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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텔 Oct 01. 2022

우울증에 운동이 좋다는 말은 진짜일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요즘 나는 클라이밍과 헬스PT 를 동시에 하고 있다. 시작은 클라이밍이 먼저였다. 그런데 내가 도대체 클라이밍을 왜 하고 싶어했는지, 무슨 매력에 끌렸는지는 지금까지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다. 암벽등반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건 김자인 선수의 빛나는 등 근육이었고 이후엔 다음 웹툰 PEAK 였으며 몇 년의 시간이 지난 후에는 임윤아, 조정석 배우님 주연 영화 엑시트였다.

김자인 선수야 뭐 말할 것도 없이 유명한 분이니까 설명 생략하고, 연재 종료된 다음 웹툰 PEAK는 시기가 좀 된 거라 모르는 사람도 있겠다. 북한산 산악구조대원들의 이야기다. 글 작가님 본인의 경험담이 녹아있어 생생한 간접 체험이 가능하고 그림 작가님의 말도 안되는 작화가 이를 완성시켜준다. 그 때 처음 암벽등반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된 것 같다. 좀 찾아보기도 했던 것 같다. 그래도 직접 해볼 생각은 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난 등산을 정말 싫어하고, 엄홍길 대장님이 세상에서 제일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 분이 대단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높고 험준하며 자칫 잘못하면 목숨도 위태로울 수 있는 거친 산을 오르면서 얻는 희열이란 도대체 무엇인지 도통 공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르면 끝이 아니고 다시 지상으로 내려와야 하는데 오르는 것만큼이나 내려오는 것도 만만치 않아 내려오다가 변고를 당할 수도 있지 않은가. 정상에 오른 뒤에는 결국 내려와야 하는데 싶은 생각이 가장 먼저 들어서 암벽등반도 비슷한 논리로 직접 해보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저 높이 오른다고 한들 다시 내려와야 하는데.


이랬던 내가 실내암벽등반, 그러니까 클라이밍을 본격적으로 '한 번 해볼까' 싶은 생각이 들게 한 것은 도심재난영화 엑시트였다. 영화 속 주인공들이 도심 한복판에 퍼진 정체 모를 유독가스를 피해 높은 건물로 오르기 위해 외벽을 타고, 중심 잡기도 힘들어보이는 뾰족한 건물 지붕을 건너기도 한다. 이 모든 걸 가능하게 해주는 설명은 주인공들이 대학교 때 산악동아리 출신이었다는 점이다. 동아리에서 리드 클라이밍을 배웠으며 그 때 배운 경험과 지식으로 도심에 닥친 위기 속에서 기지를 발휘해 탈출한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김자인 선수 인터뷰가 화제였다. 영화 엑시트 속 재난 상황이라면 어떻게 했을 것 같냐는 질문에 너무 해맑게 웃으시면서 "전 그냥 죽을 것 같아요!" 하셨지...언니 존경합니다...ᄏᄏᄏᄏᄏ)

