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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뫼 Jan 31. 2023

자신을 기꺼이 노력하게 만드는 일

글쓰기에 진심입니다




넷플릭스에서 처음으로 일본 드라마를 봤다. TV 드라마는 아니지만 어쨌든 회차가 있는 일본 시리즈는 처음이었다. 자막 읽는 게 귀찮아 두 종류의 OTT를 보는데도 거의 한국 것만 보았는데 이건 안 볼 수가 없었다. 음식이 등장하는 드라마 너무 궁금했기 때문이다. 바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마이코네 행복한 밥상>.


중학교를 졸업한 절친 둘이서 마이코(게이코가 되기 전 단계)가 되기 위해 고향을 떠나 교토로 온다. 마이코의 숙소에서 지내며 무용 등 마이코가 되기 위한 수련을 하는데 주인공 키요는 무용에 영 소질이 없다. 급기야 스승님에게 더 이상 수업에 오지 않아도 된다는 통보까지 받고 고향으로 내려갈 처지에 놓였다. 그러다 우연히 숙소 식구들의 한 끼를 차리게 되고 그 계기로 숙소에 남아 마이코들의 음식을 준비하는 요리사가 된다.


사람은 각자 자기가 빛나는 장소가 있다는 게 이 드라마의 메시지다. 키요는 스승님 앞에선 늘 지적의 대상이었는데 숙소 부엌에서는 마치 오케스트라 지휘자처럼 요리를 한다. 숙소 식구들의 컨디션에 따라, 냉장고에 있는 재료를 파악하고 시장에서 사 올 것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한다. 또 누군가 푸딩이 먹고 싶다고 하면 냉장고에 있는 재료들로 푸딩 맛이 나는 식빵 푸딩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아픈 스미레(교토에 같이 온 키요의 절친)를 위해 좋은 다시마와 좋은 가쓰오부시를 파는 각각의 가게를 수소문해 재료를 사고 직접 육수를 내 우동을 끓여 주기도 한다. 숙소 식구들은 키요의 음식을 먹으며 행복해하고 키요 역시 그들을 보며 행복해한다.


음식을 완성하고 키요는 음식을 향해 세상 뿌듯한 표정을 짓는다. 그동안 나는 속으로 뿌듯해 했지만 앞으로는 의식적으로라도 내 글에게 그런 표정을 지어줘야겠다.



키요에게 부엌은 자신을 애쓰게 하는 곳이다. 애쓴다는 말이 적합하지 않을지도 모르만 내가 애쓴다는 말을 붙인 건 자신을 기꺼이 노력하게 만든다는 의미에서다. 세상에 재능만 가지고 잘할 수 있는 건 없다는 생각을 했다. 재능은 능력일 뿐이지 계속하게 하는 힘은 없다. 키요는 먹는 이의 몸과 마음 상태에 맞는, 날씨에 어울리는, 무엇보다 식구들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 누가 시키지 않아도 가스레인지를 닦고 다시마 물 우리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늦은 밤 부엌에서 가스레인지를 닦는 키요에게 어머니 아즈사(숙소의 2대 주인. 마이코들의 어머니 같은 존재)가 말을 건넨다.


“키요는 정말 깔끔한 성격이구나? 여기저기 다 새것 같아.”


키요가 대답한다.


“주방에서만 그래요.”


한편, 스미레는 몇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마이코라는 평을 들으며 가장 단시간에 마이코로 데뷔를 한다. 키요가 요리에 진심이라면 스미레는 무용에 진심이다. 빨래를 너는 발코니에 나가 아침마다 혼자 무용 연습을 하는 스미레의 버선은 닳고 닳아 있다. 닳은 스미레의 버선을 보며 언니 마이코 츠루코마는 어느 날 어머니에게 말한다.


“재능 있는 사람이 이렇게 노력까지 하면 저 같은 사람은 어떡해야 하나 계속 생각했어요.”


그리고 결심한 듯 말한다.


“아마 제가 있을 장소는 여기가 아닌 것 같아요.”


어머니는 모두 빛나는 마이코가 될 수는 없다고, 각자 자기다운 마이코가 된다고 말하지만 츠루코마는 자신에게 마이코를 계속하기 위해 애쓰고 싶은 마음이 없다는 고백을 한 건지도 모른다.






어제 <알쓸인잡>을 보다 출연진들이 자신의 동력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봤다. 물리학자인 김상욱 교수는 ‘재미’가 자신의 동력이란다. 물리학자 파인만에 대해 얘기할 때 그의 얼굴은 오랜만에 보는 친척 어른에게 자기가 좋아하는 장난감을 설명하는 일곱 살 난 아이의 얼굴과도 같았다. 평소였으면 ‘그럼, 물리를 좋아서 하겠지 안 그러고서야 물리학자가 어떻게 됐겠어?’라고 심드렁하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뭔가 나에게는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을 좋아하는 사람을 보면 저런 식의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물리 과목이 제일 어려웠던 문송인 나였기 때문에.


그리고 한편으론 내가 좋아하는 것, 재미를 느끼는 것에는 ‘소소한’이라는 수식어를 꼭 붙였었다. 무언가 좋아하는  숨길 일도 아닌데 저들처럼 당당하게 좋아한다고, 재미있다고 말하지 못한 건 왜일까. 이유를 생각하니 내가 그것으로 이룬 것이 없기 때문인 것 같았다. 누군가 속으로 ‘이룬 것도 없으면서 재미?’ 하고 비웃을까 봐. 하지만 이제 그러지 않기로 했다.


나는 요즘 글쓰기가 재밌다. 기꺼이 노력하고, 애쓰고 싶은 일이다. 그래서 뭐 이룬 게 있냐고? 없다. 그럼 앞으로 무엇을 이룰 거냐고? 계속 재미를 느끼며 노력하고 싶다. 그뿐이다. 내 영역이 아닌 일에는 마음 쓰지 않기로 했다. 나는 글쓰기가 소소하게 재밌지 않다. 대놓고 재밌다! 오전에 한 편 쓰고 나면 오후에 또 다른 글을 쓰고 싶어질 만큼 대놓고 재밌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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