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남자, 금성 여자

어머니와 함께한 오사카 여행기

by 노용기

인천에서 오사카로...


지난 한 주간 일본 오사카, 교토, 나라, 고베 등 간사이 지방을 어머니(딸에게는 할머니)와 딸아이와 함께 여행했다. 원래 육아 휴직 프로젝트의 한 일환으로 나와 딸아이 둘이서 가려고 계획했던 여행이었다. 그런데 딸과의 일본 여행 계획을 부모님께 말씀드렸더니 어머니도 함께 하길 원하셨다. 그렇게 우리 셋은 6월 15일 수요일부터 23일 목요일까지 8박 9일로 여행을 떠났다.


오사카 간사이 국제공항으로 가는 비행기는 오후 5시에 인천 공항을 떠났다. 그리고 비행시간은 채 1시간도 되지 않았으나 이륙과 착륙에 각각 30분씩을 소비하여 우리는 대략 오후 7시즘 간사이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간단한 입국 절차를 마치고 출출해진 우리는 공항 3층에 있는 식당가로 향했다. 여행 책자에 보니 공항에서도 괜찮은 음식들을 접할 수 있다는 내용이 있었다.


화성 남자와 금성 여자의 갈등 시작


"아빠, 라면 먹고 싶어."

딸아이가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배 고프다며 라면을 먹고 싶다고 했다. 사실 나 역시 일본에 도착해서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이 바로 라멘이었다. 일본식 라멘은 내가 영국에서 혼자 밥 해 먹으며 어학연수를 하던 시절 유일하게 나에게 국물 요리에 대한 갈증을 채워준 음식이었다. 어학연수를 떠나기 전까지 집에서 요리란 것을 해 본 적이 없는 나는 거의 매일 햄과 야채를 넣은 볶음 요리를 해 먹거나 현지에서 삼겹살 부위처럼 생긴 고기로 구이 요리를 해 먹는 것이 전부였다. 아무래도 맛을 내기 어려운 국물 요리는 나에게 범접하기 어려운 분야였다. 그때 마침 친구가 소개하여 준 일본 라멘 집은 나에게 구세주 같은 존재였다. 쫄깃한 면발,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있는 고기 몇 덩어리와 시원한 국물은 메마른 반찬으로 지친 나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것 같았다.


"얘야 조금 있으면 어두워질 텐데 집에 가서 먹자."

딸아이가 라면 먹고 싶다는 말에 내가 동조하자마자 엄마는 탐탁지 않다는 듯 한 마디 하셨다. 엄마는 한국에서 이것저것 음식을 싸온 게 있다며 그 음식들을 먼저 먹길 원하셨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마음에 참을 인(忍) 자를 하나 새겼다. 여행 가기 전부터 음식을 싸가려고 했던 엄마에게 굳이 음식을 준비하시려면 아침에 먹을 최소한의 음식만 준비하시라고 말씀드렸는데도 여행가방 반 이상을 음식으로 채우신 것이었다.


어렸을 적부터 우리 부모님은 여행지에서 사 먹는 것을 매우 아까워하셨다. 그래서 항상 집에서 음식을 바리바리 준비해 가셨다.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나는 그게 참 싫었다. 여행지에 가면 거기에서 먹을 수 있는 맛있는 음식들이 있는데 집에서 매번 먹던 음식을 밖에 나와서도 또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 번은 어린 시절 놀이동산에 놀러 갔을 때 저녁 시간에 배가 너무 고파서 머리까지 띵할 정도로 아팠던 기억이 있다. 당시에도 부모님은 여기 음식 가격이 너무 비싸다며 배고파하는 나를 이끌고 늦은 시간이 돼서야 집에 와서 저녁 식사를 했었다.