여하간 영화 엑시트가 클라이밍에 어떤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건 확실했는데 한 번 해볼까 싶은 마음이 정말 스치듯이 지나간 거라 직접 행동에 옮길 생각은 한참동안 하지 못했다. 그냥 '이런 거구나' 정도의 감상만 있었을 뿐. 그냥 말로만 "아 좀 해보고 싶긴 한데..." 하고 다녔을 뿐. 그런데 어느 날 불현듯이, 홀린듯이, 계획도 없었는데 퇴근길에 무작정 회사 근처 클라이밍 센터를 찾아가 급발진으로 수강을 등록했고 지금까지 하고 있다. 그렇게 어영부영 5개월째 하고 있는 중이다. 사실 아직까지도 대체 왜 이 스포츠를 하겠다고 덤볐는지 의문이다. 단순한 호기심으로 시작했다고 변명하고 싶지만 그렇기엔 지나치게 열심히 하고 있다. 구태여 이유를 찾아보자면 마침 운동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던 참이었고 기왕 해야 하는 운동이라면 헬스 보다는 안 해봤던 것 중에서 골라보자. 궁금했던 거 해보자 싶어서 시작한 게 이유일 수 있겠다. 그러나 클라이밍은 내 몸뚱아리로는 상당히 벅찬 스포츠였다. 함께 수강 듣는 사람들 모두 나처럼 처음 배우러 왔거나 한 두번 정도의 체험 경험만이 있을 뿐이라고 그래서 안심했는데 또 나만 진심이었다. 다들 선생님이 시키면 시키는대로 슥슥 잘도 옮겨 다니는데 나만 매달리자마자 매트에 툭 떨어졌다. 내 몸이 중력에 이렇게 솔직할 줄 몰랐다. 3주정도 하다가 이대로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결국 헬스 PT를 추가로 등록했다. 여기서  그냥 클라이밍을 관두는게 돈을 덜 들이고 에너지도 아끼는 일이었을 수 있지만 초급강습 비용을 이미 지불했고 여타 다른 운동 종목 강습이 그렇듯 클라이밍도 환불이 불가능했다. 그리고 환불하고 싶은 마음보다 어떻게든 저 꼭대기에 있는 것을 잡아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겸사겸사 내내 스트레스 였던 체중도 이 기회에 감량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남들 앞에서는 애써 아닌 척 했지만 나는 내 옷의 사이즈가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고 내 몸이 끔찍히도 혐오스러웠다. 차라리 잘 됐다고 생각했다. 기왕 마음 먹은 거 몸도 가볍게 만들고 근력도 키우고 몸 쓰는 법도 잘 배워서 클라이밍에서도 알차게 써먹으면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여겼다.


사실, 운동의 필요성을 느껴서 클라이밍을 시작했는데 클라이밍을 하려니까 근력과 코어가 없어서 이 둘을 증진시키기 위한 운동을 따로 해야 하는 그런 웃기지도 않는 상황인데 나름 아직까진 잘 해나가고 있다. 덕분에 졸지에 팔자에도 없는 부지런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누군가 주 5일 운동한다고 하면 내가 제일 신기하게 여길 것 같은데 정작 내 일이 되니까 그냥 저냥 하게 된다. 생각보다 할 만하고 생전 처음 겪어보는 기분도 느끼고 있다. 승부욕이랄지, 몰입감이랄지 하는 것들 말이다.(영화 엑시트 촬영 당시 주인공이었던 임윤아 배우님은 뛰다가 뛰다가 한계에 다다라 급기야 울어버렸다고 얘기하는 걸 본 기억이 있다. 조금 더 뛰고 싶은데,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몸이 안 따라줘서 억울하더라면서. 이 말을 듣고 나는 좀 충격이었는데 이 인터뷰가 내 클라이밍 동기 중의 하나였던 것도 같다. 나도 저렇게 무언가에 몰입해보고 싶었던 것 같다.)


헬스PT계약 후 담당 트레이너가 배정되고 운동의 목적에 대해 묻길래 요즘 클라이밍을 배우고 있는데 이를 좀 잘하고 싶어서 헬스의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고 대답했는데 막상 운동 하다 보니까 욕심이 생기고 욕망이 생기기 시작했다. 당초의 마음가짐과 달리 빨리 줄어들지 않는 체중계 숫자가 야속해지기 시작했다. 근력과 코어를 갖추고 싶어서 시작했는데 어느새 체중계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지 않으려고 그렇게 다짐했는데. 결국 마음을 참지 못해 트레이너한테 장문의 카카오톡 메세지를 보낸 적이 있었다. PT시작한지 두달 정도 됐을 때였을 것이다. 운동의 목적이 처음과 조금 달라지고 있다고. 클라이밍을 잘 하고 싶은 건 변하지 않았지만 이와 더불어 몇 년 전엔 입을 수 있었고 지금은 못 입게 된 옷 입고 싶어졌다고. 나는 굉장히 심각하고 진지하게 고민했는데 의외로 트레이너는 별 일 아니라는 듯이, 목적이 조금 달라지긴 했어도 몸을 이롭게 하려는 방향성은 같으니 지금처럼 열심히 하면 된다고 답장해줬다. 잘하고 있으니까 걱정말라고. 생각보다 싱거운 반응에 되레 안심이 됐다.


