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한 방송에서 맞벌이 부부의 퇴근 후 일상을 본 적이 있다. 아내는 하루 종일 회사 업무를 마치고 퇴근 후 어린이 집으로 향했다. 아이들을 집으로 데려와서 씻기고, 저녁 식사를 차려주고, 집안 청소를 하였다. 남편도 저녁 늦게 퇴근을 하였다. 남편은 퇴근 후 밤늦게까지 중국어 공부를 하였다. 남편은 회사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퇴근 후면 그렇게 매일 꾸준히 공부를 하였다.
또 한 부부는 둘 다 저녁 늦게 퇴근을 했다. 그때까지 두 아이는 친정엄마가 돌보고 있었다. 남편은 아내보다 조금 일찍 퇴근하여 아이들을 돌보았다. 하지만 아내는 남편보다 회사 일이 더 많아 아이들이 잠든 후에나 퇴근하고 집에 들어왔다. 또한 아내는 회사에서 성장하기 위해 대학원을 가서 더 공부하기를 원했다. 자기계발과 양육 사이에서 부부는 고민하였다.
사실 대부분의 자녀를 둔 직장인들은 퇴근 후 집에 와서도 개인 시간을 가지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퇴근 후 아이들을 씻기고, 먹이고, 잠시 놀아주고, 잠을 재우는 것만 해도 금세 저녁시간 대부분이 지나가기 때문이다. 게다가 하루 종일 회사에서 시달리고 지친 날 아이들을 일찍 재우기 위해 책을 읽어주다가 어느새 자녀보다 먼저 잠이 들 때가 많다.
이렇게 퇴근 후 육아를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삶의 여유가 있기는 한 것이다. 사실 자녀를 잘 양육하는 것이 중요한 것을 알지만 회사일보다 우선할 수 없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맞벌이를 하는 부부 중에는 25% 정도가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하루에 1시간도 안 된다고 한다. 마음으로는 자녀 양육이 중요하고 우선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미안함과 심할 경우 죄책감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또한 회사 일과 육아를 모두 열심히 하려고 해보지만 오해를 받거나 사회적으로 불이익을 당하는 일도 발생한다. 현실은 그렇지 않지만 흔히들 워킹맘들은 회사 업무를 아무리 열심히 해도 육아와 가사로 인하여 일에 잘 집중하지 못한다고 여겨진다. 이러한 이유로 승진에서도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또한 일부 회사에서는 결혼을 앞둔 여직원에게 사직을 권고 해 논란이 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육아 외에도 회사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퇴근 후 끊임없는 자기계발을 하며 대부분의 저녁 시간을 보내는 직장인들도 상당수 있다. 이들은 퇴근 후에도 어학 학원에 다니거나 인터넷 동영상 강의를 들으며 자기계발을 꾸준히 한다. 일부 회사에서는 승진을 위해 어느 정도 이상의 영어 시험 성적을 보유하고 있거나 자체 승진 시험을 봐야 하는 경우도 있어 자기계발은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해야 하는 또 하나의 퇴근 후 일과가 되었다.
사실 자기계발이라는 것은 스스로 필요를 느낄 때 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갈수록 경쟁이 심해지면서 회사에서 살아남는 것이 하나의 목표가 된 현대인에게 자기계발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 버렸다. 또한 시대가 빠르게 변함에 따라 자기계발을 하지 않고는 변화하는 사회를 따라가기 어려운 세상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자기계발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 자체가 점점 뒤로 밀리는 상황이 된 것이다. 결국 자기계발을 하는 사람들의 심리에는 도태되지 않으려는 불안함이 자리 잡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이러한 육아와 자기계발 외에도 현대인들은 퇴근 후 해야 할 일이 많다.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 나가기 위해 때론 무리를 해서라도 모임에 참여하기도 한다. 평일 저녁 모임은 간단하게 1차만 하는 경우도 있으나 더 길어질 경우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자정을 넘기기도 한다. 주말이 되면 각종 결혼식과 돌잔치에 가야 한다. 나에게는 매주 있는 일상 일지 몰라도 그들에게는 일생의 한 번뿐 중대한 사건이므로 단 한 번의 불참으로도 그동안 쌓아온 인간관계가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기 때문에 대놓고 참석을 거절할 수 없을 때가 많다.