나는 이러한 부모님의 행동에 대한 반대 심리 때문인지 여행 갈 때는 현지에서 한 끼 이상 식사를 하는 편이다. 그것이 여행의 묘미이고 즐거움이라고도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나는 여행 가기 전부터 여행의 일환으로 현지 음식을 주로 먹을 테니 음식을 싸오시고 싶으시면 최소한만 준비하시라고 말씀드렸던 것이다. 그런데 첫날 공항에 도착하면서부터 엄마와 나 사이에 갈등이 생긴 것이었다. 공항에서 저녁을 먹고 싶어 하는 나와 숙소에 도착해서 집에서 싸온 음식으로 저녁을 해결하고 싶은 엄마와 첫 의견 충돌이었다.



해결책이 아닌 공감


나는 과거 어린 시절 놀이동산에서의 악몽을 재현하고 싶지 않았다. 늦은 저녁까지 쫄쫄 배를 굶고 배고픔을 참으며 숙소에 도착해서 한국에서 싸온 음식으로 일본에서의 첫날 밤을 보내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차분하게 엄마에게 설명을 드렸다. 공항에서 숙소까지 가면 이미 해는 지고, 집에 가서 먹으면 너무 늦게 식사를 하게 되어 잠잘 때 소화가 잘 되지 않으며, 여기 공항에 있는 음식점 수준이 괜찮다고 여행책자에 나와 있으니 저녁을 여기서 먹고 가자고 말씀드렸다.


엄마는 못 이기는 척 내 말을 따랐다. 그리고 우리는 공항 3층에 있는 식당을 둘러보았다. 초밥, 돈가스, 가락국수 등 다양한 메뉴의 식당들이 즐비해 있었다. 일본 여행이 처음인 나는 드디어 제대로 된 원조 일본 음식을 먹을 수 있겠다며 흥분했다. 사실 오사카 여행의 제 1 목적은 바로 음식이었다. 일본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이 모두 오사카 음식이 맛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어학연수 시절 먹었던 라멘의 원조 맛을 경험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사람들이 줄 서있는 한 라멘 집을 찾았다. 그렇다 사람들이 줄 서서 먹을 정도면 맛은 어느 정도 보장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나는 잘 모르겠지만 유명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사진과 싸인이 붙어 있는 걸 보니 나름 유명한 집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라멘 집에 들어가 가격이 비싼 라멘 두 개를 시켰다. 그리고 두 개 중 하나는 어린 딸과 함께 먹기 위해 곱빼기로 시켰다. 주문을 하고 식탁 위에 올려진 몇 개의 조미료를 신기하게 쳐다보며 대화를 나누는 사이 주문했던 라멘이 하나 씩 나오기 시작했다.


"어우 짜~!"

라멘의 국물을 한 숟갈 뜨신 엄마의 첫 한 마디였다. 내가 주문한 라멘의 맛을 보자 역시 짰다. 예전에 영국 런던에서 맛보았던 라멘 맛과 달랐다. 나는 음식을 먹을 때 거의 간을 하지 않고 심심하게 먹는 편이라 짠맛이 더욱 강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내가 가자고 한 곳이니 불평하지 않았다. 일본 정통 라멘을 원래 짠가 보다 하며 음식의 좋은 점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국물의 깊이라든지 면발의 쫄깃함이라든지 말이다. 하지만 엄마는 계속 라멘이 짜고 느끼하다는 말씀을 하셨다.


"라면이 너무 짜네... 밥이라도 있으면 좋겠다."

"엄마, 밥 시켜드릴까요?"

"아니야... 됐어..."


나는 순간 '도대체 뭐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라멘이 짜서 밥과 같이 드시면 좋겠다고 생각하셔서 나에게 "밥이라도 있으면 좋겠다."라고 말씀하신 것인데, 막상 "밥 시켜 드릴까요?"라니 "됐다."고 하신다. 도대체 밥을 시키라는 것인지 아니면 안 시켜도 된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화성 남자, 금성 여자'라는 책이 생각났다. 여자는 어떠한 해결책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공감을 원한다는 내용과 함께 말이다. 이럴 때는 "엄마 라면이 짜요? 그러네 좀 짜네요."라고 말해야 하는데 나는 어떠한 해결책을 제시하려고 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복잡했다. 지금까지 아내랑 9년 가까이 살면서도 경험해 보지 못한 간극이었다. 그 순간 엄마가 여자로 보였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다. 여자의 말에는 해결책이 아닌 공감을 해 주어야 한다는 이론은 알고 있었지만, 결혼 후 살면서 아내가 나에게 거의 맞추어 주었기 때문에 나는 공감 훈련이 되어 있지 않았다.


