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을 낳고 딸아이에게 먹일 밥을 만드는 엄마가 되어 보니, 결혼 전 엄마가 했던 “오늘 뭐 해 먹지?”라는 말이 엄마가 별생각 없이 하시던 말씀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됐다. 주말 부부인 내가 남편이 오는 주말에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바로 “자연이 뭐 해 주지?”이기 때문이다. 맛있으면서도 영양적으로도 떨어지지 않는 식단을 짜는 일은 엄마든 아빠든 가족의 밥을 챙기는 사람이라면 늘 하는 고민일 것이다.
집에서 먹는 반찬도 이러한데 도시락 반찬은 얼마나 더 신경이 쓰일까. 사실 나는 ‘집 밥’ ‘엄마 밥’이라는 말을 들으면 집에서 먹었던 것보다 집 밖에서 먹었던 엄마의 도시락이 더 먼저 생각난다.
중학교 때야 급식이 보편화되었던 시절이 아니어서 점심은 당연히 도시락이었지만, 급식을 먹었던 고등학교 때도 난 엄마가 싸 주신 도시락을 먹었다. 저녁에, 그것도 따끈따끈한 밥과 반찬을 말이다. 전교에서 저녁을 따뜻한 엄마의 밥으로 먹었던 사람은 나밖에 없었으리라 확신한다.
고3 때 내 저녁 도시락 반찬은 급식을 먹는 친구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샀다. 급식으로는 절대 먹을 수 없는, 아침에 가지고 나온 도시락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반찬들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 식지 않아 따뜻한 불고기, 고기와 채소가 잔뜩 들어간 닭개장, 고소하고 바삭한 게 튀김, 상큼한 오징어 초무침 등 제철 재료로 채워진 나의 저녁 도시락은 늘 진수성찬이었다.
엄마는 비가 오는 날에도, 무더위가 한창인 한여름에도 하루도 거르지 않으시고 늘 저녁 도시락을 가져다주셨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걸어서 30~40분이 걸렸는데, 엄마는 그 거리를 늘 걸어오시고 걸어서 되돌아가셨다. 힘든데 버스라도 타고 오지 않았냐고 하면 엄마는 ‘운동 삼아’ 걸어 다니는 게 좋다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내가 밥을 차리는 입장이 되어 보니, 국 하나에 반찬 서너 가지를 만들어 제시간에 도착하려면 엄마는 적어도 낮 시간은 전부 음식 준비를 해야 했을 것이다. 넓지도 않은 주방에서 시계를 봐 가며 분주히 움직였을 엄마. 내가 그런 엄마에게 늦게 왔다며 온갖 짜증을 낸 날이 있었다. 나는 엄마를 기다리며 ‘친구들은 밥 다 먹어 갈 텐데’ 하는 생각에 괜히 초조해졌고, 엄마가 보이자마자 짜증을 확- 내고는 도시락을 챙겨 교실로 돌아갔다. 내가 가버리고 그곳에 남은 엄마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날 반찬이 뭐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조금 늦은 저녁을 먹었던 16년 전 그날의 야자 시간은 비교적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종이 울려 자리에 앉았지만 난 뒤늦은 후회로 공부에 집중할 수 없었고, 눈물이 왈칵 나와 화장실로 뛰어가 숨이 넘어가게 혼자 꺼이꺼이 울었다.
나는 엄마를 보고 사과를 할 용기가 나지 않아 작은 쪽지에 죄송하다는 말을 담아 부엌 싱크대에 올려 두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니 이상하게도 그 쪽지는 다시 나의 책상에 올려져 있었다. 내가 엄마와 눈을 마주쳤을 때, 엄마는 슬쩍 웃었던 것 같기도 하고 조금 슬픈 표정을 지었던 것 같기도 하다. 지금에 와 생각해 보니, 엄마가 내가 쓴 사과의 쪽지를 간직하지 않았던 것은 ‘정미야, 그 일 크게 신경 쓰지 마’라는 뜻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자식의 허물을 담아두고 싶지 않았던 엄마의 마음이지 않았을까.
고3 이후에도 나는 엄마가 챙겨 주는 도시락을 여러 해 먹었다. 종일 수업을 받았던 출판 학교 시절, 그리고 첫 회사에 들어갔을 때도 엄마는 점심 도시락을 챙겨 주셨다. 이때도 역시 엄마의 반찬은 친구들과 직장 동료 사이에서 인기가 있었다. 재료의 맛이 살아 있는 고소한 나물 무침과 넣은 것은 별 것 없는데 감칠맛이 느껴지는 무조림, 적당히 익은 마늘장아찌 등이 인기가 좋았다.
엄마의 도시락은 내가 사랑을 받고 있다는 증거였다. 고3 때 내 별명이 ‘엄마 사랑’ 일 정도였으니까. 도시락 뚜껑을 열었을 때 나는 항상 기분이 좋았다. 반찬들은 늘 정갈하게 담겨 있었고, 깨소금이 톡톡 올라가 있었으며, 가끔은 밥 위에 하트 모양의 콩 장식이 있기도 했다.
엄마는 줄곧 나에게 이렇게 사랑을 표현했고, 요즘도 수시로 해 주시는 반찬으로 엄마는 마음을 표현하고 계신다. 늘 감사할 뿐이다. 나도 언젠가 꼭, 다른 것 말고 따뜻한 밥과 국, 반찬으로 엄마에게 내 마음을 표현해야겠다. 그리고 그날의 엄마의 표정을 잘 기억해 둘 것이다.
결혼 후, 신혼여행을 다녀와 신혼집에서 먹은 첫 끼. 밥 빼고는 모두 엄마가 냉장고에 넣어 두고 가신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