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여름생일
덕오 생일날이라 조강이 끝난 후, 곧장 어머니 전각으로 향했다. 승은을 내리려다가 그만둔, 그 밤 이후 저의 후궁인 덕오의 발끝도 보지 못했다. 후궁으로 손색없이 키워내겠다는 모친의 뜻이 있었고 그 밤 내내 울고불고 난리를 쳐대던 덕오를 이길 수도 없었다. 저의 후궁으로 여나인은 손색없어 그냥 두고, 덕오는 부족하다는 뜻인가. 어머니 전각으로 가는 내내 지난 몇 달간 일들에 서운한 마음이 앞서고, 덕오를 보고픈 마음에 애가 탔다. 설마 허니, 후궁으로 봉해지고 맞는 첫 생일을 지아비 없이 맞겠나 싶어 내도록 기다렸으나, 며칠을 기다려도 오라는 전갈이 없었다. 어젯밤에는 분해서 내내 잠도 이루지 못하다 새벽녘에 마음을 고쳐먹고, 생일 아침을 함께 하고 싶어 발거음을 재촉했다.
그동안 몇 번이고 덕오를 만나러 어머니 전각으로 갔으나 만나지 못했다. 번번이 궁에 없다 하니, 화가 나서 무예 사부와 산에 오르는 것을 금지시켰고, 덕오 사부 임백을 익위사로 불러들였다. 무사 임백은 선세자를 지키지 못한 마음의 빚이 컸고 충직하고 뛰어난 이였다. 임백이 아니었다면, 외가 담벼락에서 아이들 넷 모두 순식간에 도륙이 났을 것이다. 덕주를 그리 잃었지만, 고마운 이었고 장차 중책도 맡겨야 했으므로 관직도 없이 계속 덕오 곁에 그리 둘 수 없었다. 덕오는 서운했을 것이다.
덕오에게 마당 넓은 전각을 주고, 일반 궁인들 출입도 금하였다. 눈에 띄지 않고 전각 안에서 충분히 무예를 연마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세작일도 막고 싶었지만, 막지 못했다. ‘모두의 목숨이 바람 앞에 등불이라 일을 멈출 수 없다’는 덕오의 서신 한 장에 입을 다물었다. 글씨체 세로획마다 꼬리가 하늘로 날고 있었다. 흥분하여 감정을 가누지 못하고 써 보낸 것이라, 더는 어쩌지 못하고 ‘뜻대로 하라’는 답신만 주었다. 그래도 걱정이 되어 사람을 붙여 보니, 온 궐의 전각과 운종가를 쏘다니고 있었다. 키도 더 자라지 않아 다리도 짧은데, 그 다리로 온종일 나다니고 있어 마음이 아팠다.
덕오 눈은 포동알처럼 까맣게 빛나고, 깊고도 길어 총명해 보였다. 덕오 입술은 붉고 작아 작은 꽃잎 같았다. 그 입술로 시를 읊기도 하고 욕을 하기도 했다. 장터 주모처럼 욕을 할 때는 같이 있기가 부끄러운 적도 있었다. 그리 참하게 생겨서는, 어찌 그리 참담한 입을 가졌는지. 어머니는 모를 것이니, 아시기 전에 거친 입은 단속시켜야 하고.. 덕오 얼굴은 하얀 쌀가루를 뿌려 놓은 것 같고... 어머니에게 가는 내내 덕오 생각에 얼굴이 붉어져 괜히, 속에 찬 비단 주머니를 만지작거렸다. 비단 주머니 안에는 함께 낄 금가락지 한 쌍과 백옥 빛 삼작노리개를 넣었다. 유부녀임을 명심시키려, 삼작노리개에 앙증맞은 은장도를 덧달았는데 노상궁이 은장도 붙이는 것을 계속 말렸으나, 굳이 달라고 고집을 부렸다. 손가락 마디 크기로, 아주 작은데 못 달 것이 무엇이라고. 날 벼른 작은 은장도에 글씨까지 새기느라 공방에서 공을 많이 들였다 하므로, 따로 칭찬도 담뿍해주었다. 어머니에게 문안드리고 덕오를 찾았으나 궁에 없다 하여, 치미는 화를 참으며, 덕오 생일인 것을 아는가 물으니 생일이어서 특별히 출궁을 했다 하니, 기가 차서 다과상을 내리쳤다. 후궁이 되어 처음 맞는 생일인데 지아비의 하례를 기다리는 것이 도리 아니냐고 큰소리 내었더니, 모후께서 더욱 야단을 하셨다.
