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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뫼 Aug 08. 2019

오늘의 to do


오늘은 ‘to do’ 리스트에 있는 항목 중 하나를 해치웠다. 바로 가습기 청소하기.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대충 3월까지 사용했다고 하면 벌써 5개월을 사용하지 않은 가습기를 이제야 닦았다. 수조통이 막혀 있었지만 그 안에 있던 물은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볼 때마다 닦아야지, 닦아야지 했는데 오늘은 어떻게 마음이 생겼는지 닦기로 결심한 것이다.



수조통을 여니 그 안은 이미 물곰팡이가 가득 껴 있었다. 이런 걸 보면 난 별로 청결과는 거리가 먼 사람 같다. 사실 맞는 말인 게 눈에 보이는 곳, 자연이가 손에 닿을 만한 곳만 닦으며 스스로 꽤 만족해하며 지내왔다(또 다른 대표적인 곳은 바로 싱크대 하수구. 그곳을 생각하면 과장 조금 보태 울음이 나올 것 같다). 물곰팡이가 잔뜩 낀 가습기 안을 보고 왜 진작 청소하지 않았을까 바로 후회를 했다. 다른 곳은 다 닦였는데 수조통 뚜껑 안에 있는 또 다른 장치 안에 붉은 때가 빠지질 않았다. 베이킹소다와 과탄산소다로 해결해보려 했지만 그마저도 먹히지 않았다. 베이킹소다+과탄산소다+뜨거운 물로도 해결되지 않는 때는 처음이다.



이를 어쩐 담. 그 장치를 새로 사지 않는 한 방법은 없을 것 같은데…. 새로 살 수나 있을까? 남편이 좋은 거라고 사온 건데…. 청소를 이렇게나 미뤄온 내가 정말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내가 미뤄둔 것들은 사실 이거 말고도 수두룩하다. 원래 ‘to do’ 리스트는 하나씩 지워가는 재미가 있어야 하는데 너무 가끔 있는 일이라 지금 나에게 큰 흥미를 주지 못하고 있다.




자연이가 일찍 잠이 들었다. 난 또 편의점에서 참치 샌드위치와 바나나우유를 사와 <무엇이든 물어보살>을 보며 먹고 말았다. 하버드대에 다니는 유학생이 대학에 들어가고 나니 목표가 없다는 고민을 얘기했는데 난 스무 살에 무슨 목표가 있었나 생각해보니, 목표는 없었고 다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재밌고, 나름 의미를 찾아서 했던 것 같다. 사실 지금도 목표가 없는 건 같은데 하고 싶은 것도, 의미를 찾을 만한 것도 없다는 걸 새삼 확인했다. 그럼 지금 내가 붙잡고 가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런 생각을 하니 보려고 했던 <라디오스타>를 생각 없이 웃으며 볼 수가 없었다. 요즘 남편이 “10년 후에 어떻게 살고 싶어?”라는 얘기를 자주 했는데, 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고 있을까? 지난 주말 ‘지혜의 숲’을 가는 길에 남편이 “파주 가는 길 아직도 설레?” 물었는데 난 그 설렘이 예전만 못 하다는 걸 알게 됐다. 오랜만에 북에디터에 들어가니 왠지 ‘나는 다신 출판계로 갈 것 같지 않다’는 생각 또 든다.



자고 나면 내일이 온다. 자연이가 내 잠을 깨울 테고, 난 겨우 일어나 자연이 먹일 아침을 만들고, 먹이고, 보내고 나면 모든 것이 텅 비어 있는 나의 시간이 또 올 것이다. 그래도 내일 흑임자죽을 처음 만들 생각을 하니 아주 조금은 기대가 된다.



그래, 일단 내일은 흑임자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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