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그잔 모양의 동그라미 열 개 중 두 곳에 도장이 찍혀 있다. 내 책상 독서대 가장 앞, 중앙에 있는 커피집 쿠폰이다. 나머지 여덟 개를 더 찍어 무료 아메리카노를 먹을 일은 없다. 전에 살던 동네에 있던 커피집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사 전에는 도장 열 개를 다 모아 무료 아메리카노를 먹었던 적이 꽤 있는 집이다.
아무튼, 지금은 책갈피다. 나는 이렇게 채우지 못한 쿠폰들을 책갈피로 쓰곤 한다. 쿠폰뿐만 아니라 전시회 티켓, 남편 명함, 딸이 그려준 그림이 있는 찢어진 스케치북, ‘아쉽게도 낙첨되었습니다’ 복권 종이 등이 책갈피로 쓰인다.
나는 책날개를 읽던 페이지에 꽂아 책갈피 역할을 하는 걸 싫어한다. 원래대로 돌려 책장을 덮어도 책 형태가 보기 좋지 않게 바뀌어 버리는데 그렇게 모양이 변하는 게 싫다. 그렇다고 내가 귀퉁이 한 장 접지 않고 밑줄 하나 긋지 않고 아끼면서 보는 건 아니다. 책 안에는 밑줄도 많고 메모도 있고 가끔 정말 좋아하는 문장이 있는 페이지는 귀퉁이를 접기도 하지만 책 표지는 깔끔하면 좋겠다. 자주 펼쳐서 손때 묻는 건 좋은데 일부러 모양을 변형하는 건 질색이다. 남편 책꽂이에 가끔 그런 책이 보이면 내가 갖고 있는 여분의 책갈피로 읽던 페이지 표시를 해준다.
아, 가끔은 책에 있는 띠지를 접어 책갈피로 쓰기도 했다. 띠지는 버리기도 뭣 하고 끼고 있자니 페이지를 펼칠 때 거추장스러워 항상 애매한 포지션으로 있지만 그래도 나는 주로 띠지까지 보관하는 편이다. 버리기 뭣 한 이유는 진짜 표지에는 없는 카피가 쓰여 있기 때문이다. ‘카피가 뭐가 중요하냐’, ‘어차피 출판사에서 홍보 목적으로 쓴, 가끔은 사실보다 엄청나게 부풀린 홍보 문구가 있는 종이 아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전 출판 편집자 입장에서 보면 카피는 그 책의 핵심 메시지이기 때문에 ‘어디 어디 1위’, ‘구독자 수 몇 만’ 이런 문구만 빼면 독자에게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한다.
나는 책을 읽다 자주 목차를 본다. 저자가 말하는 전체 맥락에서 내가 어디쯤 위치해 있는지 확인을 하며 내가 읽어왔던 내용, 앞으로 읽을 내용을 확인하며 본다. 그리고 책 표지에 있는 카피 문구도 본다. 그렇게 책을 읽으면 내가 꽂히는 부분에만 매몰되지 않고 읽게 되어 좋다. 내가 꽂히는 것에 집중하는 것도 좋은데 가끔 거기에서 헤맬 때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띠지가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한때 ‘띠지 버리기 운동’ 같은 게 있었던 것처럼 종이의 낭비일 수도 있으니 그런 카피가 표지에만 있다면 없는 게 나도 좋다. 그래서 내가 일한 출판사에서는 표지 아랫부분을 띠지처럼 다른 색을 입히고 거기에 카피를 쓰기도 했었다(디자이너가 질색을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소설책에 많이 쓰이는 가름줄은 존재감이 크지 않아 있는지도 모르고 보다가 절반 이상 읽었을 때 발견되기도 한다. 그럼 그냥 썼던 책갈피를 계속 사용한다. 사실 요즘은 소설책을 잘 안 읽고 있어 가름줄의 느낌을 모르겠다.
‘다른 음료로 변경 시 아메리카노 금액만큼 차액해 드려요’
‘아메리카노 무료’ 아래 작게 쓰여 있는 문장이다. 너무 작아 고개를 가까이 들이밀어야 보인다. ‘다른 책으로 변경 시 ……’ 뭔가 기발한 문장을 완성하고 싶지만 적당한 게 떠오르지 않는다. 이런 생각은 해 봤다. 종이 책갈피에 그 책갈피를 사용해 읽었던 책들의 제목을 쭉 적어보는 것이다. 그럼 내가 잠든 사이 책갈피들끼리 티격태격하며 자기가 얼마나 나의 선택을 받고 싶은지, 나를 향한 애정을 성토하는 자리가 열리진 않을까. 아…. 내가 상상력이 너무 빈곤한 것 같아 그냥 해본 침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