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임오, 그 여름을 넘어]_#5. 범개

#5 범개

by 운울재


덕오다. 앳된 도령 모습이나, 분명 덕오였다. 새침하고 단아한 모습은 어디 가고 비뚤어진 갓에, 삿대질을 해대며 시정잡배 행세로 난전에 앉은 상인과 서로 언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흥정 중이던 물건을 훼방 놓았던 것 같은데 싸움박질까지 할 태세라, 안가로 향하던 걸음을 덕오에게로 돌리는 찰나, 상인과 흥정 중이었던 놈이 갑자기 덕오 얼굴을 내려쳤다.

“임-백”.

급히 호위를 부르며 덕오에게로 뛰었다. 우익위는 제 이름자 호명이 끝나기도 전에 덕오를 친 놈을 잡아 두 손을 꺾어 놓았다. 그러자 덕오가 저를 친 놈 허벅지 안쪽 급소를 걷어찬 후, 곧장 난전 상인을 향해 주먹을 날리며 서러 뒤엉켜 시장 바닥을 뒹굴며 난장판을 만들었다. 싸움을 말리느라 땅바닥을 뒹굴고 있는 덕오를 떼어 안자, 호위별감이 맞붙은 상인 놈을 바로 제압했다. 싸움을 말리느라 덥석 안은 덕오 체취에 정신이 아찔해져 겨우 몸을 지탱하고 섰는데, 덕오는 품에 든 채로, 상인 놈에게 발길질을 날렸다. 맞은 놈 코에서 피가 터졌으나 발질을 멈추질 않아, 덜렁 덕오를 둘러멨다.

흥분한 덕오가 내리라고 계속 고함을 쳐댔으나 둘러멘 체, 범개네 비단전으로 향했다.

덕오를 진정시켜야 했고, 세손도 제 심장이 터질 것 같아 물이라도 들이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내려주십시오”

“진정하거라 덕오야”

“지게에 얹힌 저 아이 데려가야 합니다. 언능, 놓아주십시오”

도포자락 걸쳤다고 제가 사내인지 알고, 연신 거친 목소리를 냈다.

“주먹다짐 않는다고 약조하면, 내려주마”

“약조하겠습니다”

금세 약조하여 품에 든 걸 내렸더니, 휑하니 서운하였다.

“범개네로 가자”

“잠시만요. 지게에 얹힌 저 아이 좀 보십시오.”

“아비라는 작자가 어린 제 여식을 팔겠다고 저리 지게에 올려놓고 호객을 하고 있었습니다요”

‘다~요’덕오 어투에 기가 찼으나, 이러고 다니면서 시전 동향을 모아 어머니에게 고했구나 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렸다.

“장사치가 아니었더냐”

“아비랍니다”

“딸 팔러 나온 아비랍니다”

격앙된 목에 핏줄이 올랐다. 차갑고 차분한 성정은 어디 두고 이리도 불같은 노여움을 표하는가.

“알았다. 알았으니, 저 아이 데려 가자”

“그러니, 제발 진정하거라”

덕오를 달래느라 손을 맞잡았더니, 부들거렸던 세손 마음이 가라앉았다.

아기나인 때부터 수년간 호신술을 익히고 있음에도, 무인도 아닌 이에게 가격 당하는 모습을 목도하고 나니, 심장에 경련이 일었다. 무예에 진전이 없어도 수련을 등한히 하면 안 될 것이다. 몸치여도 발길질은 제법 야무지지 않았던가. 급소를 맞은 놈도 성치 않을 것이다. 생각이 만 가지로 뻗쳤다. 영견을 내어 덕오 얼굴을 닦아 주고는 손을 단단히 붙잡고 마주 보게 한 후,

‘내 원통하고, 분하고 서러우니, 너 아니고는 누가 나를 위로할까. 부디, 무탈하거라.’

눈빛으로 달래니 알아 들었는지 잠잠해졌다.


덕오를 쳤던 놈 얼굴을 정면에서 후려쳤다. 그냥 돌아선다면 앙금이 남아 사사로이 처단할 것 같았다. 저놈들 또한 저의 백성이니 법의 처분을 받도록 해야 했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몇 번이고 숨을 골랐다.

인신매매를 하려 한 놈들 모두를 한성부로 넘기라 지시한 후, 지게에 얹혔던 아이를 내려 함께 범개네 점포로 갔다. 범개 아버지 김우흠은 명문가의 서자로, 북천에 본가를 낼 만큼 큰 부를 이룬 상인이었다. 그 아비를 따라 범개도 시전 행수 일을 배우고 있었다. 배포 크고 영민하니 장차 대방이 되어 시전을 장악할 것이다.