IMG_3372.JPG 첫 분쟁의 불씨 라멘..


엄마에게는 단체관광이 답인가?


둘 째날 우리는 오사카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카이유칸'이라는 아쿠아리움에 갔다. 둘 째날부터 비가 너무 많이 내려 시내 관광이 불가능해져서 내린 차선책이었다. 카이유칸은 거대한 아쿠아리움이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과거 미국 LA에 있는 아쿠아리움도 가보았지만 카이유칸의 규모는 놀라웠다. 특히 태평양 관에 있는 고래상어(Whale shark)는 대단했다. 고래상어는 세계에서 가장 큰 어류로 몸길이만 15m가 넘고 무게는 20톤이 넘는 동물이다. 그런데 그렇게 큰, 게다가 이름에 상어(shark)가 들어 있음에도 성격이 온순하여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것이 신기했다.


카이유칸과 햅파이브 등 몇 군데 관광을 마치고 우리는 우동을 먹기 위해 한 식당에 들렀다. 엄마가 우동을 먹고 싶다고 해서 들어간 식당이었다. 일본에 가면 우동 식당이 많을 줄 알았는데, 내가 잘 몰라서 그런지 은근 찾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엄마나 나는 우동 면발과 함께 두세 입 베어 먹을 수 있을 정도로 큼직한 어묵이 들어 있는 우동을 찾았는데 식당 밖에 전시된 음식 샘플을 보면 우리가 생각한 우동이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한 군데 식당 윈도에 붙여진 음식 사진에 큰 네모난 어묵이 둥둥 떠있는 것을 보고 우리는 고민하지 않고 바로 음식점에 들어갔다


창 밖에 사진에 나온 우동 메뉴를 시키고 기대하는 마음으로 음식을 기다렸다. 식당에서 혼자 먹는 사람들을 보며 일본에는 혼자 먹는 사람들이 정말 많나 보다 하며 엄마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누자 어느새 우동이 나왔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내가 본 사진으로 본 어묵은 사실 어묵이 아니라 유부였다. 여행책자에서 일본에서는 유부 우동이 유명하다는 내용을 본 것 같기는 한데, 어묵이 아니어서 실망했다. 유부도 맛있기는 하지만 식감이 단단하지 않아 우동 국물 속에서 흐물거리는 것이 뭔가 아쉬움이 있었다. 이 외에도 딸아이가 소바를 먹고 싶어 해서 시켰는데, 내가 생각한 냉소바를 육수에 찍어 먹는 것이 아니라 우동에 소바면이 넣어서 나와 당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느 이왕 시킨 음식 후회해봐야 소용없으므로 맛있게 먹으려 했다.


엄마는 본인이 시킨 음식과 내가 시킨 음식을 하나 씩 맛보시더니 얼굴을 찌푸리시면서 한 말씀하셨다.

"이것도 짜다. 여긴 음식이 다를 왜 이렇게 짜다니"

