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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지안 Aug 18. 2020

굳이 꺼내고 싶지 않았던 기억들

2회차: 고통스러웠던 어린 시절 털어놓기

오래된 심리상담센터 건물의 엘리베이터를 타자마자 7층을 누른다. '엘리베이터도 너무 오래돼 보이는데.'라는 생각을 하는 동안 7층에 도착했다.


숫자 7이 보이는 순간, 엘리베이터가 아래로 철렁한다. 내 가슴도 덩달아 철렁 내려앉는다.

'안전하긴 한 걸까?'

순식간에 두려움이 온몸을 감싼다. 


'언제까지 이렇게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두려움을 느끼면서 살아야 하나?'


심리상담센터의 벨을 누르고 기다리는 젊은 상담사가 복도에서 걸어온다.

"안녕하세요! 그냥 들어가셔도 돼요."

라고 웃으며 말한다. 철렁했던 가슴이 차차 진정된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지난주에 만났던 머리가 희끗희끗한 상담사가 인사를 한다.


상담사: 어서 오세요. 지난 한 주는 어떠셨어요?

나: 네. 괜찮았어요. 지난주에 주셨던 문장완성검사지 여기 있어요.

나는 숙제를 다 해온 당당한 학생처럼 검사지를 내밀었다.


상담사: 네. 잘하셨어요. 다 적어오셨네요. 가족 구성원의 장단점과 나와의 관계도 적어오셨어요?

나: 네. 뒷면에 적어왔어요.

상담사: 아하, 여기 있네요. 아, 오늘 시작하기 전에 하나 말씀드릴게요. TCI검사라고 해서 타고난 기질, 그리고 성격을 검사하는 게 있는데 혹시 오늘 시간이 되시면 상담 끝나고 하고 가실 수 있으세요? 오늘 시간이 안되시면 다음번에 해도 되고요. 편하게 하셔도 돼요.

나: 네. 오늘 하고 갈게요.

상담사: 네. 그래요. 오늘 가족에 대해 적어오셨는데, 유치원 때 기억나는 게 있으세요? 최초의 기억 같은 거요.

나: 네. 제가 아마 4살인가 5살인가, 동생이 태어나기 전이였어요. 아빠가 집에 들어오지 않아서 엄마랑 같이 찾으러 나갔는데 술에 취해서 길에 누워있는 아빠를 발견한 거예요. 그때 제가 엄청 크게 울어서 많이 시끄러웠던 모양이에요. 시간은 아마 새벽 한 두시가 된 거 같고. 아마 조용히 하라는 의미에서 동네에 어떤 분이 박카스병 같은 음료수 병을 줬는데 그게 바닥에 떨어져서 깨졌어요. 그러니까 제가 더 크게 울었어요. 그런데 병이 깨진 것은 제가 직접 본 것을 기억한다기 보단, 나중에 엄마가 얘기한 것을 기억하는 거 같아요. 그 당시를 기억하는 건 아닌 거 같아요.

상담사: 그랬군요. 세상에. 그 어린 나이에. 기억 속에 그 아이를 한번 바라봐주세요. 그 아이는 왜 그렇게 크게 운 것 같으세요?

나: 무서웠지 않았을까요? 어두운 밤에 사람이 길에 누워있는 걸 봤으니. 살아있는 건지 아닌지도 구분이 안될 거고. 무서워서 크게 울었는데, 유리병이 깨지면서 사방으로 유리파편이 튀는 것도 무서웠을 거예요. (혹시 그래서 지금도 유리가 깨지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 걸까요?)

상담사: 그래요. 당연히 무서웠을 거예요. 거기다 유리병까지 깨졌으니. 집에서부터 그 장소로 가는 길이나 이런 다른 것들이 기억나는 게 있을까요?

나: 아니요. 다른 것은 전혀 기억이 없어요. 그냥 건물 앞에 술에 취해 잠든 아빠가 누워있고 엄마는 그 옆에 서있는 모습. 저는 자지러지게 울고 있고 옆에 유리병이 깨져서 산산 조각난 장면. 이게 흑백사진 한 장처럼 남아있어요.

상담사: 그렇군요. 또 다른 기억은요?

나: 유치원 때 집이 언덕 꼭대기에 있었는데 유치원 셔틀버스를 타려면 그 언덕길을 내려와야 했어요. 그때 할머니가 저를 키워주고 계셨는데, 하루는 눈이 정말 많이 왔어요. 그날 할머니가 빗자루로 눈길을 쓸면서 앞서가면서 길을 내주고 제가 그 뒤를 따라갔던 기억이 있어요.

