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 속의 작은 지붕, 엄마가 남긴 부재의 대비책

항상 가방에 들어 있던 우산

by 작가 희와이

초등학교 입학식 날부터였다. 내 책가방 속에는 사계절 내내 묵직한 접이식 우산 하나가 요지부동 자리를 잡고 있었다. 햇살이 눈부시게 내리쬐는 봄날에도, 마른 낙엽이 구르는 가을날에도 우산은 빠지는 법이 없었다.


어린 마음에는 그 무게가 못내 억울했다. "엄마, 오늘 기상청에서 비 안 온대. 하늘 봐, 이렇게 맑은데 왜 가져가야 해?" 투덜거리는 내게 엄마는 늘 짧고 단호하게 답하셨다. "그냥 가져가라." 이유를 알 수 없는 고집이라 생각하며, 나는 매일 아침 불만이 가득 담긴 우산을 등에 지고 학교로 향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예고 없던 소나기가 학교 운동장을 적셨다. 수업을 마치고 나온 교문 앞은 평소와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알록달록한 우산을 든 엄마들이 저마다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길게 줄을 서 있었다. 동생의 유모차를 끌고 나온 아주머니, 손자와 이웃집 아이까지 챙기러 나온 할머니... 교문 앞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어른들의 온기로 북적였다.


그 풍경 속에서 우산도 없고, 마중 나올 어른도 없는 아이들은 금세 두 부류로 나뉘었다. 넉살 좋게 친구의 우산 속으로 파고드는 아이들, 혹은 체념한 듯 가방을 머리에 얹고 빗속으로 뛰어드는 아이들.


하지만 나는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다. 나는 조용히 가방 지퍼를 열어 눅눅한 먼지가 묻은 우산을 꺼내 펴는 아이였다. 그제야 비로소 깨달았다. 엄마는 알고 계셨던 것이다. 갑작스러운 비가 내릴 때, 당장 회사 업무를 뒤로하고 나를 데리러 올 수 없는 당신의 상황을. 그리고 당신의 딸이 남의 우산 속에 몸을 구겨 넣을 만큼 넉살 좋은 성격이 못 된다는 것을. 비를 맞으며 처량하게 걸어올 아이라는 것을 말이다.


가방 속 우산은 엄마가 내게 줄 수 있었던 가장 현실적인 '지붕'이었다. 엄마의 부재가 나의 결핍이 되지 않도록, 엄마는 미리 준비물을 챙겨주는 것으로 당신의 자리를 대신하셨다.


그런 환경은 나를 일찍 철들게 했다. 당장 전화를 걸어 "준비물을 가져다 달라"라고 떼를 쓸 어른이 없다는 사실을 몸소 체득하며, 나는 스스로를 책임지는 법을 배웠다. 알림장을 두 번씩 확인하고, 부모님이 챙기기 전에 필요한 것을 먼저 말하는 아이. 나는 그렇게 '똑부러진 아이'라는 칭찬 뒤에, '나 아니면 챙겨줄 사람이 없다'는 서늘한 자각을 숨기며 자랐다.


<그때의 나에게, 그리고 언젠가 만날 나의 아이에게 전하는 편지>

먼 훗날 내가 너에게 무언가를 미리 챙기라고 성가시게 군다면, 그건 너를 구속하고 싶어서가 아니란다. 그것은 혹시라도 내가 네 곁에 있어 주지 못할 순간을 위한, 나의 뒤늦은 고백이자 대비책이란다.

세상에는 예고 없이 내리는 소나기가 참 많단다. 그때마다 내가 너의 머리 위로 우산을 받쳐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삶은 때때로 우리를 뜻하지 않은 자리에 홀로 세워두곤 하지.

내가 네 가방 속에 넣어주는 우산은 "엄마가 없어도 너는 안전해야 한다"는 간절한 기도와 같다.
네가 누군가의 호의를 빌리지 않아도, 빗속에서 홀로 젖지 않고 당당히 걸어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힘을 길러주고 싶은 나의 서툰 사랑이란다.

그리고 어린 시절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네 가방이 무거웠던 건 짐이 많아서가 아니라, 너를 혼자 두지 않으려는 엄마의 마음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라고. 그러니 혼자 우산을 펴는 그 순간을 외로워하지 말라고.
너는 이미 스스로를 지킬 줄 아는, 누구보다 단단하고 빛나는 어른으로 자라고 있으니까.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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