정신없는 난전가를 벗어나자 한눈에 질 좋은 비단이 걸린 범개네 선전이 보였다. 치고받아 엉망인 덕오가 제 처지는 잊고, 도포자락에서 작은 엿동강을 꺼내 아이 입에 물리며 다독이며 걸었다.

아이가 두 눈 가득 두려움을 드러냈으나, 엿은 얼른 받아먹었다.

“이름이 무엇이니”

“무종이라 합니다.”

답하는 아이 목소리가 제법 똘망하였다. 기생집이나 색주가에 값나게 팔려했는지, 머리를 이쁘게 빗겨 놓았다.

“우선은 너를 비단전 행수에게 맡길 생각인데, 너 생각은 어때? 집으로 가고 싶으니”

“집에 가면 다시 팔려 갑니다”

풀 죽은 소리로 아이가 답했다.

“오늘 저를 팔아야 노름빚을 갚을 수 있다 했습니다.”

“미친 아비로구나”

덕오 목에 노기가 묻었다.

“집에 어미는 있고?”

“예. 동생들도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리”

“나 사실, 여인이다.”

놀라 올려다보는 이쁜 눈을 향해 씩- 웃고는

“나 믿고, 우선 상단에서 있을 수 있겠니? 살 길을 찾아보자”

“예. 나리. 아니 아기씨. ”

아이가 기쁜지 큰 목소리로 답했다.


세손을 알아본 범개가 뛰어나와 맞아 주며 덕오 모양새를 보고도 크게 놀라지도 않았다. 일하는 이를 불러 물수건을 가져오라 이르고는, 덕오가 이런 차림새로 수시로 드나든다 하였다. 점포 안쪽 통로로 오가며 시전 정보를 귀동냥하기도 하고, 쪽방에 안아 한 시진 이상 흥정하는 얘기들을 듣고 간다고도 하였다. 요사이는 여인태가 부쩍 나 남장을 하지 않으면 나다닐 수 없어 이러고 다닌다며, 부어 멍든 덕오 얼굴을 보며 지난 얘기들을 들려주는 범개를 가만히 보았다. 지난여름 덕오생일 이후 처음 보았으니, 하고자 하는 얘기를 있을 것이다.

얼마 전, 관례를 치른 범개의 자를 불렀다.


“부회”

“하고 싶은 얘기가 있음을 안다. 생일날 일로, 서운하더냐”

답지 않게 범개가 말을 아끼고 있어, 비단전 안채에 앉은 장정 둘이서 다과상에 놓인 감주만 들이키고 있었다.


세손 든 소식을 들은 김우흠이 급히 들어와 세손에게 예를 갖췄다. 경상의 큰손 김우흠은 덕오아버지를 흠모하였고, 임오년에 아이들이 살수들과 엮인 일로 세손을 깊이 돕고 있었다. 어린 아들이 덕주를 좋아하여 각시 삼을 것이라는 말을 떠들고 다닌다 하여, 성윤 어른을 찾아가 사죄를 올렸다. 세도가의 청지기로 들어 일신을 의탁하고 있으나, 사족이었고 언제든 상단으로 돌아와 거물이 될 수 있는 인물이었다.

큰 재물 모은 이들 중에 가난한 양반가의 여식과 혼인을 성사시키고자 애쓰다, 관아로 끌려다 치도곤을 당한 이가 적잖은 즈음이었다. 철없는 어린 아들이 관아로 끌려가 고신 받을 것이 염려되었다. 반상의 법도가 엄연한 조선에서 양반을 능욕하지 않았는가. 사족의 딸이 말을 못 한다 하여 중인과 혼사 맺는 경우는 없었다.


‘아이들이 성례를 치를 나이에도 서로 좋다고 한다면, 나는 혼서지를 받을 것이네.

우리 아이 흠결을 알고도 그리 하겠는가’


