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대학원에서 공부하던 시절 외국 대학에서 오신 한 교수님의 수업에서 흥미로운 자료를 하나 보았다. 해당 자료는 각 나라마다 국방, 교육, 의료 등 다양한 분야에 어느 정도의 국가 자원을 투입하고 있는지에 대한 OECD 통계자료였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인지하다시피 우리나라는 분단의 현실로 국방에 많은 예산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교육에도 예상외로 많은 국가 예산이 할당되어 있었다. 학창 시절 담임 선생님들이 우리나라의 국방 예산을 조금만 줄이고 교육에 더 투자해도 나라가 훨씬 부강해질 것이라고 했던 기억이 있는데, 실제 자료를 보니 OECD 국가 대비 우리나라 교육 예산은 많은 축에 속해 있었다. 우리나라가 세계 경제 12~14위인 국가인 만큼 다른 OECD 국가들과 비교해서도 각 분야에 상당히 많은 수준의 예산이 사용되고 있는 것이 인상 깊었다.
그런데 그 순간 교수님께서 우리나라가 가장 취약한 분야가 하나 있다며 레이저 포인터로 한 점을 찍으셨다. 바로 사회적 안전망(Social Safety Net)이었다. 사회적 안전망이란 국민을 실업, 노령, 빈곤, 질병, 재해 등 사회적인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뜻한다. 한 예로 다니던 직장이 어려움을 겪어 해고를 당했을 때 실업자 신분에서 노숙자로 전락하는 것을 막고 실업 급여 및 직업 훈련 등을 통하여 최소 생계를 유지하며 재취업을 돕는 것을 들 수 있다.
사실 우리나라 사회적 안전망이 OECD 국가 중에서 거의 꼴찌 수준이기는 하지만 전혀 없는 것이 아니다. 많이들 알고 있는 공적연금, 의료보험, 산재보험, 고용보험 등 4대 보험이 우리나라의 1차 사회적 안전망에 속한다. 그리고 이혜 택 조차 받지 못하는 저속득 계층을 위해 기초생활보장 제도가 있고, 이들을 위한 각종 공공근로 사업들이 마련되어 있다. 이 밖에도 재난을 당한 사람에게 최소한의 생계와 건강을 지원하는 각종 긴급 구호 제도라는 것도 우리나라에 마련된 사회적 안전망 중 하나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나라의 사회적 안전망이 너무 취약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회사에서 해고당하는 것을 매우 두려워한다. 즉 직장에서 해고를 당하면 직장에서 받던 월급을 더 이상 받지 못하고 그동안 저축한 돈으로 살아가야 하는데, 대부분 월급이 충분치 않아 빠듯하게 살아온 탓에 수입이 없으면 바로 빛을 져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리는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게 되고, 심지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를 우리는 뉴스에서 심심치 않게 접하고 있다. 그래서 한 편에서는 해고를 경제적 살인이라고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일반적인 직장인들이 취할 수 있는 전략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직장을 다니면서 직장을 떠났을 때를 대비하여 살길을 미리 준비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직장을 열심히 오래 다니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우선 첫 번째 방법인 직장을 떠났을 때를 미리 대비하는 길은 이미 많은 직장인들이 바라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언젠가는 직장을 떠나야 한다. 바로 정년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좋든 싫든 60세가 넘으면 아무리 안정적인 직장이라도 떠나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회사 업무와 병행하며 미래를 준비하는 것을 버거워한다. 바로 시간적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저녁 늦게 회사 업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도 가사와 육아를 병행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힘들다. 몇 번 시도하다가도 이내 포기해 버리고 만다. 젊을 때는 포기를 모르고 새벽까지 공부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 하루를 시작했던 사람들도 직장 생활과 육아와 가사에 미래를 위한 준비까지 한다는 것은 때론 혼자만의 욕심처럼 생각된다. 게다가 미래를 준비한다고 육아와 가사를 계속 등질 수만은 없기에 가족들에게도 미안하여 오래 지속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두 번째 방법인 열심히 일하여 최대한 오래 회사에 남는 대안이 있다. 그런데 여기서 열심히라는 것이 상상을 초월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문제다. 특히 계속되는 경기 침체와 취업난으로 인하여 일자리가 많지 않은 가운데 직원들의 생존 경쟁이 더욱 치열해 지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회사에서 매일 눈치를 보며 밤늦게까지 야근을 강요받는 것은 기본이고 주말에도 생존을 위해 자기계발에 열을 올린다. 실제 회사에서 일하는 날은 주 5일 일지 몰라도 회사에서 퇴근 후 그리고 쉼을 누려야 하는 주말에도 자격증을 따기 위해 각종 학원과 도서관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직장인들이 적지 않다. 가뜩이나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에서 멕시코 다음으로 일을 많이 하는 나라이고, OECD 평균보다도 주당 7시간가량 더 일을 하는데, 일을 마치고도 쉬는 시간도 없이 계속 생존을 위해 열심히 살다 보니 삶의 여유가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 모르겠다.
사실 이러한 문제들은 사회적 안전망만 잘 갖추어져 있으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우리 안에 뿌리 깊은 미래에 대한 불안을 국가와 사회가 어느 정도 안전망 안에서 보호해 준다면 국민들은 각자에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더욱 의미 있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이다. 많은 지혜 있는 사람들이 행복하기 위해 미래를 염려하지 말고 지금 주어진 현재에 집중하며 살라고 여러 번 강조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현재 주어진 시간을 누리며 살 것이다.
실제 우리나라보다 사회적 안전망이 잘 되어 있는 북유럽의 국가들 중에는 행복 지수가 높은 나라들이 많다. 내가 핀란드에서 만난 한 여성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핀란드의 한 예술 대학원에서 성악을 공부하고 있었다. 그 여성은 나라에서 일정한 수당을 받아 일상 생활에 경제적인 어려움을 전혀 겪고 있지 않았을 뿐 아니라 대학원 학비도 무료로 지원을 받아 자신의 꿈과 열정을 발휘할 제2의 인생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녀는 직업이 없는 무직 상태였지만 그녀의 표정과 대화에서는 그 어떠한 두려움도 발견할 수 없었다.
사회적 안전망은 이렇게 사람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을 줄여주고 현재의 행복을 누릴 수 있게 해 준다. 사실 아무리 일과 삶의 균형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도 사회적 안전망 없이 불안한 미래를 맞이해야 하는 사람들은 삶을 위한 시간이 주어져도 그 시간을 누리기보다 뭔가를 해야 하지 않을까 하며 초조하게 보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가족들과의 식사시간에도 계속해서 경제 신문이나 스마트폰의 뉴스 기사들을 들여다보며 앞으로 무엇을 하며 먹고살지를 고민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