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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텔 Jun 29. 2022

공사를 구분한다는 것

공적인 다정함과 공적인 상냥함

상담실의 상담자와 헬스장의 트레이너는 완전히 상반된 일을 하는 사람들이지만 조금 닮았다. 당신들이 하는 일에 대해 전문성을 가지고 확고하게 상대방을 이끄는 점이 가장 크게 닮았고 마주한 고객을 대하는 방식도 유사하다. 

나는 2주에 한 번 상담실을 방문하고 주에 3번 헬스장을 방문한다. 그리고 이 두 사람 모두 내게 긍정적으로 표현하기를 망설이지 않는다. 다정함이기도 하고 상냥함이기도 하고 본인들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자신감이기도 하겠지. 또한 자신들이 가진 전문성에 대한 확신이기도 하겠다. 


다만 문제라면 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내가 문제인 것이다.


건조하게 표현하면 이들은 각자에게 주어진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상담을 통해 내담자를 수렁에서 건져올리고 운동을 통해 수강생에게 몸 쓰는 법을 알려주는 것이 주된 업무내용이다. 내가 회사에서 클라이언트와 메일로, 전화로 디자인시안을 주고 받으며 컨펌 받듯이.


통상적인 갑-을 관계와 조금 다른 점이라면 상담자/트레이너는 공적으로 나를 대하지만 나는 그들을 사적으로 대할 수 밖에 없다는 것.

일방적으로 혹은 속수무책으로 사랑에 빠지는 것과 비슷한 경험을 하게 한다는 것.

저들은 어디까지나 맡은바 임무에 충실할 뿐인데 나는 감정이 실려버리는 것.

정말 허탈하고 허망하게도.

돈도 쓰고 시간도 쓰고 감정도 끌어다 쓰는데 일방통행에 가깝다는 것.


절대 이뤄질 수 없는 짝사랑을 하는 기분이 이런 기분일까. 정말 어처구니가 없지. 

굳이 구분해보자면 상담실에서도 헬스장에서도 돈쓰는 고객은 나니까 내가 갑인데. 감정적으로 취약해지는 것도 나라는 게.


그래서 결국엔 순간순간 냉소적인 인간이 되고야 마는 것이다.


‘저들이 건네는 다정함과 상냥함에 너무 취하지 말자. 저 사람들은 저게 업무일 뿐이다. 내가 업무메일 마지막줄에 영혼없이 “식사 맛있게 하세요:)” 하고 덧붙이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언젠가는 끝이 있는 관계다.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나샛기야.’


이렇게 굳세게 다짐이라도 하지 않으면 몹시 서글퍼지는 것이다.


공적자원으로 건네는 다정함에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넘어갈만큼 이러한 것들에 취약하다는 반증이 아니면 무엇일까. 나는 왜. 어째서.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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