그 순간 나는 힘이 쭉 빠지면서 엄마는 아무래도 단체 관광이 답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20대 시절 유럽과 미국, 호주 등 여러 나라를 자유여행으로 다녀왔다. 중국 베이징으로 단체 관광을 한 번 간 적이 있는데, 그때 기억 남는 거라고는 버스에서 잠으로 보낸 대부분 시간들이었다. 편하긴 했지만 역시 자유여행으로 해야 그 나라의 다양한 면을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매 번 단체관광만 다녀온 엄마에게 자유여행을 통해 여행의 참맛을 알게 해 드리고 싶었다. 그리고 더 이상 걷는 것이 힘들어 지시기 전에 그리고 지금처럼 육아휴직을 하며 시간 적으로 여유가 있을 때 엄마와 추억을 쌓고 싶었다. 그런데 계속되는 엄마의 불만 표시로 조금씩 마음이 힘들었다. 자유여행을 하다 보면 때론 길도 헤매기도 하고, 음식도 입에 맞지 않을 수가 있다. 대신 그렇게 길을 헤매면서 여행 책에는 나오지 않는 뜻하지 않은 곳을 발견할 수도 있고, 입에는 맞지 않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맛과 그 나라의 음식 정서를 경험할 수 있다. 반면 단체 관광은 버스로 움직이니 헤멜 일이 없어 편하고, 관광객 입맛에 맞춘 음식점을 가기 때문에 음식 때문에 불평할 일이 그리 많지 않다. 이러한 생각이 드니 엄마와 자유여행은 내 욕심이었나 하는 생각과 결국 엄마에게는 단체 관광이 답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IMG_3455.JPG 두 번째 분쟁의 불씨 우동...


결국 폭발


셋 째날 날씨가 좋아져 우리는 오사카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나라에 갔다. 그곳에는 사슴공원이 있어 우리 가족에게 새로운 경험이 될 것 같았다. 사슴공원에 가면 사슴들의 분비물 냄새에 비추라고 하셨던 분도 있었지만, 거기가 아니면 어디서 사슴이 바로 옆에서 거니는 것을 볼 수 있겠나 하는 마음에 한 번 가보기로 마음을 굳혔다.


나라에 도착해서 나라코엔으로 향하니 얼마 가지 않아 내 가슴에 닿을 만한 큰 사슴이 나타났다. 우리는 사슴에게 줄 센베 과자를 샀다. 사슴에게 주려고 센베를 꺼내고 하는데, 어느새 사슴 바로 옆에 다가와 있어 놀랐다. 과자를 손에 들고만 있어도 저 멀리서 달려오니 처음에는 조금 무서웠다. 게다가 어린 딸은 사슴에게 과자를 주겠다며 호기롭게 사슴에게 다가갔지만 자기보다 덩치가 큰 사슴을 보자마자 센베 과자를 땅에 던지고 도망가기 일쑤였다. 100~200마리도 넘는 사슴들이 사람들과 어울려 공원 여기저기에 있는 것을 보니 뭔가 자연으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사슴들과 함께 공원을 거닐며 어느새 도다이지 절에 도착했다. 사실 우리나라에도 절이 많은데 하며 관심이 별로 없었는데, 그래도 하루에 한 군데 정도는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 봐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에 입장표를 구입했다. 그런데 도다이지 절에 들어서고 생각이 바뀌었다. 생각보다 큰 규모의 절과 불상들이 시선을 압도했다. 학창 시절 국사책에서는 우리나라가 일본에 문물을 전수해 주었다고 하는데, 오히려 우리나라 사신들이 일본을 방문하고 더 놀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물론 규모가 크다고 대단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동안 일본의 문화를 너무 편협한 시선으로 문화 수준을 높다 낮다로 단순화해서 바라보지 않았나 하는 반성을 해보았다.


그 날 나라코엔부터 도다이지 절까지 하루 동안 산책하는 마음으로 다녀오겠다고 했는데, 생각보다 볼 것이 많아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거의 12시간 가까이 걸었다. 그렇게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오면서 근처 마트에 들러 내가 먹을 오코노미야끼 한 접시와 엄마와 딸아이가 각자 먹을 음식을 골라 샀다. 늦은 저녁시간 몸은 피곤했지만 하루 종일 새롭고 다양한 경험을 하여 기분이 좋았다. 또한 많이 걸으면 힘들어할까 걱정했던 엄마와 딸아이도 하루 종일 걸었는데도 피곤하다는 말보다 재밌었다고 해 주어 더 보람찼다.