우리는 바쁜 것을 싫어하면서도 바쁘게 지내는 것을 당연하고도 때로는 자랑스럽게 말한다. 길을 가다 우연히 지인을 만났을 때 어떻게 지내냐는 말에 우리는 습관처럼 바쁘게 지낸다는 말을 한다. 마치 바쁘다는 말이 나 자신이 여전히 중요한 존재이고, 뭔가 대단한 일을 하는 것처럼 포장 해 주기 때문이다. 반대로 요즘 한가하고 여유롭다는 말을 하면 왠지 내가 속한 사회나 조직에서 존재감이 없거나 별 필요가 없는 사람으로 인식될 까 봐 두려움을 갖기도 한다.
사실 한가함, 여유로움은 과거 귀족들과 같은 상류층들이 누리던 전유물이었다. 그들은 아침에 일어나 식사를 마치 후에는 산책을 하고, 조용한 거실에 앉아 책을 보았다. 그러다 때가 되면 점심식사를 하고 차를 끓여 지인들과 담소를 나누는 티타임을 즐겼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카드놀이를 하거나 연회를 열어 여유와 즐거움을 누리며 살았다. 그러한 삶도 지겨울 때면 말과 마차를 타고 여행을 다녔다.
반면에 농노나 노예들은 하루 종일 일을 하였다. 새벽부터 일어나 하루 한 끼나 두 끼로 식사를 때우고 뜨거운 땡볕 아래서 저녁 늦게까지 하루 12시간 넘게 노동을 하였다. 그들에게 바쁨은 일상이었다. 매일 해야 할 일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으며, 그 일을 모두 해내지 못하면 주인에게 매를 맞거나 식사를 제공받지 못하기도 하였다. 일을 마치고 집에 와서도 자녀들을 돌 볼 시간은 거의 주어지지 않았다. 그들은 극심한 노동을 마치고 저녁 늦게 집에 돌아왔으며, 잠자리도 변변치 않아 추위를 피해 동물들과 뒤섞여 잠들며 고단한 하루를 마감하였다.
현대인에게 할 일이 많다는 것, 바쁘다는 것은 사실 매우 치명적인 일이다. 왜냐하면 바쁘고 분주하게 살아가는 가운데 중요한 것을 놓치거나 잃어 가기 때문이다. 바로 나 자신 말이다. 최근 몇 년간 힐링이 대세였다. 힐링 강의를 들으면 마지막에 한 번씩 하는 순서가 있다. 바로 나 자신의 어깨를 쓰다듬어 주면서 “그동안 수고했어.”라며 말하는 순서이다. 이 순서가 되면 간혹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있다. 아마도 그동안 바쁜 삶 가운데 스스로에게 채찍질만 하고 쉼을 주거나 위로 해 주지 못한 분들이 아닌가 싶다.
바쁘고 분주한 가운데서는 사색을 할 여유가 없다. 사색은 인류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실제 많은 위인들이 사색을 통해 세상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저작을 남겼다. 대표적인 예로 국부론을 쓴 아담 스미스를 들 수가 있다. 아담 스미스에게는 사색과 관련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하루는 아담 스미스가 사색을 하며 산책을 하고 있었다. 그는 깊은 생각에 잠겨 길을 걸었는데 교회의 종소리를 듣고 경우 정신을 차려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고 한다. 그런데 그가 그렇게 깊은 사색에 잠겨 걸은 길이 무려 25km가 넘었다고 하니 그가 얼마나 생각에 깊게 잠겼는지 알만하다.
우리는 바쁜 현실을 살고 있다. 그런 가운데 진정 나를 위한 시간을 갖지 못할 때가 많이 있다. 그것은 한 편으로는 우리 사회가 가진 문제로 인한 것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우리 자신 스스로의 문제일 수도 있다. 21세기에 우리는 여전히 생존하기 위해 그리고 다른 누군가에게 중요한 존재로 여김을 받기 위해 바쁘게 살아간다. 그게 회사든 가족이든 지인이든 말이다. 그러다 보니 때로는 정작 자신 스스로를 돌아보고 자신만을 위한 방해받지 않는 시간을 갖는 것에는 다소 소홀한 경우가 있다. 어쩌면 현대인에게는 자기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데도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점을 깨닫고 더 늦기 전에 삶의 변화를 위한 한 걸음을 내 디딜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