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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뫼 May 23. 2019

변화의 시작은 언제나 관찰

집과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 사이에 놀이터가 하나 있다. 벤치도 곳곳에 있고 주변에는 오래된 나무들이 그늘도 만들어주어 하원, 하교 시간에는 그곳이 늘 아이와 엄마 들로 붐빈다. 아이가 걸음마를 시작하면서 나도 하원 길에 유모차를 끌고 그곳에 들르게 됐다.


그날도 역시 유모차를 옆에 세워두고 흔들말 같이 생긴 기구에 아이를 앉히고 놀고 있는데, 초등학교 3~4학년 정도로 보이는 여자 아이 셋이 우리 곁에 왔다. 유모차에 걸어둔 아이의 어린이집 가방을 보더니, 어린이집 이름이 재미있는지 자기들끼리 떠들었다.


“야! ‘귀염둥이’ 어린이집이래!”

“ㅋㅋㅋ 민자연이래!”


‘귀염둥이 어린이집’에서 뭔가 웃음이 나는 건 알겠는데, ‘민자연’은 왜 재미있는 건지 나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아이들은 천진난만하게 깔깔거렸다. 그 모습을 보니 괜히 귀여워 나도 피식 웃음이 났다. 내가 “이 아기가 민자연이야.” 하니까, 그 말을 들은 한 아이가 이미 멀리 가 있는 친구들에게 “야!! 민자연 여기 있어!” 하고 소리쳤다. 이게 그렇게 소리칠 일인가 싶어 난 또 웃음이 났다.


아이들 셋은 ‘민자연’을 둘러싸고 “진짜 귀엽게 생겼어!” “몇 살이에요?” “얘 머리 묶은 것 좀 봐, 진짜 귀여워!” 등등의 말을 쏟아냈다. 손가락을 빠는 아이를 보고는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아기는 원래 손가락을 빨아요.” 하며 나에게 심심한 위로(?)의 한 마디도 해주었다. 아이들은 몇 분을 우리 옆에 있으며 아이와 놀아주었다. 아주 배려심 있는 모습으로. 그 아이들은 두 살배기 아기가 귀여웠겠지만, 난 그 아이들이 정말 예쁘고 귀여웠다. 동생이 있어서인지는 물어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아이들은 아기의 입장에서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누군가는 엄마가 된 후 특별히 바쁘게 일하는 사람을 볼 때면 그 사람의 자식 입장을 생각한다는데, 난 엄마가 된 후 말과 행동이 예쁜 아이들을 만나면 그 아이의 부모가 어떤 사람일지 궁금해진다. 정확히 말하면 그들의 자녀 교육관이 아닌, 일상의 태도가 궁금하다. 어떤 태도를 지녔기에 아이를 저리도 예쁘게 키워냈을까, 생각한다.


요즘 혼자 아이를 키우고 있기에 아이는 주말을 제외하고는 나와 있는 시간이 가장 길다. 어린이집에서 친구, 선생님과도 시간을 보내지만 집에 와서는 모든 시간을 나와 함께한다. 아이와 내가 상호작용하는 시간들을 생각해봤다. 나는 어떤 마음으로 아이와의 시간을 보냈을까. 밥을 먹을 때는 흘리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목욕을 시킬 때는 씻기고 나가면 또 덥겠네 하는 마음으로, 자장가를 부를 때는 그저 빨리 잠만 잤으면 하는 마음을 갖진 않았나. 그리고 순간 ‘이런 나의 마음과 태도를 아이도 느꼈으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에 뜨끔해졌다.


아이가 더 커서 주변을 볼 줄 아는 때가 오면 직접 상호작용하지 않는 시간에도 나의 모습을 지켜볼 것이다. 내가 어떤 기분으로 식사를 준비하는지, 여가 시간은 무엇을 하며 보내는지, 남편과는 어떤 태도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귀엽고도 무서운 관찰자의 존재가 나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한다.


올해부터 어린이집에 다닌 아이 덕분에 ‘어버이’라는 타이틀을 달아봤다. 어린이집에서는 전날 미리 찍어둔 동영상을 5월 8일 아침에 나에게 보내주었다. 선생님을 통해 들은 어버이로서의 첫 번째 감사인사. 아이의 마음을 받았으니 나도 되돌려드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결혼하고, 그저 얼굴을 뵙기 위해 혼자 시어머니를 찾아뵌 것은 처음이었다. 분명한 건 아이를, 가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나 자신을 위한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나의 변화로 가장 큰 혜택을 보는 사람은 분명 나다. 이 사실을 정확히 알게 되는 데 시간이 왜 이렇게 오래 걸렸을까. 아이의 존재가 나를 변화시키는 건 사실이지만, 난 아이보다 내 마음이 그 역할을 더 열심히 해나갔으면 한다. 내가 나의 관찰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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