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 친구 목록을 보다 한 선배의 상태 메시지가 눈에 들어왔다. 교수님이 된 모양이었다. 궁금해 말을 걸려다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가 2016년이라 조금 망설여졌다. 그래도 축하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오랜만이라는 인사로 말을 건넸다. 올해로 3년 차라는 선배의 얘기에 ‘너무 격조했네요’라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 때문에 온라인 강의를 하고 있어 학생들이 카톡으로도 질문을 해온다고 했다.
우리는 안부를 묻고 서로의 근황에 대해 짧지도 길지도 않게 얘기를 나눴다. 4년 만의 대화였지만 어색하지 않았고, 이렇게라도 얘기할 수 있어 반갑고 좋았다. 선배는 “별일 없어도 잘 산다고 톡 가끔 줘” 했다. 말 걸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그 선배와는 특별한 일 없어도 가끔 생각날 때마다 안부를 물어볼 수 있는 사이가 됐다. 사실 누구에게나 ‘문득’ 생각났다며 말을 걸어도 상관은 없지만 실제 그렇게 하는 경우는 많지 않으니까.
망설이는 일에 있어서 더 좋은 때는 없다. 누군가에게 연락을 할까 말까, 청소를 할까 말까, 여행을 갈까 말까, 먹을까 말까(아예 안 먹는다면 몰라도 먹을 거면 지금 당장 먹는 게 낫다), 운동을 하러 나갈까 말까, 일어날까 말까….
나는 생각이 많은 편이다. 생각이 많은 게 나쁜 건 아니지만 가둬두는 것은 건강에 안 좋다고 생각한다. ‘아끼다 똥 된다’는 속담은 비단 물건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흩어지지 못한 생각은 어떤 식으로라도 노폐물이 되어 내 안에 쌓이게 마련이다. 생각을 줄일 수 없다면 생각한 것은 바로 행동에 옮기는 편이 여러모로 좋다. 하고 나면 일단 후련하고 스스로 뿌듯하다. 사소해 보이는 것일수록 그렇다. 우리의 하루하루는 사소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 자고 일어나니 대학 시절 알고 지낸 친구 어머니의 부고 메시지가 와 있었다. 코로나만 아니면 잠깐이라도 들르고 싶었다. 얼굴 본 지 오래된 친구지만 나에게 메시지를 보냈을 그 친구도 고민을 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많은 사람이 모이는 장례식장에 가는 건 무리라고 판단했다. 할 수 없이 카톡으로 부의금을 송금하고 못 가봐서 미안하다고 문자를 보냈다. 망설여서 좋을 게 없을 대표적인 일 중에 하나다. 나는 친구에게 못 가봐서 미안하다는 얘기와 함께 코로나가 종식되면 언제라도 연락해서 안부를 물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문자에 담은 내용은 모두 진심이었다.
망설이지 않고 한 일이 나를 만든다고 생각하면 과한 걸까. 망설이지 않는 것, 망설이지 않는 태도…. 살아가면서 지녀야 할 태도 하나를 마음에 새겼다고 생각하자. 이 태도가 쌓이고 쌓여 내 '삶의 기술'이 되는 날을 상상해본다.
덧》
그나저나 우리가 정말 카카오톡 공화국에 살고 있음을 느낀다. 지인들의 좋은 일, 슬픈 일 모두 카카오톡으로 확인하고 마음도 전할 수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