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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뫼 May 08. 2019

살고 싶은 집, 가꾸는 마음

최근 <구해줘! 홈즈>라는 프로그램을 보다 우리의 첫 집이 떠올랐다. 신혼집은 눈이 내리면 구로구에서 제설작업을 가장 먼저 하는 동네였다. 자취 경력이 전혀 없는 우리 부부는 무엇에 끌려 그 집을 계약했던 걸까. 지금 생각하면 헛웃음이 나지만 그때는 우리만의 공간이 생겼다는 사실에 너무 기뻐, 그냥 있어도 땀이 나는 8월에 에어컨은커녕 선풍기도 없이 연 사흘 그 집을 쓸고 닦았다.


사실 그 집을 선택한 데는 집 자체보다 동네 인프라가 마음에 들어서였다. 교통은 조금 불편했지만, 집 바로 아래에 너무나 매력적인 공원이 있었다. 어린이 놀이터는 물론이고, 테니스장, 배드민턴장, 축구장 등이 갖추어진 꽤 큰 공원이었다. 그뿐 아니라 <전국노래자랑>을 할 수 있는 무대 및 객석 공간에 이 모든 시설을 품고 있는 트랙이 있었고, 그걸로는 부족했는지 한 부지에 구민 체육센터까지 들어와 있었다. 거기에 화룡정점, 시립 도서관까지!


당시에는 그 집이 최선의 선택지라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우리가 ‘살아야 하는’ 집에는 많은 문제가 있었다. 우선 벌레가 너무 많았다. 먹고 치우지 않은 과자 봉지가 개미 떼에 점령당한 걸 본 것이 시초였다. 개미를 시작으로 그리마(일명 돈벌레), 바퀴벌레, 드물긴 했지만 거미까지. 일단 단내 나는 음식을 치우고 개미 약을 설치하니 개미는 봐줄 만했다. 그리마는 비 오는 날 자주 출몰했기에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면 크게 놀랄 걸 작게 놀랄 수 있어 그럭저럭 적응이 되었다. 문제는 바퀴벌레였다.


어느 날은 아침에 일어나 부엌 개수통을 보니 바퀴벌레가 뒤집어진 채 버둥대고 있었다. 어디에서 떨어진 건지 구체적으로 상상하기도 싫었다. 어떤 날은 안방 전등 안에서 윙윙- 대는, 또 어떤 날은 갑자기(정말 1분 전까지도 없었는데;;) 거실에 떨어져 있는 바퀴벌레를 봐야만 했다.


또 다른 문제는 겨울이면 너무 추웠다. 우리 집이 가장 꼭대기 층이었는데 난방을 켠 게 무색할 정도로 단열이 되지 않는 곳이었다. 나중에는 가스비가 아까워 아예 난방을 켜지 않고 잠자는 곳에만 온수 매트를 켜고 잤다. 원래 나의 계획은 그 집에서 몇 년을 살면서 돈을 차곡차곡 모아 더 나은 집으로 가는 것이었는데, 그런 곳에서는 도저히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게 불가능할 것 같았다. 집 아래 있는 공원과 도서관은 너무나 좋았지만 내가 살아야 하는 공간은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이사를 결심했다.




지금 사는 집은 친정 옆 동네에 지어진 신축 빌라다. 새 집이라 벌레나 단열 걱정은 없어 정말 만족스럽다. 방도 작지만 한 칸 더 늘어나 공간도 나름 잘 나누어 살고 있다. 집 주변에 언덕도 없고, 지하철역도 가까운 편이고, 대형 마트가 두 개나 있어 어느 때고 장보기도 편하다. 하지만 나는 만족이란 걸 모르는 사람인가. 아이를 낳아 키우다 보니 점점 늘어나는 물건 때문에 어느샌가 ‘더 큰 집’을 원하고 있었다.  


블로그에 올라오는 다른 집들을 부러워하고, 밤에 누워서는 그런 집에서 사는 나를 상상했다. 괜찮아 보이는 인테리어가 있으면 캡처를 하면서 ‘언젠간 꼭 저렇게 꾸며야지’ 마음을 먹고…. 더 나은 미래를 그리는 게 나쁜 건 아니지만, 내가 한 것은 말 그대로 ‘공상’이었다. 집은 넓고 깨끗해야 하고, 주변에 지하철역이 가까우며 대형 마트도 한두 개는 있어야 하면서 도서관과 공원이 있는 곳에 살려면 지금보다 얼마가 더 있어야 할까(무려 서울에서 말이다).


나는 요즘 쓸데없는 상상 대신 생각하는 시간을 늘리려고 노력한다. (글쓰기의 긍정적인 효과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 덕분에 지금껏 내가 살아온 방식과 고정관념을 버리고 다른 선택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지난주에 집은 책에서 아주 현실적이고도 멋진 글을 만났다.



모두가 다 근사한 아파트에 살 수는 없어. 모두가 다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도 아니야. 오래되고 낡고 좁은 집에 살아도 그 집을 자기 취향에 맞게 잘 꾸미고 가꾸면 괜찮아. 집은 네 몸을 담는, 네 하루하루가 만들어지는 공간이잖아. 하찮게 취급할 수는 없지. 이런 집에서도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맛있는 것을 만들어 먹고 사람들과 어울리고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매일을 충실하게 살아나갈 수 있어. 그런 삶을 살 수 있어.  

- 한수희,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작가의 태도가 아름다웠다. 작가는 자신이 발 딛고 있는 현실이 가장 소중하고 유의미하다는 걸 처음부터 알았을까. 여하튼, 그래서 나는 내가 사는 이 집을 조금 다른 시선으로 보려고 노력 중이다. 집은 잘못이 없으니까. 그리고 혹시 나중에 이 집을 떠나게 된다 하더라도 지금과는 다른 마음으로 다음 집을 선택하게 될 것 같다. 넓은 집을 바라기보단 그곳에 살고 있는 나의 마음이 조금 더 너그러워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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