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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뫼 Apr 27. 2019

희망을 선물하는 그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_ 1

그녀는 내가 처음 들어간 출판사의 디자이너였다. 아쉽게도 회사의 경영악화로 같이 오래 일하진 못했지만, 퇴사 후 우연히 우리가 비슷한 점이 많다는 걸 알게 돼 친분을 쌓게 되었다. 회사를 벗어나 ‘아는 언니’로 알고 지내다 보니 그녀의 진짜 성격을 알게 되었고, 나 또한 그녀에게 본모습 보여주게 되었다.


내가 그녀에게 처음 놀란 순간이 있다. 그녀를 좋아하게 된 사건 말이다. 회사 동료였을 때는 서로에 대한 얘기를 많이 못 나눴기 때문에 그날 우리는 서로에 대한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나는 그녀에게 “저는 좀 우울감이 있는 사람이에요. 사주를 봐도 그렇고 저 스스로도 이유 없이 우울해질 때가 가끔 있어요” 라고 오랫동안 고민했던 내 성격을 고백했다. 그러자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우울감이 친구처럼 늘 곁에 있는 사람이네요? 정미 씨가 훨씬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는데요?”


그녀의 말에 난, ‘뭐지? 이 신박한 해석은?’ 이라는 놀라움과 동시에 그녀의 내면이 참 단단하다고 느껴졌다. 난 늘 고쳐야 한다고 생각했던 점을 전혀 다르게 봐준 그녀가 고마웠다. 우울한 게 왜 매력적인지에 대한 이유도 덧붙였지만, 나에게는 그 이유가 딱히 중요하지 않았다. 이런 때도 있었다. 옮기는 회사마다 다양한 문제로 경력 관리를 잘 못한 것이 고민인 나에게 “정미가 그렇게 퇴사하고 지금까지 오게 된 건 그럴만한 다른 뜻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닐까?” 또 내가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말하자 내 글에는 담백하면서도 고소한(나는 밥 맛, 담백하면서도 고소한 밥 맛을 좋아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뭔가’가 있다고 응원해주기도 했다. 내가 그녀를 좋아하는 이유는 이런 위로의 말이 모두 그녀의 진심에서 나온 말이고, 그 말에 내가 정말 위로를 받기 때문이다.


또 그녀와 만나면 난 늘 의외의 것을 건져오곤 한다. 그녀를 만나서 대화를 나누다보면 내가 안고 있는 고민거리나 답답해 했던 것들의 본질을 파악하게 된다. 이럴 테면 이런 식이다. 같이 일했던 회사에서 우리는 각자의 이유로 힘들어 했는데, 그녀는 그때를 웃으며 ‘귀여웠어’라고 받아들일 수 있다고 했고, 나는 아직 그렇게 말할 수는 없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그녀가 “어떻게 하면 그때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물었고 나는 내가 만족할 만큼의 양질의 책을 만드는 경험이 쌓이면 그때를 ‘귀여웠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이로써 나는 내 결핍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나는 내 능력을 어딘가에 써먹고 싶고,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성과를 경험하고 싶었던 것이다. 당장 고민을 해결할 수는 없지만 고민의 본질을 파악한 것만으로도 뭔가 후련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와 주저리주저리 말하다보면 핵심을 싸고 있는 껍데기들이 하나둘 벗겨져 개념이 잡히고 본질이 드러난다. 그녀의 탁월한 능력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그래서 난 그녀와 헤어지고 집에 올 때면 나에게도 새로운 가능성이 존재할 거란 희망을 품게 된다. 고민 없이 마음 가벼운 날이 많지 않았으니 매번 그녀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언젠가 꼭 그녀에게 이런 나의 마음을 아주 정성스럽게 표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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