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꿈을 꾸고 있는 나에게

진짜 나의 꿈은 무엇일까? 진짜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일까?

by 노용기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최근 내가 나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사건이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두 달 전 나는 두 아이들과 함께 제주도로 내려가 한 달 살기를 했다. 제주도는 내가 오랫동안 꿈꿔온 곳이다. 에메랄드 빛 바다와 탁 트인 푸른 하늘 그리고 모든 근심을 가져가 줄 것 같은 대자연. 그곳에서 나는 아이들과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삶을 꿈꿨다.


나는 아내에게 부탁하여 제주도에서 한 달 살 집을 예약했다. 나의 조건은 마당이 있고, 돌담이 있고, 평상이 있는 집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아파트에서 자라온 아이들에게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마당에서 아이들과 물놀이도 하고, 평상에 앉아 고기도 구워 먹고 싶었다. 나 역시 아파트에 산지 너무 오래되어 마당이 있는 집은 항상 로망으로 남아 있었다.



6살 딸과 4살 아들을 데리고 제주도 비행기에 올라탔다. 출발은 아침에 했는데, 도착하니 이미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공항에 도착하니 쌀쌀한 바람이 불어왔다. 남쪽 지방이라 따뜻할 줄 알았는데, 바람이 세게 불어 제법 쌀쌀했다. 집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창밖을 보니 불빛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분명 4차선 도로를 달리고 있는데 가로등 하나 없었다.


어둠 속에서 한 시간을 달려 숙소에 도착했다. 한 달 동안 살 집은 내가 꿈꾸었던 바로 그곳이었다. 사진에서 보던 대로 널찍한 마당과 돌담 그리고 평상이 있었다. 다만 그곳은 제주에서도 매우 조용한 시골 마을이었다. 저녁에는 바람소리와 파도 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가끔 동네를 돌아다니는 고양이가 돌담을 넘어 마당으로 들어와 '야옹~'하며 울어대는 소리만 가끔씩 정적을 깨울 뿐이었다.


제주에서 나는 자동차를 렌트하지 않았다. 제주도민처럼 버스를 타고 지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물론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제주 사람들은 대부분 자동차를 타고 다녔다. 심지어 내가 살던 동네의 시골 할아버지들도 사륜구동 SUV를 몰고 다니셨고 할머니들도 개조한 오토바이를 타고 읍내에 나가셨다. 자동차를 렌트하지 않은 덕분에 나는 마트를 한 번 가려면 하루를 다 보내야 했다. 마트는 버스를 타고 한 시간을 넘게 가야 했으며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다 보니 나 혼자서는 삽십분이면 걸어갈 거리도 한 시간 넘게 걸렸기 때문이다.



한 번은 딸아이가 버스에 서울 집에서 가져온 토끼 인형은 놓고 내린 적이 있었다. 딸아이는 에메랄드 빛이 출렁이는 협재 해변에서 토끼가 보고 싶다며 한 시간 넘게 통곡을 하며 울어 댔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내일 마트 가서 비슷한 인형을 사준다고 약속을 했다. 그리고 토요일 아침부터 갈 준비를 해서 점심때쯤 신제주에 있는 대형 마트에 도착했다. 그런데... 그런데... 문이 닫혀 있었다. 제주도는 휴무일이 서울과 달리 오일장으로 열리는 재래시장의 영향을 받아 토요일에도 문을 닫았다. 나는 그날 문닫힌 마트를 오고 가느라 제주에서의 하루를 아무 의미 없이 써버리고 말았다.


서울의 복잡함을 떠나 한적함을 느끼기 위해 일부러 제주에서도 시골마을을 택했다. 그런데, 덕분에 나는 마치 제주라는 섬에서도 한 번 더 섬에 갇힌듯한 생활을 했다. 식량을 구하기 위해 마트를 가려면 하루 종일 고생을 해야 했으므로 나는 한 톨의 쌀도 헛되이 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자동차 없이 아이들과 함께 시골 마을에서 사는 게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제주도 버스 운전기사분들은 왜 그렇게 불친절하신지. 아이들을 데리고 버스를 타는 것은 여간 험난한 모험이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자 점점 서울이 그리워졌다. 매일 밤마다 지붕에 올라가 서울 방향을 바라보며 고향땅을 그리워했다. 한 달 살기로 내려간 곳이어서 이미 한 달 체류비를 지불한 후라 중간에 해약하기가 어려웠다. 물론 제주도의 삶이 매일 힘든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곳에서 살면서 제주에서 태어났지만 서울에 올라와 직장을 잡은 친구들이 왜 다시 지상낙원이라 여겨지는 제주도 내려가려고 하지 않는지 조금이나마 이해가 되었다.



텔레비전을 켜자 제주도에 사는 한 뮤지션의 이야기가 방송되었다. 그는 널찍한 잔디 마당에서 아름다운 정원을 꾸미며 살고 있었다.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그는 기타를 메고 노래를 불렀다. 서울에서 그 방송을 봤더라면 몸서리치게 제주도 떠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제주에 몇 주간 살아보니 방송에서는 보이지 않는 현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순간 제주 살기가 과연 나의 꿈이 었나 하는 생각이 스치기 시작했다. 그렇다. 나는 미디어의 영향을 받았고, 방송에서 나오는 타인의 삶을 보면서 내 꿈이 아닌 남의 꿈을 꾸었던 것이다.


그 이후로 나는 무엇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그것을 무작정 버킷리스트에 넣기보다는, 그것이 정말 내 꿈인가? 아니면 타인의 꿈인가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좋아 보이는 것인지? 물론 지금도 나는 내 꿈과 타인의 꿈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 좋아 보이는 것의 환상에서 빠져나오기가 여간 어렵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도 더 나은 직장과 더 나은 집 그리고 너 나은 환경을 꿈꾸고 있다. 하지만 제주도 한 달 살기 덕분에 무언가를 꿈꾸기 전에 한 번쯤은 생각하는 습관을 들이게 되었다. 내가 지금 꿈꾸고 있는 것이 내 꿈인지? 아니면 타인의 꿈인지? 말이다.




육아휴직을 하며 제주도에서 한 달간 두 아이들과 지내면서 행복했었다. 아빠로서 두 아이와 24시간을 한 달 동안 함께 있었던 그때의 즐거웠던 추억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다만, 위에 글은 그 가운데서 잠시 들어던 내 생각을 옮겨 적은 글이다. 비록 부족한 글로 인해 제주에서의 삶에 대한 오해의 소지가 있지만, 문득 떠오른 '타인의 꿈'이라는 단어가 앞으로의 내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는 데 있어 중요하다고 생각되어 이렇게 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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