그런데 문제는 오코노미야끼를 먹을 때 발생했다. 엄마가 본인이 사오 신 음식을 먹으시다가 내가 사온 오코노미야끼를 한 젓가락 드시더니 인상을 지뿌리시며 한 말씀하셨다.

"아우 ~ 짜, 이거 잘 못 산거 같다."

사실 오코노미야끼가 짜긴 짰다. 하지만 엄마가 계속 음식에 불평을 하는 소리를 더 이상 듣고 싶지는 않았다. 물론 이 순간에도 "엄마 말이 맞네요. 생각보다 오코노미야끼가 많이 짜네요."하면 될 일이긴 했다. 그런데 앞으로 여행할 날이 더 있는데, 계속 불평을 들으며 여행을 하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 순간 한 마디 엄마에게 하게 되었다.

"엄마 제발 불평 안 하면 안돼요?"

"넌 말도 못 하게 하니?"

"불평하실 거면 차라리 말씀하지 마세요."

그 순간 방안에는 냉기가 돌았다. 엄마는 더 이상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엄마와 나 사이에 있는 딸에게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엄마는 한국을 떠나 아들을 믿고 여행 왔는데, 나에게 많이 서운한 눈치셨다.


그날 엄마는 더 이상 아무 말하지 않고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나는 마음속으로는 부모를 공경해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행동하지 못하는 나 자신을 자책했다. 그리고 아내와 엄마와 여행하는 어려움에 대해 카톡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사실 그 날 저녁, 그동안 나에게 맞혀주며 불평 없이 살아온 아내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고, 엄마와 함께 사는 아빠가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 날 아내가 어머니와 함께 여행할 날이 그리 많지 않을 수도 있을 텐데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잘 맞춰 드리라는 말에 생각을 고쳐 먹었다.

오코노미야끼.jpg 세 번째 분쟁 - 오코노미야끼



얘야 저 새 이름이 뭐냐?


아내와 전화를 끊고 오래전에 봤던 동영상 하나가 떠올랐다.


햇살이 비치는 아침 창가에 앉은 아버지가 창밖을 보며 아들에게 질문을 한다.

"아들아 저 새 이름이 뭐냐?

아들은 창밖 새들을 보며 한 마디 했다.

"까치예요."

그리고 잠시 후 아버지는 다시 아들에게 물었다.

"아들아 저 새 이름이 뭐냐?"

아들은 조금은 귀찮은 듯 대답했다.

"아버지, 까치라니깐요."

그리고 잠시 후 아버지는 또 아들에게 물었다.

"아들아 저 새 이름이 뭐냐?"

"아버지, 까지라도 몇 번을 말씀드려야 알아들이시겠어요. 까치예요 까치!"

그때 옆에서 잠자코 대화를 듣던 어머니가 입을 여셨다.

"아범아, 네가 어렸을 때 너는 아버지에게 저 새 이름이 뭐냐고 백번도 넘게 물어보았다.

아버지는 그때마다 너에게 백번이고 넘게 대답을 해 주셨지.

백번을 넘게 듣고서야 너는 까치라는 단어를 알게 된 거란다."


그렇다. 우리 엄마도 내가 어렸을 때 반찬 투정과 학교 생활에서 오는 짜증 그리고 각종 불평불만을 다 받아 주셨다. 요즘 아이들을 키우면서 엄마 역시 나를 키우며 얼마나 인내하셨을 생각해 볼 때가 자주 있다. 특히나 증조할머니부터 장가 안 간 삼촌까지 있는 대가족 하에서 맏며느리로서 모든 가사 역할을 담당해야 했던 엄마에게 아들의 투정을 모두 받아주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20년 넘게 엄마는 모든 것을 인내하며 나를 길러 주셨다.


