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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텔 Jul 03. 2022

엄마의 플라시보

비빌언덕

헬스를 시작한지는 한달, 엄마한테 말한 건 시작하고 2주가 지나서였다. 가능하다면 끝까지 밝히고 싶지 않았다. 퇴근 후 저녁에 하는 운동이었으면 굳이 말 할 필요가 없었는데 출근 전 새벽에 하게 되서 결국 말 할 수 밖에 없었다. 회사 업무 때문에 일찍 출근한다는 변명에는 한계가 있었다. 엄만 잘 모를 뿐, 바보는 아니니까… 운동하는 게 뭐 나쁜 것도 아니고 숨겨야 할 일인가 싶겠지만 엄마가 지향하는 바와 내가 바라는 바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그런데 엄마의 끊임없는 메세지는 날 흔들리게 하고 날 혐오하게 하니까. 그래서 숨기고 싶었다.


운동 시작 한달만에 엄마는 출근하러 가는 내 뒷모습을 현관에서 보고 있다가 대뜸 “옷 태가 조금 슬림해진 것 같다 얘” 하고 말했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대답을 하는둥 마는둥 하면서 후다닥 엘레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이럴까봐 말하기 싫었다. 내게 가장 많은 선플을 다는 사람은 엄마고 꼭 그만큼의 악플을 다는 사람도 엄마다. 말로는 날 위해서라지만 어떻게 그런 말들이 타인을 위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 걸까. 옛날 분이시라 어쩔 수 없다고, 바뀌지 않는다고, 그냥 진짜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여기자 하고 머리로는 생각하면서도 그라데이션으로 분노가 차오르고야 만다. “아, 그래 참자. 그냥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리지 뭐, 아니 근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딸한테 할 말이야?”


엄마를 생각하면 정말 다양한 감상이 드는데 그렇게 계속 떠올리다 보면 내가 느끼는 내 감정들에 체할 것만 같다. 애정, 증오, 안타까움, 분노, 슬픔, 원망 다시 애정 그리고 증오… 끊임없이 반복되는 와중에도 사랑은 없다는 게 정말 신기하지. 엄마에게, 아빠에게, 양육자에게 가감없이 사랑한다고 말할 줄 아는 사람들이 진심으로 신기하고 부럽다.


언젠가 우연히 출근길 택시 안 태블릿PC에서 나오는 조각영상을 보다가 뜬금없이 눈물을 콱콱 쏟았는데 이경규 씨와 그의 딸이 술자리에서 나누는 대화 내용이 너무나 부러워서 그랬다. 이경규 씨는 딸에게 하고 싶은 한마디 없냐는 제작진 물음에 딸에게 이렇게 말했지. “나는 내가 네게 언제나 언덕이었으면 좋겠어.” “언덕?” “비빌언덕.” “내가 결혼했어도?” “결혼 해도, 언제나 항상.”


비빌언덕… 언제고 위기의 순간이나 힘든 순간, 버티기 힘든 순간이 닥칠 때 아빠를 찾으라는 다정하고 든든한 이경규 씨의 말이 정말 사무치게 부러워서. 처음으로 아빠가 있는 사람이 부러워졌다. 네가 결혼을 하고 안 하고 상관없이 나는 네 편이고 네 뒤에 있겠다는 그 메세지를 받은 딸은 얼마나 든든했을까,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종류의 감정이었다.


나는 매년 답지 않은 효녀코스프레 때려치고 엄마한테 쓰는 감정을 덜겠다고 다짐하지만 매년 실패한다. 늘 엄마가 신경쓰이고 엄마가 하는 말들에 휘둘리고 상처 받는다. 지나가는 말로 뭔가 갖고 싶다거나 먹고 싶다고 했던 것들을 기억해둔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정말이지 엄마는 내게 뭘까. 나는 태어나길 바란 적 없는데. 아이를 낳고 양육하기로 한 건 온전히 엄마의 선택인데 그 선택의 결과는, 내 인생은 온전히 내가 책임져야 한다. 이건 정말 불합리하다. 

태어나길 바란 적 없고 그게 이런 세상이라면 더더욱 태어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정말이지 나는 엄마가 날 낳아준 게 고마웠던 적이 없다. 제가 나쁜년처럼 보이시나요. 어쩔 수 없어요. 세상에는 이런 딸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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