한창 열심히 운동했다가 다 놔 버리고 포기한듯이 운동과 담 쌓고 살다가 몇 년 만에 다시 운동하는 삶으로 진입하면서 가장 크게 변화하기 시작한 건 내 마음의 평화가 아닐까. 여전히 나는 나를 혐오하고 비하하고 시도때도 없이 우울해지고 툭하면 울음이 쏟아지고 하루에도 수십번씩 사라지고 싶다고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밤에 잠자리에 누우면 이대로 영원히 아침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는 마음도 한결같다. 다만 이 모든 것들이 조금씩, 아주 조금씩 옅어지거나 멀어지는 순간이 있다. 방심하면 금새 코 앞에 닥쳐오지만 몸을 움직이는 동안엔 아예 사라지기도 한다. 특히 클라이밍 같이 익스트림한 스포츠는 다른 생각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앗차 하는 순간에 그대로 추락하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다간 다칠 수 있어 집중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는 것이다. 헬스 역시, 트레이너가 시키는 동작에 집중하다 보면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다. 지상에서 하는 동작들이라 클라이밍 보단 덜 위험하다지만 그렇다고 아주 안전한 것도 아니다. 방심하는 순간 삐끗하면 다치거나 무리가 온다. 그래서 생각을 아예 지울 수 있다.


다만, 운동을 끝내고 혼자 있는 시간이 찾아오면 한 순간도 평화롭게 두지 않는 맹독같은 마음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날 또 주저앉게 하지만 이 순간이 전처럼 하염없이 무한대로 확장되지는 않는다. 본질적인 문제는 하나도 해결되지 않았지만 마음의 평화를 찾는 순간이 잠시라도 생기는 게 어딘가 싶어 울컥할 때가 종종 있다.


흔히들 우울을 겪는 사람들에게 나가서 산책해라, 운동을 시작해라, 뭐라도 해봐라 등의 조언을 건네곤 하는데 이는 틀린 말은 아니다. 확실히 생각을 좀 덜어낼 수 있어서 도움이 된다. 다만 이 모든 건 스스로 준비가 되었을 때 내딛어야 가능하다. 옆에서 아무리 좋은 뜻으로 해주는 말이라고 해도 당사자에겐 뜬구름 잡는 소리로 들린다. 놀리는 걸로 들리기도 하고 아무렇게나 내뱉는 말로 들리기도 한다. 내 마음도 모르면서 쉽게 하는 말로 들린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무조건 맞는 말도 아닌 것이다.


만약 좀 움직였으면 좋겠고 뭐라도 했으면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게 하는 우울한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그래서 그가 너무 걱정된다면 처음부터 무언가를 권하기 보다는 그냥 데리고 나가서 맛있는 거 사주면서 혹은 맛있는 걸 사서 앞에 놔주면서, 그가 하는 얘기를 먼저 잘 들어주시라고 말하고 싶다.

지치겠지만, 비슷하고 반복되는 얘기들만 계속 하겠지만 그래도 끈질기게 옆에서 듣다가 이 이상은 나도 한계고 같은 말 반복해서 듣는 게 지겹고 지난해지면 자연스럽게 전문가를 찾아가도록 유도해주면 좋겠다. 상담이 됐든, 병원이 됐든 무엇이든 간에. 운동은 그 다음이다.


내가 이만큼 움직이고 활동할 수 있게 되기까지 나 역시도 수 많은 전쟁을 치뤄야 했다.

상담과 현대의학의 빛나는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인간은 생각보다 나약하고 마음은 그보다 더 나약하다. 체력이 뛰어나도 의지가 미약하거나 사라지면 움직일 수 없다. 의지력은 그냥 마음 먹는다고 생겨나는 종류의 것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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