“집안 평안함은 지아비 행동거지에 달렸습니다.”
“편애하시는 심중을 그리, 드러내시면 안 됩니다.”
격앙된 어머니 목소리에
“덕오가, 제 생일 밥을 얻어먹기는 했습니까”
동문서답을 했다.
“어미가 그 아이 어찌 생각하는지 모르십니까. 제 생일에는 절에 가야 해서, 미역국이며 국수며 민어찜 올린 , 성찬을 미리 받고 출궁 했습니다.”
영흥사에 갔다 하니 더는 할 말이 없었다. 쌍생인 덕주의 생일이기도 하니, 위패가 있는 절에 간 것이다.
해마다 하는 일이어서, 더는 할 말도 없어
“덕오를 챙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머니” 새된 소리를 했다.
후궁의 예를 가르친다더니, 후궁 된 첫 생일에 지아비가 하례를 해주기 위해 이리 찾아다니는 것이 부군에
대한 예를 가르친 것이 맞는가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것을 겨우 참고 나가려는데, 모후의 잔소리가 날아왔다.
“동궁, 빈궁과 여나인에게 소홀하시면 안 됩니다.”
“소홀 한 적 없습니다. 언제 소홀했습니까 ” 큰소리로 대꾸하고는 급히 전각을 빠져나오는데 어머니 한숨
소리가 따라붙었다. 세손은 조반도 들지 않고 영흥사로 향했다.
세손이 덕오를 총애하여 기쁘기는 하나, 아들 홀로 애 태우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고역이고 걱정이었다. 선대왕 숙종께서 희빈 장 씨에게, 금상께서 시어머니 영빈에게, 지아비가 박상궁 빙애에게, 아들이 덕오에게 퍼붓는 애정은 피내림이었고 불같고 거침이 없었다. 덕오만은 그 여인들과 같은 숙명에 들지 않고, 무탈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훗날 궁을 떠나고 싶어 하는 덕오였지만, 혜빈이 직접 고른 아들의 후궁이었고, 아들의 마음을 전부 가져간 아이였다. 후궁이 되어 저를 지원해 줄 아이로 선택하였으나, 덕오만은 자유롭게 살게 해주고도 싶었다. 세손은 덕오 외에는 여인들에게 곁을 주지 않았다. 세손이 무사히 보위에 오르는 것이 먼저이니, 저를 돕는 덕오를 궁 안에 가두어 둘 수 없었고, 후사를 보는 일도 미룰 수 없는 일이었다.
혜빈의 최측근 윤상궁의 외종질 여나인은 인물이 아주 곱고 하는 짓이 여우 같은 아이라, 예민하고 다혈질인 세손을 잘 보필할 줄 알았더니, 정궁인 세손빈이나 여나인이나 세손 눈에는 그저 궁에 있는 제 여인일 뿐이었다. 관례를 치르고 합궁날이 정해지자, 덕오를 후궁으로 들이고 싶다 하였으나 지금 후궁을 들이는 것은 너무 빠르니 순리대로 하자며 아들을 다독였다. 하지만, 합궁 후에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대쪽 같은 성정의 덕오는 정궁에게서 원손을 본 이후에 승은을 받겠다며, 경춘전을 벌컥 뒤집어 놓고도 두루두루 제 할 일을 잘하고 다녔다. 무엇하나 이쁘지 않은 것이 없는 덕오였다. 세손과 덕오의 합궁이 정해진 그 밤에 일을 치루지 않고 방을 박차고 나왔으나 바로, 정 7품 전빈의 품계를 내렸다. 합궁이 미루어졌어도 세손은 덕오에게 내명부의 품계를 주고 싶어 했으나, 금상의 눈치를 살펴야 했고 혜빈의 눈과 귀가 되어 움직이는 덕오의 손발을 묶을 수도 없어, 본방 출신 궁인을 파격적으로 승진시킨 것으로 하여 승은 사실을 숨겼다. 또한, 여나인이 덕오에게 함부로 투심을 드러내지 않도록 단단히 훈계하였다. 여나인이 세손보다 나이가 세 살 많고, 왕손을 잉태할 자신감도 내보이고 있어, 이뻐하고 있지만 덕오에게 지나친 투심을 가지고 있었다. 샘이 많고 투심이 깊으면 본인도 옆에 있는 이도, 반드시 해를 입는다. 궁에서는 특히 더하여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투심은 눈을 멀게 하고, 샘이 많음은 옹졸하고 욕심이 많은 것이니, 타고난 천성이라도 조심 또 조심시켜야 했다. 문숙원 같은 조악한 인사는 경춘전에 있어서는 아니 되었다. 현재도 차후에도. 세손의 후사를 기다리고 있으나, 세손빈과 아들의 관계는 이미 틀어졌다. 세손빈의 친정 아비가 세손의 서형제들 모두에게 두루 공을 들이고 있으니, 역심이 의심되었고 세손이 세손빈을 믿지 못하는 지경이 되었다. 전각에 있는 궁인들 열에 아홉은 세작이라 덕오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다. 세손과 적이 되려는 빈궁의 친정 세력을 돌려세우려 며느리를 다독이고, 상왕만이 세손의 목숨줄이라 낮이고 밤이고 시아버지 행차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며 예를 다하였다. 하루 열두 번이라도 궁 밖에 행차하다 돌아오면 안부 문후를 여쭈었다. 머리 굵어 어미 품을 겉도는 아들이 서운했지만, 사사로운 감정 따위는 드러낼 수 조차 없는 것이 혜빈의 처지였다. 제 후궁을 찾으러 급히 방을 나가는 아들을 그저, 노려보기만 할 뿐.
