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 서오릉에 갔다. 영하의 추운 날씨였지만 집에만 있기에는 너무 답답해 어디로든 나가고 싶었다. 도착하니 주차장에는 꽤 많은 차가 있었다. 가족 단위의 관람객이 많았지만 추워서인지 우리처럼 어린아이와 함께 온 경우는 별로 없는 듯 보였다. 성인 2인 입장권 2천 원을 내고 입구로 들어섰다.
나는 바깥공기를 쐬며 좀 걷고 싶었을 뿐이기 때문에 서오릉 전체를 둘러볼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얼마 안 가 아이가 유모차에서 잠이 들어 계속 걷다 보니 능을 모두 지나 서어나무길 입구까지 가게 되었다. 산 전체가 서오릉을 감싸고 있어 관람코스에는 길고 짧은 오르막길이 자주 등장했다. 오르막길 앞에서 나는 그만 돌아가자고 했지만 이왕 온 김에 다 둘러보자는 남편의 말에 따라 우리는 유모차를 밀며 언덕길을 올랐다.
유모차를 밀며 오르막길을 오르는 남편의 모습
본격적인 오르막길인 서어나무길 앞에서 남편과 나는 집에서 가져온 감자 빵을 나누어 먹었다. 추운 날씨에 그런 야외에서 뭔가를 먹는 사람은 우리밖에 없었다. 흙길 위에 서서 빵을 먹는 서로의 모습을 보고 남편과 나는 웃음이 터졌다. 차가운 빵을 먹어도 웃음이 나다니…. 인생의 반려자가 이런 것인가, 하는 생각이 잠깐 스쳤다. 우스우면서도 행복하다는 생각을 했다.
오르막길은 쉬지 않고 나왔다. 유모차를 계속 민 남편에게 이제 내가 밀겠다고 했지만 남편은 한사코 괜찮다고 했다. 분명히 힘들어 보였는데 말이다. 나도 운동 좀 하려고 한다는 말을 들은 남편은 그제야 나에게 유모차 손잡이를 양보했다. 잘 다져져 있었지만 흙길이라 유모차를 밀고 올라가는 게 쉽지 않았다.
몇몇의 중년 부부가 우리 옆을 가뿐하게 스쳐 지났다. 3분이나 밀었을까. 나는 남편에게 연기 톤으로 “오빠 나 더 이상은 안 될 것 같아. 난 끝났어.”하고 말했다. 남편이 웃으며 다시 유모차 손잡이를 잡았다. 난 대신 남편의 허리를 밀었다. 뜻밖의 가족 동계 훈련이었다. 한참 오르던 남편이 잠시 멈춰 콧물을 닦는 동안 내가 다시 유모차를 밀었다. 이번에는 남편이 내 허리를 밀어줬다. 내가 낄낄대며 “완전 가족 단합 훈련이네”하니 남편도 같이 웃었다. 웃음 코드가 비슷한 사람끼리 결혼해야 한다는 나의 신념이 더 굳어지는 순간이었다.
산 정상을 찍고 나니 이번엔 내리막길 지옥이었다. 고운 흙길이라 자칫하면 미끄러져 넘어질 위험이 있었다. 잰걸음으로 유모차를 밀고 내려가는 모습이 위태롭게 느껴질 즈음 아이가 잠에서 깼다. 아이를 유모차에서 빼냈지만 아이는 걸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남편은 아이를 안고 나는 유모차를 잡고 조심조심 내리막길을 내려갔다. 유모차 바퀴에서 이는 흙먼지에 바짓단이 뽀얘졌다.
드디어 평지를 만난 우리는 단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집, 집, 빨리 집에 가자.’ 차에 탄 우리는 아이의 신청곡인 ‘반짝반짝 작은 별’을 들으며 왔던 길을 되돌아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가 말을 안 해서 몰랐는데 집에 돌아와 아이의 양말을 벗기니 두 발이 얼음장 같았다. 너도 편하지만은 않았구나. 아이에게 따뜻한 우유를 먹이고 어제 사다 놓은 닭 한 마리를 한 솥 끓였다. 아주 매운 고추 양념장을 팍팍 넣고서. 뜨겁고 얼큰한 국물이 몸에 들어오니 살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