, 1박 2일 여행 등으로 엄마 없이 아빠와 자녀 둘이 조금씩 범위를 넓혀가며 추억을 쌓아가면 될 것이다. 그러다보면 아이들과 함께 하는 즐거움에 점점 푹 빠져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행복이 정말 가까이에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사실 처음이 어렵다. 나 역시도 회사 다니면서는 엄마 없이 아이들과 전혀 함께 하지 못했고, 육아 휴직을 하고 체력과 여유를 되찾으면서 하나씩 해내고 있기에 누구에게 뭐라 할 수 있는 입장이 되지 않는다. 다만 아이들과 단 둘이 하루를 보내면서 느꼈던 행복감이 굉장히 컸기 때문에 이렇게 경험을 나누는 것뿐이다. 그리고 이 글을 마치면서,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느꼈던 것 한 가지를 공유하려고 한다. 사실 아이들은 어디 멋진 곳을 가는 데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물론 재미있는 뮤지컬이나 즐거운 놀이동산을 가면 즐거워할 것이다. 그런데 갔다 와도 아이들이 그날 있었던 일 중에 가장 좋았던 일로 기억하는 건 아빠와 함께 먹은 아이스크림인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그러니 큰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주말에 아이의 손을 잡고 편의점에 가서 아이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하나를 집어 들고 동네 탐험만 하더라도 아이에게는 최고의 하루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