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삶의 균형이 어려운 이유

by 노용기

기업들의 마른걸레 짜기


군대 이등병 때 이야기다. 갓 자대 배치를 받은 후 허리를 곧추 세우 고전 투 대기실 평상 가장 끝에 미동도 없이 계속 앉아만 있던 시절이었다. 그때 병장 하나가 나에게 다가왔다. 그는 나에게 걸레 하나를 툭 던지며, 가서 걸레를 빨아 오라고 하였다. 나는 군대에서 잠시 휴가를 나온 대학 동기들로부터 걸레 빨아 왔을 때 물기가 나오면 바로 질책이 들어간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에 걸레를 빨고 있는 힘껏 물기를 짜냈다. 걸레 짜기를 수십 번 하자 정말 단 한 방울의 물기도 나오지 않았다. 나는 걸레를 들고 선임에게 갔다. 역시나 선임은 걸레를 받아 들고 시범을 보이기 시작했다. 걸레를 빨 때는 물기가 나오면 안 된다고 하면서 본인 이시범을 보인 것이다. 그 선임은 나의 두배가 되는 굵직한 팔뚝을 가지고 있었기에 왠지 물기가 나올 것 같아 불안했다. 그러나 결국 그 걸레에서는 한 방울도 떨어지지 않았다. 대신 물기 하나 없었던 그 마른걸레는 결국 찌지직 소리를 내며 찢어졌을 뿐이었다.


직장 생활하면서도 비슷한 경험을 할 때가 자주 있다. 최선을 다해서 일을 하고 있는데, 팀장과 임원들은 더, 더, 더를 요구할 때이다. 처음부터 어렵게 설정된 영업 목표를 죽을힘을 달성했을 때 조차 그들은 “수고했네” 한마디보다 “조금 더 해봐”하며 마른 수건 짜기에 돌입한다.


이런 마른 수건 짜기의 상황에서는 일과 삶의 균형은 불가능하다. 항상 자신이 가진 100% 이상의 실력을 선 보여야 하고, 그러기 위해 주 40시간 노동으로는 턱 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평일 저녁뿐만 아니라 주말에도 언제나 5분 대기조처럼 상사의 명령 지시를 받으면 언제든 출동할 수 있는 태세가 갖추어져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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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걸레 짜기 상황이 발생하는 이유


단기성과


사실 이러한 마른 수건 짜기는 구조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상사와 고용주들이 단기성과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구조 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춘 대부분의 회사들 은주식 회사의 형태를 지니고 있다. 주식회사는 말 그대로 주식을 발행하여 설립된 회사를 뜻하는데, 그 회사의 실제 주인은 현재 내 눈 앞에 보이는 전문경영인으로 앉아 있는 사장이 아닌 주주들이다.


전문경영인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회사를 성장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임무는 주가를 올리는 것이다. 주가를 올림으로서 회사의 주인인 주주들에게 더 많은 이익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이렇게 주주들에게 이익이 돌아가면 회사는 더 많은 투자를 받을 수 있을뿐더러 전문경영인으로서의 자리도 더욱 곤고하게 가져갈 수 있다.


이러한 주주들은 일반적인 개인투자자들과 마찬가지로 이왕이면 동일한 자금으로 더 높은 수익률을 추구한다. 그래서 지금 주식을 가지고 있는 회사의 수익성이 악화되거나 미래에 수익을 낼 가능성이 적다고 판단되면 주식을 팔아 더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는 회사로 옮겨 갈 수밖에 없다. 특히 단기간에 높은 수익을 보장하는 금융상품이 증가하면서 주주들은 더 자주 투자처를 옮기게 되었다. 실제로 영국에서는 1960년대 주식 보유 기간이 5년이던 것이 1980년에는 2년으로 줄고 2007년에는 7.5개월까지 줄어들었다고 한다. [1]


