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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뫼 Aug 30. 2019

쓰는 사람, 김정미


자연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빨래를 돌리는데 후드득- 비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른 아침부터 하늘이 끄물끄물하더니 비가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연 이틀 야식을 먹은 탓에 오늘은 제대로 뛰어야겠다고 결심했었는데 금방 그칠 비가 아닌 듯싶었다. 대신 나도 ‘홈트’라는 걸 해보자, 마음먹고 유튜브에서 20분짜리 ‘무조건 살 빠지는 전신 다이어트 운동’ 영상을 틀어놓고 따라 움직였다.


별것 아닌 동작 같은데도 조금씩 땀이 났다. 산에서 운동하는 것보다 칼로리 소모 면에서는 확실히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 영상을 한 번 더 반복해 따라 했다. 한 세트 더 했으면 한 시간을 채웠을 텐데, 더 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흑. 살은 더 이상 못할 것 같은 걸 참고 한 번 더 했을 때 빠지는 거라고 하던데, 혼자서는 도저히 그 경지까지 갈 수가 없었다.


한 세트를 더 하지 않은 이유는 몸이 힘든 것도 있었지만 단순하게 몸을 움직이며 했던 생각들이 내 마음을 환기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급히 운동을 마무리하고 싶어 졌다.


어린이집에서 자연이와 유일하게 동갑인 친구가 있는데 어제, 그 친구가 이제 종일반을 한다는 얘기를 듣게 됐다. 엄마가 복직을 했다고 했다. 어쩐지 요즘 하원 시간에 마주치지 못해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는데 아, 엄마가 다시 일을 하는구나…. 남편과 통화를 하며 이 얘기를 했다. “나만 빼고 다 일하는 것 같아.” 경단녀가 느끼는 ‘나만 뒤처지는 것 같은 느낌’을 나도 어김없이 받았다.  


‘복직을 했다는 건 어느 정도 규모 있는 곳이겠지? 나는 왜 그런 직장에 다니지 못했던 걸까?’ 이런 생각에서 시작된 우울한 마음이 내 과거의 모습들을 훑고 있었다. ‘어디에서 선택 미스가 난 걸까?’


하지만, 가만있어 보자…. 그렇다면 내가 다시 직장생활을 원하고 있나? 이 물음에 대한 나의 대답은 ‘NO’였다. 일을 하느냐, 안 하느냐라는 단순 비교에서 벗어나 온전히 나만 두고 보니, 직장 생활하는 ‘나’를 원하는 건 분명히 아니었다. 예전의 나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특히 금요일 퇴근길, 교정지가 담긴 종이 가방을 들고 오는 나의 모습을 떠올리니 끔찍했다. 지금 내가 꿈꾸는 나의 모습은 ‘글로 돈을 버는 사람’이었다.


“뭘 계속 쓰다보니까 어느 날 소설가가 됐습니다.”


소설가 김연수는 그 시작이 습작이라기보다는 ‘일기’라고 했다. 내가 번듯한 지면을 통해 등단하는 걸 원하는 것도 아니고, 책을 내는 저자를 바라는 것도 아니고, 글 한 편, 한 편으로 적은 돈을 벌고 싶은 것뿐이라는 생각을 하니 우울했던 마음에도 해가 들었다. 그리고 내가 해야 할 일이 분명하다는 걸 깨달았다. 읽고 쓰는 것. 물론 지금 무얼 쓴다고 바로 돈을 벌 수는 없다. 다만 스스로 내 정체성을 ‘글 쓰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기로 했다. 그 글이 ‘일기’에 지나지 않는대도 말이다.


“글쓰기의 괴로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일기 쓰기를 권하고 싶다. 누구도 읽지 않을 테니 쓰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써라. 대신에 날마다 쓰고, 20분은 계속 써라. (…) 이렇게 하면 글을 자주 쓰게 되는 것만은 틀림없다. 자주 쓰면 많이 쓸 수밖에 없고 결국에는 잘 쓰게 된다.”


사실 가벼운 마음으로 일기를 써보자는 생각은 얼마 전부터 하고 있었다. 몇 번 실천을 하기는 했지만 매일 뭔가를 쓴다는 것은 짐작대로 힘든 일이었다. 운동이든 글쓰기든 하기 싫은 순간의 고비를 넘겨야 근육이 생기는 법이니 이번만큼은 그 순간을 넘어보고 싶다.


그리고 일기 쓰기는 글을 쓴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바로 ‘자기이해’다.


“소설가 D.H 로렌스는 “사람이 두 번의 삶을 살 수 있다면 좋으련만. 첫 번째 삶에서는 실수를 저지르고 두 번째 삶에서는 그 실수로부터 이득을 얻도록”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 말은 한 번의 삶으로는 인생의 의미를 깨닫기 어렵다는 뜻이겠다. (…) 자기이해란 바로 이런 뜻이다. 우리는 글을 쓰는 행위를 통해 한 번 더 살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안다. 글을 쓰며 했던 생각대로 100% 실천하며 살기 또한 어렵다는 것을. 다만 나는 내가 쓴 문장대로 살기 위해 내 글과 내 일상 사이를 핑퐁 게임하듯 계속 오갈 것이다. 더불어 내 글이 쌓이면서 나의 우주도 팽창되길 바란다. 고독하고 자유롭풍요로운 우주처럼.


* 인용 출처 _ 김연수, 《시절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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