사돈으로 예우받고, 울었다. 경강상인으로 산전수전 다 겪고 시전 거상이 된 김우흠이 엎어져 꺼이꺼이 소리 내어 울었다. 내자를 잃고도 참았던 울음이 한여름 폭우 속 봇물처럼 터졌고, 성윤은 그저 긴 울음을 들어주었다. 서자라 천시받았고, 돈에 미쳤다고 천대받았다. 사족이 주인인 땅에서 상민이 인간이던가. 그니 앞에서 오롯이 사람이 되었다. 성윤의 집안 누구도 서얼 범개를 홀대하지 않았고, 덕주 또한 김우흠에게 귀한 며느리로 예우받았다. 성윤은 강단과 의리, 지략과 품성을 갖춘 양반 출신 장사치였다. 인물 출중하고 훤칠하여 가는 곳마다 여인네들이 술렁거렸지만, 돈 부리는 것 외에는 관심이 없던 이였다. 첫 부인과 사별 후 맞은 두 번째로 맞은 정실과는 유독 금슬이 좋았었다. 정을 담뿍 쏟은 이를 열병으로 잃은 후, 마음을 잡지 못하고 헛껍데기 마냥 살았다. 저 좋다는 여인네들 다 어찌하고 저러누. 안타까운 소리들이 연잇다 세 번째 정실을 맞았다. 가난한 집 노처녀였다. 장성한 자식들이 많은 이에게 온 고마운 젊은 내자에게, 성윤은 무심하였다. 그즈음, 동업하던 이가 나랏돈을 유용해 일을 벌이다 실패하고는, 제 식솔들만 데리고 야반도주하였다. 죄는 성윤이 받았다. 토굴 세 개는 숨겨야 살아남는 것이 상도의 세계였으나, 살고자 하는 의지를 잃은 성윤은 토끼굴이 어디는지도 잊어, 항소하지 않고 죄를 받으려 하였으나, 세도가의 첩이었던 누이와 큰딸의 헌신으로, 겨우 식솔들 생계를 이었다. 그리 정신을 놓은 듯한 세월을 지내다, 큰딸이 낙성대감의 후실로 든 이후, 마음을 잡고 명문대가의 청지기 생활을 시작하였다. 많이 이들이 성윤을 돕고자 했으나, 그저 혜빈 사가의 청지기로 머물렀고, 임오년에 여식을 잃는 참변을 당했다. 성윤은 왕세손의 외가 청지기 생활을 한 것이다.


왕세손은 보위를 잇기도 전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으나, 경상의 큰손 김우흠은 혼신의 힘을 다해 세손을 도왔다. 토굴로서의 방비가 아니었다. 제 아들 목숨이 떨어질 뻔한 일이었고, 며느리 될 아이의 목숨을 앗아간 놈들을 용서할 수 없었다. 덕주는 저의 한을 씻어 줄 반가의 여식이었고, 어미 잃은 아들에게 위로가 된 아이였다. 그런 아이를 잃었다. 김우흠의 남은 생을 걸고 놈들을 찾아 단죄할 것이다.


그날, 성윤의 여식 덕오는 혼절하여 열흘이 넘도록 일어나질 못했고 범개도 혼절했다 깨어나 울기를 반복했다. 열한 살 아이, 세손만이 의연했다. 성윤에게 울며 사죄 후, 매일 두 아이들을 챙겼다. 큰돌이의 강아지들도 안아 어루만졌다. 그리 며칠을 지내다 왕명이 있어 입궁하였고, 그날로 동궁이 되었다. 하늘이 내린 왕재였다. 세손은 천의 명을 살려, 백의 업보를 갚을 임금이 될 것이다.


세손을 돕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중전을 등에 업은 장동김씨 세력들이나 문숙원의 오라비 문별감을 등에 업은 이들이 시전 독점권을 대가로 장사치의 골을 빼갔다. 이문이 남으면, 기껏이 내어주는 것이 상인의 섭리였다. 세손이 보위를 무사히 잇는다면 장사치로도 손해 볼 일이 없었다. 보위를 잇도록 음으로 양으로 도왔다.

명민한 세손은 물산의 흐름이 돈을 일으키는 이치를 깨치고 있었다. 하여, 각 지방의 물자들을 어찌 옮겨 이문을 남기는지, 부패한 관리들의 행태는 어떤지 등 세상살이 무엇 하나 허투루 듣지 않았다. 잠행을 나와 뵐 때마다, 시전과 난전의 동향, 각 지역별 대상들과 보부상들의 사정을 성심을 다해 알렸다. 안가로 찾아뵙던 귀한 세손이 비단전에 몸소 들었는데 아들과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김우흠은 세손에게 예만 올린 후 곧장 방을 나갔다. 조용히 방문이 닫히자, 범개가 가슴속에 담아 두었던 덕주 이야기를 꺼냈다. 청국에서 상단이 올 때마다 , 값비싼 물목과 함께 조선에 없는 각종 주전부리들도 함께 왔다. 도방이 어린 자기 아들 먹이려 귀한 과자며 사탕을 따로이 부탁한 것이었다. 먹성 좋은 범개라 늘, 주전부리를 주머니에 가지고 다녔고, 덕주네가 북촌으로 온 이후로는 덕주 것도 챙겨 날랐다. 한 번은 기막힌 맛을 내는 사탕이 들어와, 덕주 입에 넣었다. 그냥 주면 덕오에게 가져다 줄 터이니, 부러 입에 넣어 주었는데, 덕오가 뒷마당가로 나오자마자 제 입에 든 것을 꺼내어 덕오 입에 쏙 넣었다. 한참을 물고 있었던 사탕이 온전한 모양 그대로 덕오 입으로 들어갔다. 녹이지 않은 모양이었다. 입에 든 것을 내주는 덕주나, 그걸 또 받아먹는 덕오 모두에게 범개는 기함을 했더랬다. 그리 아껴 제 목숨도 내주었는데, 생일 제사를 막은 세손에게 서운함이 깊었다.


