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끄적이 엄마의 짧은 단상

소소한 일상이 모티브가 된 하루 일기.

by Gin

대중목욕탕


토토로가 쉬는 날.


아이들이 태어난 이후로 쭈욱-

토토로의 쉬는 날은 목욕날이었다.


허리와 손목이 가출 해버린 나를 대신해서,

토토로는 빠트리지 않고 아이들의 목욕을 전담해 주었다.

가끔가다 아이들과 같이 씻겨달라며 칭얼대는 나를 포함해서.


토토로는 어릴 적, 아버님과 떨어져 살았다고 했다.

주말 부부로 떨어져서 지내셨던 시아버님께서는 집으로 오는 날이면

두 아들을 데리고 근처로 놀러 가시거나, 함께 대중목욕탕에 가셨다고 했다.


같이 가서 때 빼고, 광 내고, 물장난도 치고, 몸도 지지고.

따듯한 물에서 녹아버리는 느낌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일찍이 깨달았다며.

목욕 뒤에 마시는 항아리우유의 달콤함을 아냐며.

기억을 떠올리는 토토로의 얼굴이, 그 때의 나이로 어려진 것 같았다.


오늘, 토토로와 1호가 함께 목욕을 갔다.

남탕에는 어지간한 것이 다 있다며 빈 손으로 가려는 두 남자를 붙들고,

샴푸며, 속옷가지를 가득 챙겨서 들려 보냈다.



신이 나서 들떠있는 1호를 보며 괜시리 흐뭇했다.

투닥거리며 차를 타고 움직이는 두 남정네의 모습이 새삼 귀여웠다.


"아빠랑 오빠 다녀오면, 엄마랑 나도 가는 거야?"


2호의 물음에 잠시 움찔했다.

대중목욕탕을 이용하는 것이 낯설은 나는,

기대에 차 반짝거리는 2호의 눈망울을 마주 보기가 어려웠다.


"아하하... 꼭 가고 싶어?"


"나는 한 번도 못 가봤단 말이야..."


학원 차를 기다리며 씁쓸해하는 2호를 보고 있자니,

왜 우리 집은 찜질방 한 번을 안 가냐며 서운했던 내가 보였다.


남들에게 몸을 보인다는 것에 거부감이 심한 나이지만, 까짓 것 가보자 싶었다.

내가 겪지 못했던 추억들을 주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내가 서운했던 일들을 아이들이 겪지 않게 해주겠다고 생각했었다.

이 또한, 그 중 하나가 되겠지.


그래, 가자!
갔다가 나오는 길에 음료수도 사 먹자!


빠르게 씻고 온 남자들과 교대로 목욕탕에 갔다.

미취학 아동인 2호 덕분에(?) 남자들보다는 싸게 들어갔다.


목욕탕 안에서보다 밖의 자판기에서 파는 항아리 우유가 더 싸다는 고급 정보에,

2호와 함께 입실 전에 우유부터 빠르게 획득했다.


"엄마... 다 벗어야 해...?"


"응. 집에서 목욕하러 들어갈 때 처럼 다 벗고 들어가야지. 왜? 부끄러워?"


상기된 채 들어올 때와는 다르게, 머뭇거리며 주변을 탐색하는 2호의 모습에

풋, 하고 실없는 웃음이 새어나왔다.

주변을 잠시 둘러보던 2호는 나를 따라서 락커에 옷을 담고는 수건으로 몸을 둘러 감쌌다.

발을 동동 거리며 처음 맞이하는 광경에 눈이 반짝거렸다.


"엄마, 우리도 저거 하자."


2호의 손 끝에는 체중계가 있었다.

굳이 올라가야 되나 싶은 체중계.

껄끄러운 나와는 달리, 2호는 꼭 해야 하는 코스라며 내 손을 이끌고 있었다.


너, 솔직히 말해. 이번이 처음 아니지.



나보다 더 목욕 코스에 빠삭한 2호에게 이끌려, 알고 싶지 않았던 체급도 알게 되고,

2호를 깐 달걀 마냥 씻기며, 질문을 퍼붓는 아이의 말에 대답을 해주었다.

무엇이 그리도 신기하고 재미있을까.

아이의 눈에서는 햇빛이 내리 쬔 물결 마냥, 반짝임이 넘실거렸다.


"엄마, 우리는 저기 못 들어가?"


어르신들이 뜨겁에 몸을 담구고 계시는 탕을 가리키던 2호는

나의 생각이 깊어지자 휴우, 하고 한 숨을 내쉬었다.


'발정도는 담구어도 되지 않을까?' 하던 찰나,


"어이구! 큰일 날 소리! 애기가 여기 들어오면 화상 입어, 안돼!"


탕에 들어가 계신 어르신께서 2호의 말을 들으셨나보다.

서운함 가득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던 2호는 끝내 탕에 들어가보지 못했다.


목욕탕을 나오는 길.

2호는 우울해진 얼굴로 항아리 우유에 꽂힌 빨대를 쪼로록- 빨았다.

나오는 걸음이 거북이와 경주를 하려는 듯, 매양 느리기만 했다.


집에 돌아와서도 2호는 꿀꿀함 그 자체였다.

토토로가 2호와 이야기를 잠시 나누더니 이내, 2호는 엉엉 울음을 터트렸다.


"뭐야, 왜 그래?"


"탕에 못 들어갔던게 서러웠대."


"아니... 씻으러 간 거지, 담그러 간 게 아니잖아."


"목욕탕은 그 재미에 가는 거지! 그게 부러워서 간다고 한걸텐데."


눈물 범벅이 된 2호와 그런 아이를 안고 있는 토토로,

그 옆에서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는 1호를 보며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들의 목적은 씻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과 나의 목적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목욕탕을 이용하는 마음이 다르구나 싶었다.

그들은 추억과 놀이의 개념이 더 컸고, 나는 오롯이 씻는다는 개념이 더 컸다.


살며시, 마음 속에서 부러움이 차올랐다.

나도 저들처럼 장소에 대해 추억을 가질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한편으로는, 내게선 나올 수 없는 감성을 아이들에게 전해준 토토로에게 고마웠다.

내가 바랬던 가족의 추억이란, 이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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