이러한 상황에서 전문경영인들은 주가를 상승시킬 경우 천문학적인 스톡옵션을 보수로 받았다. 그러나 한 편에서는 회사의 비용을 줄여 회사의 수익을 높이고자 각종 연구개발 투자를 줄이고, 인건비 감축을 위해 노동자를 해고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회사는 계속 성장해야 하는데, 성장을 위한 자원은 점점 줄어든 것이다. 이렇게 마른걸레가 된 상황에서도 기업은 계속 성장해야 하기에 12시간 돌리던 기계를 24시간 돌리고, 하루 8시간 일하기로 되어있는 노동자들이 하루 12시간 넘게 일하는 일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 내 주위에도 원래 4명이 하던 일을 구조조정으로 인하여 1명이 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우리의 노동환경은 점점 악화되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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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업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까지도 오래 일하는 것이 잘하는 것이라는 투입량 중심의 사고가 여전히 만연되어 있다. 기업들은 매년 직원들을 평가한다. 평가 항목이 구체화되어 있어 체계적일 것 같지만 자신의 상사와 업무 평가 미팅을 해 본 사람들은 공감하듯이 실제로는 전혀 체계적이지 않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리는 매우 분업화된 시대를 살고 있다. 분업의 효과에 대해서는 에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핀 공장의 사례를 들어 잘 설명하고 있다. 그는 실제 한 작은 제조소를 방문하였는데, 그곳에서 10명밖에 안 되는 사람들이 하루에 4만 8천 개의 핀을 만드는 것을 보았다. 즉 한 사람랑 하루에 4천8백 개의 핀을 생산하는 것이다. 여기서 그는 이러한 핀 제조 과정을 분업 없이 한 사람이 만든다면 하루에 고작 수십 개의 핀도 만들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실제 이러한 분업 효과를 더욱 발전시켜 대량 생산 체제 구축으로 큰 성공을 이룬 사람이 있다. 바로 헨리 포드이다. 헨리 포드는 분업을 실시할 때 컨베이어 벨트 위에 부품을 이동시켜 노동자들로 하여금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만 집중하게 하였다. 포드 자동차는 이러한 분업을 더욱 효율화한 포드 시스템을 통해 1923년 미국 자동차 의절반에 해당하는 167만 대를 생산할 수 있었다.


그 후로 많은 기업들이 더 높은 생산성을 위해 이러한 분업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다. 덕분에 생산성은 비약적으로 증가하였지만 한 개인이 회사에서 할 수 있는 업무의 범위는 극도로 좁아졌다. 그래서 분업화된 사회에서는 개인 역량을 발휘하는 데 한계가 있고, 그것을 인정받기는 더더욱 어렵다. 어떠한 성과를 내었을 때 그것을 자신이 모두 한 것이라고 평가받기 어렵다는 것이다. 회사의 목적을 달성할 때 영업, 마케팅, 제품 개발, 재무, 물류 부서 등 여러 관련 부서 속한 다수의 노력으로 이루어 지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 개인의 업무 성과에 차별화를 둘 수 있는 여지가 많지 않지만, 굳이 뽑으라면 업무량 즉, 근무 시간이다. 그리고 이러한 근무시간은 때론 회사에 대한 충성도로 평가받는다. 일반적으로 6시 되면 퇴근하는 사람보다는 저녁 9시 또는 10시 넘어서까지 회사에 불을 밝히고 일을 하는 사람이 회사에 더 높은 충성도를 가지고 있다고 인정받는다. 그리고 분업화된 사회에서 눈에 띄는 큰 성과가 나지 않는 이상 결론적으로 근무시간과 충성도로 업무 평가를 받게 되고 진급에 반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상사의 눈치를 보며 늦게까지 야근을 할 수밖에 없다. 오래 일하는 것이 미덕이 아닌 줄 알면서도 늦게까지 집에 가지 못하고 회사에 발이 묶여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초인적인 에너지를 가지고 하루에 3~4시간 수면을 취하지 않는 한 일과 삶의 균형을 이루기란 매우 어렵다. 간혹 잠을 줄여서라도 삶의 영역을 지켜내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하루 이틀 정도는 가능하겠지만 결국 수면부족으로 일도 제대로 못하고 삶도 유지하지 못하는 상황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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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부키, P.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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