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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뫼 Feb 04. 2022

찰나를 느낀 하루

풍요로운 삶으로

휴일로 시작하는 2월은 뭔가 애매한 느낌이다. 연휴가 끝났지만 달력 어딘가에 더 놀 수 있는 빨간 날 같은 게 남아 있는 느낌이다. 왜 아직도 초중고 때 2월의 분위기가 세포에 남아 있는 느낌인 건지. 자연이의 어린이집 생활을 마무리하는 2월이라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자연이를 보내고 5킬로 정도를 걸었다. 선크림은 귀찮아서 안 바르지만 얼굴 타는 건 싫어 갈 때는 그늘진 쪽으로 걸었다. 햇빛이 없어 기미 걱정은 안 해도 됐지만 눈이 아직 녹지 않아 아장아장 걷느라 빠른 걸음으로 걷지 못했다. 불편하고 운동도 안 되는 것 같아 반환점을 돌아 집에 올 때는 ‘에라, 모르겠다’의 심정으로 햇빛이 내리쬐는 건너편 인도로 걸었다. 금방 몸에서 열이나 패딩 점퍼를 벗어야 했다.    

  

신호등을 기다리는 횡단보도 앞에서 눈을 감고 스트레칭을 하다 햇빛을 정면으로 받았다. 쨍한 햇빛은 겨울이라 적당히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귀에는 페퍼톤스의 ‘바이킹’이 흐르고 있었는데 사거리의 차 소리와 뒤섞여 휴양지에 온 것 같은 느낌도 들고, 미국 대도시 한복판에 있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아무튼 일상에서 한 발 떨어진 느낌이었던 것은 분명했다.  

    

다음 횡단보도 앞에서는 아예 햇빛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몸에선 열이 났고, 심장은 조금 빨리 뛰었고, 눈이 부셨고, 내가 살아 있음이 온 감각으로 느껴졌다. ‘이렇게 해를 보고 가만히 서 있었던 적이 있나. 아마 처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니 딱 그 찰나가 꽤 만족스러웠다. 되돌아가 만날 수도 없고 먼저 뛰어가 기다릴 수도 없는 순간을 내 몸 가득히 느낀 것 같아 그 찰나에는 정말이지 새로 태어난 느낌이었다.  

         



복잡한 걸 싫어한다. 따지고 재면서 분별해야 하는 건 체질적으로 기피하게 된다. 직관적이고 단순한 걸 좋아하지만 가끔은 스스로 멍청이 같다는 생각도 했다. 따지고 재는 사람들의 논리력이 부럽기도 하고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결국엔 잘 사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고른 남자와 결혼한 사람이, 그렇게 미래를 준비하고 직장을 잡은 사람이, 그렇게 투자해서 목동 아파트를 산 사람이….    

 

하지만 ‘그렇게 살아 볼래?’ 하고 스스로에게 묻는다면 난 고개를 절레절레한다. 결국 인정하게 된다. 나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는 걸. 의지가 없는 일에 탐을 내는 마음. 가진 것보다 없는 것에 마음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 같기도 하지만 계속 그렇게 산다면 그 사람은 결국 공허함만 느끼면서 사는 꼴이다. 닥쳐오는 불행은 막을 수 없다지만 불행을 스스로 ‘줍줍’ 하는 사람은 되지 말아야 하지 않겠나. 입으로는 풍요를 꿈꾼다고 했지만 공허함이나 주우며 사는 인생을 살고 있었나.      


나를 둘러싼 풍요를 느끼는 인생을 살고 싶다. 매번 찰나를 느낄 수는 없겠지만 오늘의 느낌을 잊지 말자. 나의 온 감각이 깨어있던 이 느낌을. 



(22.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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