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엄마가 학예회에 왔으면 좋겠어’
초등학교 내내, 매년 어느 가을날 저녁이면 저녁 식탁에서 나는 늘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11월 25일에 학예회 한대. 우리 반은 단체 음악 줄넘기 하기로 했어.”
그 말을 하자마자 집 안에는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그날 월말이라 엄마가 연차를 못 내는데… 당신은?”
“나도 그날은 봐야 할 게 있을 것 같고…”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늘 그랬듯 가장 먼저 말을 꺼냈다.
“근데 엄마, 아빠 안 와도 돼. 별거 아니야. 괜찮아.”
참 웃긴 일이다. 분명 안 와도 된다고 말해놓고,
막상 발표회 날 무대에 올라가면 나는 나도 모르게 관중석을 훑고 있었다.
못 온다는 것도 알고, 내가 먼저 괜찮다고 말해놓고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그래서인지 발표회는 내게 늘 ‘큰 행사’는 아니었다.
기대하면 실망할까 봐, 아예 중요하지 않은 일처럼 만들어버렸던 것 같다.
초등학교 6학년 때도 똑같은 듯, 조금은 다른 상황이 있었다.
“이번에도 못 올 거지?”
그 말을 꺼내는 순간 눈물이 먼저 차올랐다. 왜 우는지도 정확히 몰랐다.
티 안 내려고 애썼지만 어린 내가 할 수 있는 연기는 거기까지였다.
눈물이 고인 딸을 보며 엄마가 아무렇지 않을 수 있었을까.
아마 그 눈물은 ‘서운해’라는 말 대신, ‘와줬으면 좋겠어’라는 마음 대신 참고 있던 감정이 터져 나온 거였을 것이다.
학교 참관 수업이나 학예회를 앞두고 부모님이 누가 가니, 못 가니 이야기하는 순간들.
서로 눈치를 보고, 나까지 괜히 미안해지는 공기.
어린 나였지만 나는 그 분위기를 다 느끼고 있었다.
나에게 단호하게 “못 간다”라고 말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회사를 마음대로 뺄 수도 없던 부모님.
그래서 나는 ‘정답’을 선택했다.
내 마음이 어떤지는 잠시 접어두고 모두가 덜 아플 것 같은 말.
“난 괜찮아.” 그 말이 정답이라고 믿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그날 결국 아빠는 무대 위의 나를 보러 와주셨다.
아마 바쁜 와중에 눈치도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내 눈물이, 내가 얼마나 그 자리에 부모님이 있기를 바랐는지가 그 모든 것보다 더 중요했을지도 모른다. 무대 위에서 늘 그랬듯 관중석을 훑다가 사람들 사이로 보이던 아빠 얼굴.
지금도 선명하다. 괜히 기분이 좋았고, 괜히 머쓱했고,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좋았다.
이런 어린 시절을 지나와서 그런지 나는 조금 더 자주 “괜찮아”를 먼저 말하는 아이가 되었다.
누가 묻지 않아도, 설명하지 않아도, 기대하지 않아도 되는 아이.
마음 한쪽에는 바라던 것이 분명 있었지만 그 마음을 꺼내는 대신 괜찮다는 말로 덮는 게 더 익숙해졌다.
그게 어른을 덜 곤란하게 만들고, 분위기를 덜 무겁게 만들고, 모두를 조금씩 덜 아프게 하는 방법이라고 믿었으니까.
아마 그때의 나는 사랑을 의심해서가 아니라, 나 때문에 엄마와 아빠의 사랑이 왜곡되어 버릴까 봐 조심했던 것 같다. 부모님이 바쁘다는 걸 알고 있었고, 그 바쁨이 나 때문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울지 않는 쪽을, 기대하지 않는 쪽을, 괜찮다고 말하는 쪽을 선택했다.
아이였지만 나는 이미 ‘상황을 이해하는 쪽’에 서 있었다.
시간이 지나 어른이 되고, 회사 생활을 해보니 그때의 엄마 마음이 이제야 조금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는 몰랐다. 내가 괜찮다고 말할 때마다 엄마는 나보다 더 아팠을지도 모른다는 걸,
내가 울음을 삼킬 때마다 엄마는 마음을 더 깊이 삼키고 있었다는 걸.
그래서 이제야, 이 글의 끝에서야, 엄마에게 따로 말을 걸어보고 싶어졌다.
<그때의 나를 누구보다 사랑했던, 치열하게 살아온 엄마께 드리는 편지>
엄마.
학예회에 오라는 말 한마디를 제대로 하지 못해 울던 딸을 보던
엄마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지,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아요.
차라리 떼를 쓰고 억지라도 부렸다면 엄마 마음이 덜 아프지는 않았을까, 그런 생각도 해봐요.
어른이 되어 회사 생활을 하고 ‘엄마’라는 이름을 떠올려 보니, 그 답답한 마음이 이제는 선명해져요.
당장 회사를 그만둘 수도 없고, 한두 번은 괜찮아도 몇 번씩 자식 때문에
연차를 쓰거나 외근을 만든다는 게 얼마나 눈치 보이는 일인지도 알 것 같아요.
아이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회사에는 죄송한 마음이 남아서
엄마는 매번 어디에도 완전히 서지 못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도 엄마는 그 무게를 한 번도 딸에게 얹지 않았죠.
바쁘다는 말 대신 “괜찮지?”를 먼저 물어봐 주고, 못 가는 날에도 미안하다는 말을 더 많이 해줬어요.
그래서 저는 사랑을 의심하는 아이가 아니라, 사랑을 지키려는 아이로 자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날 학예회에 못 온 날들보다,
와주지 못해 마음 아파하던 엄마의 마음이 저는 더 오래 기억에 남아요.
괜찮다고 말하던 아이를 끝까지 괜찮지 않게 두지 않으려 했던
그 마음 덕분에 저는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요.
치열하게 살아온 엄마 덕분에 기다림이 외로움이 아니라
사랑의 다른 이름일 수도 있다는 걸 배웠어요.
그러니까 엄마,
혹시 아직도 미안한 마음이 남아 있다면 이제는 조금 내려놔도 돼요.
그날의 저는 엄마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사랑받고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