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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텔 Jul 18.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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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존재를 참고 견디기 어려운 순간


느닷없이 마음이 도통 진정이 안 되고 울컥울컥 해서 스스로를 할퀴면서 상처를 내고 싶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덜 잠긴 수도꼭지에서 터지기 일보 직전인 물탱크로 몸집이 커지는 기분이라고 해야할까. 수도꼭지가 시도때도 없이, 예고도 없이 풀려버리듯이 물탱크 역시 미리 예고하고 터지는 것은 아니고 전조증상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나는 언제나 속수무책으로 감정에 잡아먹히고 마는 것이다.


인도를 걷다가 바로 옆에 붙어있는 도로가 눈에 띄면 저 도로 위 차들 사이로 몸을 던지고 싶어지거나, 내 머리카락을 있는 힘껏 쥐어뜯으면서 악을 쓰고 싶어지거나, 내가 나를 학대하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되버릴 것 같은 느낌인데 이 모든 감각이 나에게 머무르는 시간은 찰나에 가까워서 오로지 나 혼자만 겪고 있는 전쟁이다. 소리 없는 아우성이라고 했던가. 그야말로 나는 있는대로 악을 쓰며 발광을 하는데 남들은 눈치 조차 채지 못하는 전쟁이다. 


언제쯤이면 이 전쟁이 끝날까. 정말 그런 날이 오기는 할까. 나도 내면의 평화를 찾고 평온하고 싶다. 미치도록 간절하다. 책도 영화도 드라마도 이럴 땐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잠깐 진정되는 것 같은 착각만 불러일으킬 뿐이다. 


이럴 때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꺼내 펼쳐본다.

오래전에 죽고 없는 이 황제는 본인 살아생전 상상이나 했을까. 세기를 넘고 또 넘어 지금의 현대인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라는 걸. 명상록에 쓰여진 황제의 단상들은 건조하고 담담하면서 치열하다. 정말 신기하지. 문체는 단조로운데 내용은 그렇지 않다는 게. 삶에 대해, 죽음에 대해 쓰여진 문장이 오늘 저녁 메뉴를 고민하는 내 문장과 다를 게 없는 것처럼 보여지기도 한다. 


황제는 눈을 감는 순간의 모습이 어땠을까. 본인이 저술한 것처럼 초연했을까. 후회는 없었을까.

나는 어떨까. 


정말 초월적인 어떤 존재가 있다면, 정말로 신이 존재한다면 알려줬으면 좋겠다. 내 남은 수명에 대해, 내가 앞으로 치뤄야 할 어떤 댓가가 있다면 그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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