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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뫼 May 01. 2019

땀 흘리는 시간

날씨가 슬슬 더워지고 있다. 땀이 나는 계절이 오고 있음을 느낀다. 나는 특히 얼굴에 땀이 많이 나는 편이다. 전에는 심각할 정도라고 느끼지 못했는데, 아마 피부염을 앓기 시작하면서부터 안면부에 땀이 많이 나기 시작한 것 같다. 특히 샤워를 하고 나오면 이마와 콧등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다. 그 얼굴에 로션을 바르는 건 정말 찝찝한 일이다.


언제부턴가 땀이 찝찝하고, 귀찮고, 내 몸에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그런 존재가 되었다. 어렸을 때는 땀이 나면 휴지로 닦거나 말리면 그만이었는데, 성인이 된 이후로는 땀이 나는 것 자체가 싫었다. 애써 예쁘게 꾸민 얼굴과 머리가, 신경 써서 입은 옷이 망가질까 봐 땀을 차단하기 위해 급한데도 절대 뛰지 않았다. 몇 해를 그렇게 보내고 나니, 당연히 땀이 날 수밖에 없는 여름에도 땀 흘리는 걸 싫어하게 됐다. 건강이 안 좋아 병적으로 많이 흘리지 않는 한 땀은 당연히 나는 것인데, 그 자연스러운 신체 메커니즘을 미워한 내가 좀 지독했다는 생각이 든다.


의학적으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땀은 무언가를 열심히 한 사람들이 흘리는 이슬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운동이든 일이든 노는 것이든 거기에 집중한 사람만이 흘릴 수 있는 흔적. 한창 걸음마를 신이 나게 하는 딸만 봐도 그렇다. 그만해도 된다고 얘기해도(물론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아이는 자기가 걷는 게 신기하고 재미있는지 쉬지도 않고 같은 자리를 반복해서 오간다. 그러고 나면 아이의 머리카락은 어느새 땀으로 축축이 젖는다. 흘린 땀만 봐도 얼마나 열심히 움직였는지, 또 얼마나 신나 했는지 느껴진다.


나는 요즘 요가를 하고 있는데, 요가는 그리 땀이 나는 운동은 아니다(요가원에서는 운동이라는 말을 하지 않고 수련이라고 한다). 대신 요가원에 가는 길에 땀이 난다. 집안을 대충 정리하고 시간에 맞춰 가려면 늘 뛰어야 하기 때문이다. 10분 가까운 거리를 빠르게 걷고 뛰다가 요가원에 도착하면 더 땀을 흘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뭔가 아쉽다는 마음까지 생긴다. 그럴 때면 ‘괜히 돈 들여 요가원에 등록했나’ 생각한다. 집에서 요가원에 가는 시간만큼만 가면 한강공원이 나오는데, 한강에서 뛰는 게 더 좋았을 거라는 후회.


요즘 이런저런 책을 보는데, 달리기가 취미인 사람이 정말 많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뛰는 행위와 삶의 방식을 연결시킨다. 《일하는 마음》을 쓴 제현주 작가는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뛸 수 있는 1킬로미터에 집중하는 거였다. 그러다 보니 달릴 수 있는 거리가 조금씩 늘어난 것처럼, 삶의 트랙에서도 어느 날인가 나도 모르게 2.5킬로미터를 뛸 수 있게 되었다. 하루 계획에서 한 달 계획으로, 그다음엔 한 분기 정도의 계획으로 생각의 용량이 늘어나더니, 요즘에는 다시 5년짜리 목표나 계획을 세워보곤 한다.”라고 말한다.


제목부터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인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이 책에는 “매일 달린다는 것은 나에게 생명선과 같은 것으로, 바쁘다는 핑계로 인해 건너뛰거나 그만둘 수는 없다. 만약 바쁘다는 이유만으로 달리는 연습을 중지한다면 틀림없이 평생 동안 달릴 수 없게 되어버릴 것이다.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둘 이유라면 대형 트럭 가득히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그 ‘아주 적은 이유’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단련하는 일뿐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일에서든 인생 전체를 놓고 보든, 단련을 하는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다. 단련하지 않고는 단단해지지 않고, 단단하지 않음은 언젠간 꼭 결핍이나 결여로 나타난다. 내가 그 결핍으로 그렇게 힘들어하지 않았나. 단련하는 시간 동안 흘린 땀이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경험은 누구나 해보았을 텐데, 새로운 일을 할 때 찾아오는 그 시간은 왜 이리도 견디기 힘든 걸까. 나는 지금 무엇에 땀을 흘리고 있을까. 무엇을 ‘위한’ 땀보다, 땀을 흘리게 하는 것 자체에 집중하라는 것이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또다른 공통점이다.


무엇을 하든 그 자체에 집중하고 그 시간을 즐기는 것. 책을 읽을 때, 글을 쓸 때, 요가를 할 때, 아이와 시간을 보낼 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뿐이고, 이 시간은 지금 나에게도 꼭 필요하다. 이는 시간이 지나 보면 더욱 분명하게 알게 될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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