이런 생각이 들자 엄마에게 더 이상 불평하지 말라고 화를 냈던 내 자신을 반성하게 됐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잠에서 깨어난 엄마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엄마는 아직 마음이 덜 풀린 것 같았다. 그럴수록 나는 엄마에게 더 다가가기로 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서서히 엄마의 마음이 풀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엄마를 위한 맞춤 여행 그리고 행복한 마무리


일 때문에 이번 여행을 함께 하지 못한 아내에게서 문자가 왔다. 오사카 근처에 잇큐 온천이라는 곳이 있는데 어머님이랑 한 번 다녀오라는 것이었다. 사실 온천 여행은 계획에 없었다. 하지만 때마침 부슬비가 내려걸으면서 여행을 하는 것이 어려웠고, 어머니도 매일 8시간에서 10시간 넘게 걷는 강행군에 온천을 다녀오고 싶어 하시는 것 같았다.


우리는 숙소를 나와 지하철을 타고 니시쿠죠 역에 내려 셔틀버스를 타고 잇큐 온천에 내렸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한국인 관광객도 많이 가는 곳 같았지만 우리가 간 날 한국인을 찾을 수는 없었다. 입구를 들어서자 일본말로 된 입욕권 구매 자판기가 보였다. 일본말을 할 줄 몰라 당황하고 있는데 어디서 갑자기 일본인 아주머니 한 분이 나타나 안내를 해 주셨다. 그 일본인 아주머니는 온천에서 일하시는 분이셨는데, 일본식 억양을 가지고 있었지만 한국어가 매우 능숙한 분이셨다. 덕분에 나는 어머니와 딸을 그분께 맡기고 남탕에 들어갈 수 있었다.


잇큐 온천 시설은 우리나라 사우나와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목욕탕에는 온탕, 열탕, 냉탕이 있었고, 습식과 건식 사우나 그리고 야외 노천탕이 있었다. 특별한 점이라곤 노천탕 한 구석에 5명 정도가 통나무를 베개 삼아 누울 수 있는 공간이 있었고 히노끼 스타일의 1인 욕탕이 여러 개 있었다는 점이었다. 나는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노천탕에 다리부터 조금씩 몸을 넣었다. 그동안의 여행에서 온 피로가 모두 풀리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자연인의 몸으로 통나무를 베개 삼아 누워 하늘과 나무들을 바라보니 신선이 부럽지 않았다.


각 종 탕과 사우나를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어느새 2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나는 엄마와 약속 한 시간보다 조금 일찍 나와 대기실에서 기다렸다. 10~20분쯤 흘렀을까? 엄마와 딸이 뽀송한 피부를 자랑하며 대기실로 나왔다. 잇큐 온천에서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엄마가 온천에 온 것을 매우 만족했다는 점이었다. 엄마가 한 번 온천을 가면 3~4시간씩 있을 정도로 좋아한다는 말을 들으며, 20년 넘게 같이 살았지만 내가 엄마에 대해 모르는 게 많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와 나는 이날 이후로 서로를 배려하며 행복한 여행을 마쳤다. 엄마는 현지 음식에 대해 만족하지 않으셔도 불만보다는 좋은 점을 말씀해 주셨고, 나도 가능한 현지 음식으로 식사를 해결하기를 고집하기보다는 엄마가 한국에서 싸온 음식을 먼저 먹는 것에 합의했다. 또한 마지막 일본에서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마지막 날에는 일본의 3대 온천 중 하나인 고베 아리마 온천에 들렸는데, 엄마가 전체 일본 여행 중에 가장 만족하신 것 같았다.


가끔씩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부모님이 많이 위중하셔서 회사를 잠시 그만두고 병간호를 하시는 분들을 보게 된다. 그럴 때마다 부모님이 건강하실 때 잘 해 드려야지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막상 여행을 하면서 그런 생각을 실천하지 못했다. 엄마를 이해하기보다는 여전히 나에게 맞추려 했다. 하지만 여행 초기에 아내와의 대화를 통해 다시금 잘 모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덕분에 여행을 잘 마무리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몇 가지 여행 사진...

IMG_3422.JPG 고래상어
IMG_3808.JPG 오사카 성
IMG_4166.JPG 고베 아리마 온천


IMG_4125.JPG 히메지 성
IMG_3572.JPG 나라코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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