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곧잘 마라톤에 비유되기도 한다. 인내와 끈기를 가지고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는 점에서 인생과 마라톤 사이에는 유사한 점이 있다. 그러나 인생을 마라톤이라는 경주로만 설명하기에 뭔가 부족한 부분이 있다. 그래서 나는 인생을 여행에 비유한다.
여행을 하다 보면 여행이 인생과 여러 가지면에서 유사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인생에서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있을 때 우리는 두려움과 설렘 두 가지 감정을 모두 느낀다. 여행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말도 통하지 않는 곳, 일상을 벗어나 지금껏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을 여행할 때도 두근거림과 설렘이 교차한다. 그러나 이내 새로운 곳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면 안정감을 찾게 되고, 조금씩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시야도 점점 넓어진다. 그렇게 인생과 여행 둘 다 처음 마주할 때는 두려움이 앞서지만 이내 두려움은 설렘으로 바뀌고, 어느새 익숙함으로 귀결된다.
몇 주전 나는 어머니를 모시고, 딸아이와 함께 8박 9일 동안 일본 간사이 지방을 여행했다. 간사이 지방은 일본 서일본의 핵심 지역으로 일본의 전통적인 역사와 문화의 중심지이다. 나는 간사이 지방 중에 오사카, 교토, 나라, 고베 지역을 여행하였다. 원래는 6살 딸아이의 이동 속도와 어머니의 체력을 고려하여 8박 9일 모두를 오사카에서만 보내려고 하였다. 그러나 생각보다 두 사람의 여행 실력이 나의 예상을 훨씬 능가하여 여행 지역을 확대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여행을 모두 감당하기에 나의 일본어 실력은 형편없었다. 내가 아는 일본 말이라고는 여행 책에 나온 "실례합니다."와 "고맙습니다"가 뿐이었다. 그리고 발간된 지 10년 더 된 여행책, 그게 내가 가진 전부였다. 게다가 나는 여행할 때 사전 조사를 잘 하지 않고 현지에서 부딪히며 해결해 나가는 편이라 일본에 대해 그리고 일본 여행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결국 나는 사전 조사를 차일피일 미루다 일본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처음으로 여행 책자를 꺼내어 봤다. 10년도 더 전에 발간된 책이지만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로 일단 공항에서 숙소까지 가는 방법에 대해 먼저 숙지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오사카에 위치한 간사이 공항에서는 군데군데 한글 표기도 보이고, 지하철 표를 발행하시는 분도 어느 정도 영어로 대화가 가능하였다. 그러나 시내에 도착하자 영어로 물어봐도 친절하게 일본어로 대답해 주시는 통에 길을 찾기 어려웠다. 여행 오기 전에 공부 좀 해 둘걸 후회했지만 이미 뒤늦은 후회였다.
익숙한 곳을 벗어나 새로운 곳을 여행할 때는 항상 두려움이 앞선다. 이번 여행에서도 역시 두려움은 나를 엄습하였다. 특히 나 혼자 하는 여행이 아닌 어머니 그리고 6살 딸과 함께 하는 여행인지라 안전하게 여행을 잘 마무리해야 한다는 책임감과 함께 모든 것이 처음인 상황이 나를 두려움으로 이끌었다.
첫 두려움은 숙소를 찾아가는 길에서부터 일어났다. 우리는 공항철도를 타고 에어비앤비로 예약한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전철역에서 내렸다. 나는 미리 출력해 온 숙소 지도를 바탕으로 가족들을 이끌고 자신감 있게 앞장섰다. 그런데 가도 가도 숙소가 나타나지 않았다. 게다가 밤늦은 시간이라 인적도 매우 뜸했다. 겨우 길가던 사람이 붙잡아 숙소 위치를 물어보니 잘못된 방향으로 왔다고 알려 주었다. 할 수 없이 나는 무거운 집을 끌고 갔던 길을 다시 돌아 처음 도착했던 전철역으로 왔다. 그리고 다시 길 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물어가며 숙소를 찾아갔다. 전철역에 내려 숙소를 찾기까지 꼬박 1시간이 넘게 소요되었다. 저녁 11시가 되어서야 겨우 우리는 숙소에서 발을 뻗을 수 있었다. 참고로 나중 일이지만, 숙소 주변 지리에 어느 정도 익숙 해 졌을 때, 우리는 숙소에서 전철역까지 7분 만에 걸어갈 수 있었다.
여행지에서 헤매는 것은 여행의 마지막 날까지도 계속되었다. 마지막 날 우리는 오사카에서 고베에 위치한 히메지 성을 들러 아리마 온천을 갔다가 다시 오사카로 오는 일정으로 여행했다. 참고로 이 일정으로 여행했을 때 대중교통으로 이동 시간만 6시간 정도 소요된다. 게다가 이것저것 갈아타야 되는 기차도 많고, 어떤 기차 노선은 우리가 구입한 교통 패스로 탈 수 없기도 하였다. 그래서 길을 헤매는 것은 기본이었고, 그로 인해 계속 시간이 지체되었다. 아침 일찍 출반 하긴 하였지만, 과연 늦지 않게 다시 숙소로 돌아올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 일정을 줄여볼까도 했지만 딸에게 히메지 성을 어머니에게는 아리마 온천을 보여 주고 싶었다. 다행히 길을 헤맬 때마다 도움을 주는 손길이 있었고, 비록 생각보다 많이 늦기는 했지만 하루 12시간 넘게 돌아다닌 끝에 다행히 여행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다.
여행에서 두려움은 때론 동반자처럼 항상 따라다닌다.
'지금 가고 있는 이 길이 맞나?'
'혹시 길을 잘못 들었으면 어떡하지?'
'길을 잃어버려 못 찾아가지는 않을까?'
특히 낯선 곳을 여행하거나 늦은 밤 길을 찾아 걸어갈 때 이러한 두려움은 증폭된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인생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새로운 인생길을 마주할 때도 여행할 때처럼 각종 의문과 고민 그로 인한 두려움이 마음 한 구석을 차지한다.
'내가 지금 맞게 가고 있는 것인가?'
'혹시 잘못된 선택으로 남들보다 더 뒤쳐지거나 실패하면 어떡하지?'
'그냥 원래 있던 자리에 편하게 안주할 걸, 괜한 도전을 해서 이렇게 고생하는 건 아닐까?'
그런데 여행과 마찬가지로 인생에서도 각 순간마다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손길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올바른 길로 함께 가주는 인도자를 만날 때도 있다. 그러다 보면 처음에는 두렵게만 느껴졌던 길도 어느새 익숙해지고 편안해진다.
인생은 새로움의 연속이다. 처음 세상에 나올 때, 유치원을 졸업하고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대학에 들어갈 때, 군에 입대할 때, 직장을 구할 때, 결혼을 하고 첫 아이를 갖게 될 때, 그 모든 과정은 지금껏 우리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새로운 길이다. 그 출발선에서 서면 긴장되고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그 모든 것도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 익숙해 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익숙함이 일상이 될 때 우리는 또다시 새로운 길로 여행을 떠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새로운 길을 두려워할 필요도, 익숙한 길을 지겨워할 필요도 없다. 나는 이러한 두려움과 익숙함의 반복을 통해 성장해 나가는 게 인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이번 여행에서 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