영흥사에 오르는 길은 한여름 무더위로 힘이 들었지만, 산새들이 반겨주니 기분 좋게 산사로 들어섰다. 놀라게 해주려 했는데, 덕오가 보이지 않아 대웅전부터 절간 부엌까지 뒤졌다. 지켜보던 어린 동자승이 덕오 행적을 알려 주었다. 절에서 밤을 새웠단다. 신새벽에 불공을 올린 후, 밤새 만든 음식을 챙겨 강가로 향했다고 하니 조심히 강으로 향했다. 덕오가 한눈에 보였다. 멀리서 보아도 단아하고 어여뻐 덕오 이름을 불러 보려니 심장이 쿵쿵 거려 잠시 숨을 고르며, 무얼 하나 살폈다. 강에 발을 넣고 더위를 식히고 있겠거니 했더니, 제를 끝낸 음식들을 내려, 작은 나무배 두 척에 나눠 싣고 있었다. 여름에 핀 꽃이란 꽃은 모다 갖다 얹은 꽃 주먹밥에, 흰색 떡에도 꽃잎을 붙여 놓았다. 포도, 수박, 참외, 생선 전, 육전도 조금씩 배에 실었다. 옆에 있는 작은 배에도 육전과 육포, 식혜를 실었다. 덕주의 생일 제사를 지내고, 상에 올랐던 음식들이 강을 타고 저승에 잘 이르도록 온 공을 쏟고 있었다.
‘어쩌자고, 제 탄일에 제를 지내는가.’
지아비를 두고 망자와 생일상을 나누다니. 열이 뻗쳐서 덕오를 향해 막 뛰려는데, 범개가 큰돌이와 똑 닮은 개 두 마리와 함께 와서는, 돌에 묶여 있던 뱃줄을 풀기 시작했다. 작은 배에 실은 음식들은 큰돌이에게 보내는 음식이었다. 큰돌이와 똑같은 저 개들은 그때 미처, 젖을 떼지 못했던 강아지들이고. 어미를 다비했던 산을 향해 밤마다 짖고, 범개와 함께 산사로 올랐던 길을 기억해 툭하면 절이 있는 산으로 도망쳐서, 범개가 강아지들 잡으러 다닌다고 고생이 많았다고 했다. 강아지들 이름이 산돌이, 강돌이라고 했던가.
저로 인해 세상을 떠난 생명들이었다. 덕주도, 큰돌이도. 다리가 땅에 붙고, 입술도 달라붙어 둥근 박 같이 생긴 배 두 척이 강을 따라 흐르는 것을 그저 지켜만 보았다. 영가를 위해 떠나는 작은 배 두 척을 향해, 지근에서 호위하던 익위사들이 일제히 예를 갖췄다. 그 누구도 임오년을 잊지 않고 있었다.
폐세자가 일물에 갇힌 지 다섯째 되는 날, 살수 다섯이 세손의 외가 담벼락 위로 뛰어올랐다.
