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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뫼 Mar 16. 2020

퇴근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재충전이 필요한 '코로나19 시대'의 엄마들을 위해

코로나19로 아이와 24시간 붙어 생활한 지 한 달이 가까워간다. 아이의 희로애락, 나의 희로애락이 뒤엉켜 하루에도 우리 집 분위기는 시시각각 달라진다. 서로 잘 잤냐는 미소가 담긴 인사로 아침을 맞이하지만, 밤이면 어김없이 나의 분노와 아이의 울음소리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자지 않겠다는 아이와 이제 제발 좀 자라는 나 사이에 아침에 나누었던 사랑스러운 눈 맞춤은 볼 수 없다. 늦은 밤 아이가 겨우 잠이 들면 나의 하루는 아이에 대한 애처로움으로 마무리된다.      


아이가 잠을 자야 나도 나의 시간을 좀 보내고 집안 정리도 할 텐데, 아이는 졸려하는데도 잠을 잘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이번 주에는 낮잠도 자지 않았다. 하루는 오랜만에 일찍 퇴근한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카페에 가 영화 한 편을 볼 자유가 생겼다. 아이와 밤 시간을 보낸 남편은 낮에 충분히 놀지 못해 더 놀고 싶어 하는 것 같다며 억지로 재우지 않는 게 좋겠다고 얘기했다. 나도 며칠을 자라고 윽박지르고 나니 더 이상은 아닌 것 같아 남편의 말에 동의했다.      


다음 날 밤, 일단 방에 들어오기까지는 했지만 아이는 나와 더 놀고 싶어 했다. 일어나라는 아이에게 나는 하는 수 없이 “엄마 아야 아야 아파”라는 핑계를 대고 버텼다. 그러자 아이는 거실에서 장난감을 들고 와 병원놀이를 시작했다. 나는 정말 졸렸기에 내 배에 주사도 놓고 약병도 건네는 아이에게 몇 번 반응해주다 먼저 잠이 들었다. 거의 12시간 다 된 시간이었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땐, 새벽 2시 반이었다. 거실과 안방의 작은 등이 훤했다.      


거실로 나와 장난감을 치우고 너저분한 식탁과 싱크대를 정리했다. 이제야 정리되어 가는 집안을 보니 오히려 피로감이 사라졌다. 빨래를 개며 내가 좋아하는 예능 프로그램을 찾아 틀었다. 낮에 먹지 못한 커피우유도 빨대를 꽂아 신나게 쪽쪽 빨아먹었다(요즘 아이는 내가 먹는 거면 뭐든 자기도 먹어 보겠다고 해서 뭐 하나 마음 편히 먹질 못한다). 보고 싶었던 드라마까지 보고 나니 동이 트고 있었다. 이렇게라도 나만의 휴식 시간을 보내니 조금은 숨통이 트였다. 하지만 이런 밤도깨비 같은 생활을 연달아 며칠 했더니, ‘수면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 같은 연구 논문의 피실험자가 된 것 같은 몸 상태를 얻고 말았다.      

 



아이를 돌보는 것이 부모인 내 일임에 분명한데 ‘나는 왜 이렇게 지치는 걸까’ 하는 생각을 했다.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하는데 내가 나만의 시간을 너무 바라는 것은 아닌가?’

‘아이 둘을 혼자 보는 친구도 있는데 내가 엄마로서 좀 이기적인 건가?’

‘어린이집이 없다면 나는 육아를 할 수 없는 사람인 걸까?’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어떤 형태로든, 휴식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휴식 없이 정신적·육체적으로 소비만 하는 삶이 지속 가능할까? 휴식은 맡은 일을 다시 스트레스받지 않고 해낼 수 있는 재충전의 성격이어야 한다. 나에게는 육아와 집안일을 다시 기꺼이 해낼 수 있는 휴식이 필요했다. 그리고 현재 주부와 엄마의 역할을 해내고 있는 나는 사회적 욕구가 채워지길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내가 가진 생각이나 지향점을 표현하고, 작든 크든 일정 사회에서 그것을 인정받는 것.      


자신이 선택한 직업으로 어떠한 일을 해나간다는 점에서 직장인들은 어느 정도 그런 욕구를 해소할 수 있다. 일을 한다는 것은 앞으로 나아간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직장인이었을 때, 납득이 안 가는 사장의 지시에 따라야 했던 적이 있었다(사실, 많았다). 그때 나보다 연차가 조금 적었던 유일한 나의 동료에게 나는, 위로의 말이자 응원의 말로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어쨌든 우리는 결과물이 나오게 일을 진행해내면 되겠죠.” 사실 나에게 필요한 말이었다. 회사에 출근해서 일을 하는 이유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맡은 일은 가사와 육아다. 그 외에는 아무도 내게 다른 성격의 일을 맡기지 않는다. 직장인이 답은 아니라는 결론은 진즉에 냈지만 그렇다고 대안을 찾은 것도 아니었다. 내가 과연 직장인이 아닌 다른 어떤 것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경험을 할 수 있을까. 작년 봄, 친구들과 나눴던 목표이자 꿈은 지키지 못했다. 우리는 올해 새롭게 마음을 다잡으며 한 발, 한 발 나아가고 있지만 사실 나에게는 조금 더 분명한 방향성이 필요했다.      




지난 주말, 카페로 탈출해 이런 나의 고민들을 정리하다 내가 지칠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를 알게 됐다. 바로, 이런 생활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낮 시간도 자유롭지 못한데 밤에는 아이를 재우느라 ‘퇴근’을 할 수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였다. 집에 돌아와 나는 남편에게 나의 생각을 밝혔다.     

 

“평일 중 하루 3시간, 주말 중 하루 3시간은 집이 아닌 곳에서 나만의 시간을 가져야겠어. 이건 정말 최소한의 시간이야.”     


요즘 프로젝트 때문에 야근이 잦은 남편을 배려하고, 주말 중 하루는 세 식구가 온전히 보낼 시간이 필요해 정말 최소한의 시간을 요구했다. 남편은 잠시 생각하더니 그렇게 하라고 했다. 사실 나의 생각에 박수를 쳐줬다면 정말 기뻤을 것 같은데, 잠시 뜸을 들인 남편이 조금 미웠다.      


앞으로 주 2회의 외출로 무엇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카페에 가서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거나 이렇게 몇 줄 끼적이는 것이 전부일 것이라는 것도 안다. 일단은 재충전의 시간을 확보했다고 생각하자. 그저 그 시간이 기다려지고 그 시간을 통해 아이를 좀 더 사랑할 수 있으면 족할 것 같다. 퇴근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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