“부회, 덕오도 그리하였다. 아는가 ”눈가에 이슬이 맺힌 채, 세손이 말을 이었다. 사가 청지기의 소문난 여아들이 궁금했던 어머니는 눈여겨본 덕오를 호되게 시험하였다. 호랑이 같은 큰돌이에게서 저를 구했던 여자아이가 방으로 들어와 기뻤다. 말씀 없었으나, 어머니의 뜻을 바로 알 수 있었다. 부러 외가에 오셨구나. 궁으로 부르지 않고. 어머니의 시험을 통과한다면, 궁으로 들일 것이다. 첫눈에 마음에 쏙 드는 아이였으나, 시험이 계속되는 동안 덕오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계속 살폈다. 강학청에서 답을 얻지 못하고 호조까지 찾아가 산학교수의 도움으로 풀었던 문제가 주어졌다. 얼마 전, 어머니에게 힘들었다고 응석 부렸던 문제였다. 둘째 오라비가 공부에 도움을 준다고 들었는데, 배워서 풀고 있는 게 아니었다. 풀이가 달랐다. 조막 막 한 손에 강한 서체로 집중하여 풀었다. 샘이 나서, 방을 나가는 덕오를 바로 뒤따랐다. 누구에게 사사하였는지, 얼마간이나 공부한 것인지 물어보려 한 것인데, 안채를 벗어나자마자 기다리고 있은 듯한 이가 오더니, 찬합 보자기를 바로 낚아채고는, 휑 가버렸다. 서모 인 듯했다. 긴 시간, 수고했노라 짧은 다독임도 한 마디 없이, 제 것 인양 강탈하여 갔다. 어머니가 덕오에게 내려준 선물이었다. 놀란 세손이 벽 뒤에 붙었다. 하례품을 뺏었긴 그날의 덕오를 잊을 수 없었다. 하얗고 작은 주먹을 꽉 쥐고 두 눈에 힘을 준 채 그대로 굳었다. 잔바람이라도 한 점 인다면 저 큰 눈에서 물이 터져 나올 것이다. 곁으로 가서 위로할 수 없었다. 아는 척을 한다면 평생 덕오 곁에 머물 수 없음을 알았다. 저와 같은 성정을 가진 아이였다. 벽에 그대로 붙어 있어야 할지, 돌아서 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였는데, 팔랑팔랑 덕주가 와서는 소매로 쓰윽 덕오 눈가를 닦아 주고는 씩 웃었다. 덕오가 따라 웃고는 제 치마춤에서 영견을 꺼내었다. 최 상궁이 다과상에 올랐던 음식들을 싸 준 것이었다. 시험을 치르는 내내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덕오였다. 긴 시간 시험이 있었으니, 목이 마르고 배가 고팠을 터인데 과즐과 말린 과일 전부를 덕주에게 주었다. 덕주가 입을 우물거리며 같이 먹고자 했으나, 안에서 먹고 남은 것이라며 모두 덕주에게 먹였다. 쌍생 동생 앞머리를 넘겨주며 어여 먹으라 재촉하였다. 산학을 저보다 몇 곱절이나 잘하여 샘이나서 쫓아왔는데, 제 여인이 될 아이의 심성을 그저 지켜만 보았다. 야멸차게 생겨서는 어찌 저리도 다 내어주누. 걱정이 일면서도 흐뭇한 마음 그득한 날이었다.


금주령이 내려졌으나, 주막마다 숨겨놓은 술들은 넘쳐나니, 비단전 안채로 술동이가 끝도 없이 날라졌다. 이 밤사 한을 풀어야 하는 젊은 장정 둘이 술을 풀어 고수레를 올리나니, 산자의 터에 사는 이, 예서 숨 잇고자 하니 온전한 삶을 살펴 주소서. 비나이다. 비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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