외가를 벗어나지 말라는 할아버지의 엄명이 있었지만, 두려움과 답답함에 숨을 쉴 수가 없어 방 안에 있는 것이 너무도 힘든 날이었다. 방을 나오니, 덕오 친부가 필요한 것이 있는지 살펴 물었다. 외가 청지기였던 덕오 친부는, 궁에서 쫓겨온 왕실 식구들과 궁인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온 힘을 다했다. 청지기 하는 일이 빈틈없고 인물 좋아, 상궁들 칭찬이 자자했다. 덕오, 덕주, 범개, 큰돌이가 감나무 아래 모여 있었다. 또래 아이들을 보니 살 것 같았고, 덕오가 있어 함께 어울리고 싶었다. 제법 친해진 큰돌이의 등을 쓰다 듬었고, 유쾌하고 배포 큰 범개는 볼수록 마음에 들었다. 범개는 덕주를 좋아해서 매일 세손의 외가에 와서 놀았다. 어려서 고열을 앓다 말을 잃었다는 덕주는 따뜻한 성정에, 그림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예쁜 아이였다. 도성 내 기생치고 덕오 아비에게 연심 품지 않은 이 가 없다더니, 아비를 닮았는지 덕오네 형제들은 모두 인물이 출중했다.
아이들과 얘기를 나누는 세손의 목소리를 알아챈, 괴한들이 담을 타고 마당을 덮쳤다. 순간, 덕오가 세손을 감나무 안 쪽으로 밀어 칼을 피하게 했으나, 감나무 안쪽으로 또 다른 살수가 칼을 내리쳤다. ‘덕오가 죽는구나’ 느낀 순간, 덕주 목에서 피가 솟구쳤다. 덕주 피를 본 큰돌이가 미쳐 날뛰며 살수들을 마구잡이로 물어뜯으며 찢어발겼다. 산군 호랑이로 변한 큰돌이였지만, 무예 출중한 놈들의 칼을 피하지 못했고, 죽어가면서도 물고 있던 살수 놈 다리를 놓지 않았다. 다리를 물렸던 놈은 큰돌이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자결했다. 큰돌이가 날뛰던 중 살수 한 명의 복면이 찢어졌고, 덕오가 그놈의 눈을 봤다. 모두 죽는구나 하는 순간 임백이 담을 뛰어넘어 들어와, 아이들을 구했다. 폐세자의 익위사였던 임백은, 제 주군에게 실망하여 병든 어미를 핑계로 군복을 벗은 이였다. 광인이었으나 무인을 아꼈던 폐세자가 떠나는 임백에게 손수 은자를 내어주며 모친 봉양 잘하고 돌아오라 명 했으나, 임백은 두 번 다시 궐에 들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궐문을 나섰다. 하지만, 휘령전에서 일이 터졌고 사태가 급박해져 군복을 벗은 몸으로 세손의 거처가 있는 북촌으로 향했다. 며칠째 북촌에 머물며 자는 것도 먹는 것도 마다하며, 위종사들이 지키는 세손 거처를 맴돌았다. 그러다, 살수가 집 안으로 드는 것을 보았고 바로 뒤따랐으나, 놈들이 정예군 출신인지 몸이 빠르고, 칼이 정확했다. 검계 따위가 아니었다. 한 놈이 세손을 향해 칼을 내리쳤으나, 세손 곁에 선 아이가 재빠르게 감나무 뒤로 세손을 밀쳐 넣었다. 세손을 도운 아이에게 칼을 치려는 놈에게 임백이 바로, 단도를 던졌으나, 살수 놈이 단도를 맞고도 칼을 들어 아이를 다시 쳤다. 순간이었다. 옷고름에 그림을 가득 그려놓은 아이가 밀치고 들어 대신 칼을 맞았다. 칼 맞은 아이 목이 두 동강이로 땅바닥에 나뒹굴지 않았음이 다행일 만큼 깊이 그은 칼이었다.
상께서 금군을 보내 세손을 겹으로 호위하였고, 죽은 아이와 충견에게 종신토록 예를 다하라는 명이 내려져, 덕주와 큰돌이 위패는 산사에 함께 봉안되었다. 폐세자도 휘령전 일물 안에서 그리 가셨다. 임백은 그날 이후, 세손 곁을 떠나지 않았다. 세손 목숨이 바람 앞에 등불이라, 말직 벼슬도 없이 혜빈궁에 드나들며 덕오를 단련시키며 혜빈과 세손을 지켰고, 다시 동궁의 익위사가 되었다. 폐세자의 아드님을 지켜드리고 싶었다. 궁이 제 묘터가 될지라도.
임오년 여름에 살아남은 아이들은 만신창이 된 삶을 정면에서 마주 보며, 강인하게 성장하고 있었고, 서로를 보듬으며 어른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리 성장해 가는 아이들을 보노라면 임백은 가끔 목젖이 아팠다. 세손도, 덕오도, 범개도, 강아지들도 너무 장하여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