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점뫼 May 18. 2019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나, 이상한가요?

대부분의 연인이 그렇듯, 나와 남편도 연애하는 5년 동안 사소한 일들로 적지는 않게 싸웠던 것 같다. 싸운 이유가 워낙 사소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기억하는 ‘싸움의 원인’은 거의 없다. 그 날, 딱 하루만 빼고 말이다.


우리는 연애 때 등산을 곧잘 했다. 보통 북한산을 자주 갔는데, 그날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파주에 있는 심학산을 올랐다. 심학산은 북한산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높지 않은 산이다. 등산이라기보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한 바퀴 돌 수 있는 산책 같은 코스다. 출발 지점에서는 사람들이 많았다. 힘들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손을 잡고 이야기를 나누며 걸었다. 그런데 정상을 찍고 내려오는 길에는 왠지 사람이 많지 않았다. 아마 산을 오르는 코스가 여럿 있는데 우리가 인적인 조금 드문 길을 택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때부터 싸움의 조짐이 보였던 것 같다.


나는 잘 몰랐는데, 내가 계속 “이 길이 아닌가 봐.” “여기 사람 아무도 없잖아.” “우리 이 길로 가지 말자.” 따위의 걱정, 불만, 두려움이 섞인 말을 내뱉었던 모양이다. 남편은 본인은 길을 찾는다고 찾고 있는데, 내가 계속 저런 소리를 해대니 짜증이 났을 것이다. 평소 화를 잘 내지 않는 남편은 ‘그럼 나보고 어쩌라고!’ 식의 말로 화를 냈고, 우리는 산을 내려와 마을버스를 타고 큰 길로 나가는 동안 말 한 마디 하지 않았다. 내려온 길 입구에 보인 수타 짬뽕 집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눈조차 마주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짬뽕 한 그릇 먹자는 소리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신혼여행을 준비하며 남편은 “파리랑 프라하에서도 그때 파주에서처럼 그러면 진짜 안 돼!”라고 한 마디 했다. 나는 절대 그러지 않겠노라 약속을 하고, 신혼여행에 가서는 그날 일을 떠올리며 마인드 컨트롤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낯선 곳에서 내 몸이 그렇게 반응을 하는 줄 정말로 몰랐다. 20대 때 혼자 코레일 ‘내일로’ 여행을 한 적도 있고, 강원도에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 있어 혼자 훌쩍 떠난 적도 있었기 때문에(물론 혼자 하는 해외여행은 꿈도 꾸지 않고, 하고 싶다는 생각도 안 하는 나다) 그날 내가 왜 그랬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나는 평소에 여행 가고 싶다는 생각이 별로 없다. 물론 여행지에서만 느낄 수 있는 다양한 낯섦이 나도 좋다. 하지만 내 일상에서 나는 그런 생각을 그다지 하지 않는다. 나에게 여행이란 ‘특별한 것’을 의미하는데, 그 특별함이 나에게는 왠지 내 것이 아닌 것, 내 일상의 평온함과 안정감을 깨트리는 존재로 느껴진다. 그렇기 때문에 가끔씩 하는 건 좋지만, 자주 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주변에 해외여행을 자주 가는 사람도 많고, 여행이 콘셉트인 TV프로그램이 넘쳐나는 시대에 여행을 특별히 좋아하지 않는 나는 한때, ‘즐기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의기소침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이런 내가 ‘안정감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는 걸 최근 어떤 책을 보며 깨달았다(이렇게 나에 대해 또 알아간다). 혼자 제주도 여행을 했을 때도 나는 게스트하우스를 옮겨 다니지 않았다. 그곳을 마치 집처럼, 아무리 먼 곳에 가더라도 아침 일찍 나섰다 해가 지면 다시 그곳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여행 프로그램도 <윤식당> 같은 것만 몰입해서 봤다. 한 곳에 숙소를 정하고 2주 정도 식당을 운영하는 콘셉트가 나에게는 가장 마음 편하게 느껴졌다.  


나의 경우, 여행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건 지금 내 삶에 만족하고 있다는 뜻인 것 같다. 일탈보다는 일상을 지켜내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반대로 하루하루를 꾸역꾸역 산다는 느낌이 들 때는 나도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럴 때면 평소 나답지 않게 여행 앱을 수시로 들락거린다. 따져보니, 내가 여행을 하고 싶다고 느낀 건 직전 회사의 퇴직을 앞둔 시점이었다. 그 이후에는 여행 생각이 별로 들지 않았는데, 아이를 키우는 하루하루가 고되어 그런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던 것도 있고, 나름 이 생활에 만족하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감사한 일이다.


언젠가 미친 듯이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일상을 돌아봐야 할 때라는 신호라고 스스로 알아차리면 좋겠다. 그때는 정말로 떠나든, 일상을 바꾸든 하면 될 것이다. 물론 삶이 명쾌한 로직으로 풀리지 않는다는 걸 조금은 알고 있기에 이런 생각이 큰 위로는 되지 않지만, 살짝 걸쳐둘 만한 나만의 팁을 하나 얻은 느낌이다.



* 나에 대해 알게 해준 책은 엄지혜, 《태도의 말들》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살고 싶은 집, 가꾸는 마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