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파면

탄핵이 인용됐다

by 에스텔


드디어 윤석열이 파면됐다. 더 이상 대통령의 권한을 행사할 수 없다.

회사에서 뉴스 라이브 방송을 보는 내내 손끝이 차게 식어가고 있었다. 손가락이 덜덜 떨렸다.

업무 전화를 받으면서, 메일을 쓰면서, 넘겨받은 파일을 수정하면서 시선은 모니터에 두고 귀는 재판관의 선고문 낭독에 온 정신이 쏠려있었다. 그래선 안 되지만 만약 탄핵이 기각되거나 각하되면 어떡하지 하는 마음에 손끝은 점점 더 온도를 잃어가고 있었다.


간절하게, 애타게 기다리던 그 한마디, 윤석열을 파면한다. 이 한마디를 듣기 위해 우리가 치러야 했던 싸움은 얼마나 길고 또 지독했나.


12월 3일, 그날은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연일 쌓여가는 크고 작은 스트레스에 더해 체중 스트레스까지 겹겹이 몸과 마음이 갉아먹히던 나날 속에서 맛있는 거라도 먹어서 이 스트레스를 달래야겠다며 마라탕을 사 먹고 집에 들어간 그날.

영하의 기온을 웃도는 바깥과 달리 보일러를 올려 따듯한 공기 속으로, 말 그대로 등 따시고 배부른 채로 이불 덮고 누워 숏폼을 스크롤하며 평화롭게 잠들 준비를 하던 그날의 저녁을.


가짜뉴스가 아닐까, 극우가 퍼뜨린 괴소문이 아닐까, 감쪽같이 잘 편집된 질 나쁜 장난이 아닐까, 찰나의 순간 현실도피로 뇌내망상도 해봤지만 돌아오는 건 믿을 수 없는 현실 그 자체였다. 2024년에, 21세기에,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책으로 아시아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탄생한 12월의 대한민국에서, 절대 들려선 안 될 단어가 대한민국을 뒤덮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비상계엄선포를 마치 김치찌개 배달시키듯이 태연하게 내뱉는 그 낯짝을 지켜보는 게 그렇게나 고통스럽고 화가 났다. 정말 화가 났다고 하는 표현이 맞다. 머리끝까지 분노했고 동시에 무력감도 함께 찾아왔다.


하지만 계엄선포가 터지던 그 순간, 10시가 넘은 시간에 지체 없이 국회 앞으로 달려간 사람들이 있었다.

맨 몸으로 장갑차와 무기를 소지한 군인을 막으며 충돌했고 그 틈을 타 비상계엄 정식해제 절차를 위해 아수라장인 정문 대신 담을 넘어 뛰어들어가던 정치인들. 즉시 입구를 막아 군인진입을 늦추던 사람들. 나는 방 안에 멍하니 앉아 절망감만을 되새기고 있었는데 바로 행동에 나선 이들 덕분에 나도 내 주위를 환기시켰다. 내가 뭐라고 절망하고 포기하고 무기력해하는가. 온몸으로 싸우는 사람들이 있는데. 함께 힘이 되진 못할망정 초를 치는 건 안 될 일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시위에 나가고 시위에 못 나가면 후원하고 미미하게나마 sns 소식을 열심히 재업로드하며 있는 힘껏,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12월 3일 이후로 멈춰있던 시계가 지금 이 순간 다시 작동하기 시작했다. 마치 이제야 진정한 새해를 맞이한 듯하다. 처참하고 암담한 마음으로 건넸던 새해 인사를 이제는 상쾌하게 할 수 있다. 2025년의 새해는 1월 1일이 아니라 4월 4일이다. 나 혼자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오늘 점심은 마라탕이다)


매일 같이 무너지는 마음을 다잡고 일어설 수 있었던 원동력엔 지치지 않고 광장에 나가 목소리를 높인 사람들 덕분이다. 총칼 앞에 지지 않고 막아서던 사람들 덕분이다. 일촉즉발의 상황에 물러서지 않고 싸웠던 동료시민들 덕분에 나 역시도 버틸 수 있었다.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우리에겐 남은 숙제가 많지만 아주 거대한 산 하나를 넘었다고 생각하면 이다음에 찾아올 일들이야 무엇이 무섭겠나.


장장 4개월을 보내며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은 일제강점기 시절 독립운동을 하던 독립운동가들이다.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길 바란다던 윤동주 시인의 글귀다.

윤동주 시인이 어째서 끊임없이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글로 써냈는지. 그의 마음을 감히 손톱만큼이나 여실히 느낄 수 있었던 4개월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문자 그대로 피를 흘려가며 지킨 민주주의를 단 한 순간에 무너뜨리려 했던 끔찍한 12월을, 그 주동자를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조선군의 항전 의지는 대단했다. 광성진 군사 70여 명은 몸이 새카맣게 타고 포타네 맞아 산산조각이 난 동료의 시신을 보면서도 도망가지 않고 버텼다. 포격이 끝나고 살벌한 백병전이 벌어졌으나 총에 맞아 쓰러지면서도 전투를 포기하지 않았다. 미군의 눈을 멀게 하려고 흙을 집어 얼굴에 뿌리며 한 치 한 치 땅을 지켜 싸웠다." 김이경.『한국근대사』초록비책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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