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겨 넣은 마음

by Gin

결혼 이후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2명의 아이를 낳고, 기르며 나는 나 자신을 지워왔다. 일 욕심도, 사회생활에 대한 갈망도 전부 뒤로 미뤄둔 채 아이들의 엄마로서 살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왔다. 이윽고 3번째 임신을 하고 배가 불러오면서 기쁨도. 즐거움도, 슬픔도 무감각해져 갈 즈음 큰 아이의 학교로부터 연락이 왔었다.


'아이가 ADHD 검사를 받아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결과를 학교에 전달해 주시기 바랍니다.'


불쾌했다. 권유도 아닌 권고사항이라니. 나의 아이가 문제가 있다는 듯한 담임 선생님의 말을 듣고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내 아이에 대해 당신이 얼마큼 알고 있다고?

그 질문의 화살은 다시 나에게 되돌아왔다. 그럼 난 아이에 대해 얼만큼 알고 있냐고.


출산을 2주 앞두고 큰 아이와 상담센터를 찾았다. ADHD 검사와 더불어 좀 더 정확한 결과를 위한 가족 상담 형태의 설문지 작성을 남편과 함께 진행하였다. 결과는 출산일 다음날에 발표가 될 것이라 남편이 홀로 가서 듣고 오기로 했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출산을 하고서 남편이 결과를 들고 왔다. 결과는 생각보다 충격적이었다.


이 가족은 아이가 문제가 아니라 어머님이 많이 문제시네요.
어머님께서 우울증이 많이 심하시고, 본인 이외의 가족 구성원들을 가족이라고 받아들이지 못하고 계세요.
그로 인해서인지 어머님 마음에 남은 감정이 거의 없으세요. 남은 감정이라고는 [화]가 전부이시네요.
그러면 아이와의 감정 공유도 힘드실 것이라 생각됩니다.
아이의 학습 태도나 학습 능력에 문제가 되지 않으려면 어머님께서 빠르게 입원하셔서 분노 조절 치료와 상담을 받으시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일 듯합니다.


남편이 녹음해 온 결과를 들으며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아이에게 해가 되는 엄마라니. 가족을 가족이라고 여기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 충격으로 다가왔다.


제왕절개로 출산하여 누워있는 상황에서 센터장님과 통화를 하게 되었다. 2시간가량의 통화를 하며 약물 치료, 입원 치료 이외의 치료는 없는 것인가에 대한 공방을 나누었다. 그러다 문득 떠올랐다. 느끼고 있지 않다면 뇌가 인지하게 만들면 될 것이 아닌가. 그렇게 가시적으로 눈에 새겨 넣을 수 있으며, 그 의미가 볼 때마다 인식될 수 있는 것을 찾았다. 나의 첫 타투는 그렇게 새겨졌다.


내 아이들, 내 남편을 나의 몸과 마음에 새겨 뇌로 인지할 수 있도록. 내 손으로 그린 도안 하나, 하나에 가족 한 명씩의 의미를 담았다. 몸의 아픔으로 잊지 못하게. 볼 때마다 그 아픔이 기억될 수 있기를 바라며, 그렇게 아로새겨 넣었다. 심장과 가까운 곳에 아픔을 새겨 넣으며, 그들이 나의 가족임을 잊지 않기를 바랐다.

첫째 아이, 둘째 아이 모두 회사에서의 진급 시기와 겹쳐서 찾아와 줬음을 알게 되었고, 그로 인하여 부당하게 해고를 당하였기에 원망의 마음으로 아이들을 맞이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몸에 새겨 넣으며 아픔을 인지하였고, 아픔이 심장에 와닿아 '아, 이것이 아픔이었구나.'를 깨달았다. 아픔에 공감하였다. 가족이, 아이들이 보고 싶었다.


타투를 마치고 돌아와, 출산 이전에 보았던 [82년생 김지영]을 다시 보며 눈물이 흘렀다. 주인공의 감정에 동화되어 마음이 아프고, 힘들고, 가련했다. 그런 나를 보며 아이들이 옆에 앉아 손을 잡아주었다. 이 전에는 아이들의 행동이 불편하고 불쾌했다면, 그 순간에는 너무도 미안하고 그처럼 사랑스러울 수 없었다.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는 큰 아이도. 내 등을 쓸어주며 걱정스러움을 표하는 둘째 아이도. 내 품에 안겨 쌕 쌕 숨을 내쉬는 막내 아이까지도 모두 따스하고 벅차올랐다.


나는 아직도 누군가 '그들을 진정 가족이라고 느끼고 있느냐?'라고 묻는다면 단번에 대답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새겨진 그림들이 무엇을 뜻하는 것이냐?'라고 묻는다면 [내가 지키고 아껴야 할 내 사람이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어미로서의 모성애? 그런 것은 거저 생기는 것이 아니다. 인지하고, 공감하고, 감각적으로 받아들이며 생기는 것이다. 애초에 나는 아이들을 받아들이려 노력을 하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내 손으로 그린 마음을 아픔으로 몸에 새겨 넣는 것. 그것으로 아이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문을 만들어 내었다고 생각한다.


타투라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패션일 수도, 액세서리 일수도 또는 일탈의 한 부분으로 불쾌하게 보이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나와 그 외의 사람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문이 되어 주었다.

타투로 인해서 아이들을 받아들이게 된 것인가? 에 대한 의문은 의견이 분분히 나뉠 수 있겠으나 적어도 가족들은 내 몸에 새겨진 그림을 보며 알아봐 주었다. 내가 그들을 받아들이려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아이들은 가끔씩 자신을 의미하는 그림에 손을 대어 본다. 미소를 지으며 다가와 의미에 대해 질문을 하고는 한다. 그렇게 내 나름의 애정표현을 느껴주고는 한다. 몸에 새겨진 타투를 내가 자신들을 그렇게 예쁘게 봐주고, 소중히 생각하고, 아끼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해준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감각적으로 느끼고 대화로 소통하고 있다. 이는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고 커다란 의미가 되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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