상담사: 아. 그래요. 할머니가 키워주셨군요. 할머니랑 같이 사셨겠어요.

나: 네. 학교 가기 전까지 한 7년 정도 같이 산거 같아요.


상담사: 아. 7년. 그렇군요. 유치원에서 기억나는 일이 혹시 있을까요?

나: 제가 유치원에서 문제아였거든요. 한글 쓰기도 잘 못하고, 못하는 게 많은데 선생님 말도 잘 안 들어서 늘 혼났어요. 원아가 백명도 넘었던 거 같은데 저와 남자아이 둘 이렇게 셋이 항상 말썽꾸러기였어요.

상담사: 아, 그래요? 왜 혼났을까요?

나: 아무래도 말을 안 듣고. 예를 들면, 동그란 플라스틱 장난감 블록 같은 게 있었는데 그걸 끌어안고 있다던지, 그런 행동을 했어요. 친구들이랑 같이 공유해야 하는데 가지고 놀지도 않으면서 끌어안고 있는 그런 행동을 하니 말썽꾸러기 그룹에 속했겠죠.

상담사: 아. 친구들과 같이 가지고 놀지 않고 혼자 가지고 있었군요. 왜 그런 행동을 했던 거 같으세요?

나: 아무래도 엄마 아빠는 일한다고 바쁘고, 매일 싸우고. 그런 환경이었으니 애정결핍이 있지 않았을까요? 관심을 받고 싶은 마음은 강한데 좋은 행동을 해서 관심을 받는 방법을 모르니 좋지 못한 행동으로라도 관심을 받고 싶었던 거겠죠.


상담사: (긍정하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요. 초등학교 때는 기억은요?

나: 초등학교 때에도 부모님은 계속 싸우셨고, 학교에서는 교사들의 체벌이 심했어요. 저도 많이 맞았죠. 남자 짝한테 맞은 기억도 있고요. 아마 초등 6년 통틀어서 친구한테 맞은 일이 한 번인 거 같긴 한데, 그 짝 이름도 기억나요. OO이. 성은 기억이 안 나지만.

상담사: OO이. 그렇군요. 그래서 그 아이는 선생님한테 혼나게 됐나요?

나: 네. 그런 것 같아요.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저를 때렸다는 이유로 선생님한테 맞은 거 같아요. 사실 '어떤 상황에서도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라는 것을 인지한 시점이 매우 늦었던 거 같아요. 10대 중후반? 어쨌든 너무 늦게 알게 된 거 같아요. 어디서나 폭력이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고 있었으니까요.


상담사: 아이고. 정말 힘들었겠어요. 중학교 때는 어땠어요?

나: 중학교 때부터는 집안 사정이 (경제적으로) 나아져서. 음. 나아진 부분도 있었던 거 같아요. 엄마가 청약을 한 건지, 아무튼 아파트로 이사를 가게 되고 환경이 나아졌어요. 그 전에는 항상 주인이 있는 주택에 뒷방, 대문에서는 안 보이는 작은 방에 살았었거든요. 중학교 때 특별한 기억은 없네요. 공부를 정말 못했었는데, 엄마가 집 앞에 공부방을 보내준 이후로 성적이 많이 올랐어요. 그때부터 '아 이거 되는구나'싶어서 공부를 잘하고 싶었어요.


상담사: 그랬군요. 고등학교 때는요?

고등학교 때도 중학교 때랑 비슷한데, 공부를 잘하고 싶었던 거 같아요. 그때도 부모님은 자주 싸웠고요. 고2 때였던 같은데, 그날도 부모님이 심하게 싸우고 아빠가 바깥으로 나갔어요. 그때 평소와 다르게 엄마가 제 방으로 와서 울더라고요. 그때는 아파트에 각자 방이 있었어요. 그때 무언가 '이때다' 싶어서 엄마한테 이혼을 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말했어요. 그냥 즉흥적으로 한 말이 아니라, 정말 오래 생각하고 한 말이었어요. 아마 엄마를 위해서라고 이유를 들었던 거 같은데, 사실 제가 그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엄마를 위한다는 핑계를 들어 말한 거 같아요. 99%는 저 자신을 위한 거고 1%는 엄마를 위한 거였을 거예요.

상담사: 그랬군요. 정말 솔직하게 이야기하시네요. 스스로를 위해서가 99% 였다니.

나: 하하. 네. 이혼하라는 저의 말에 엄마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눈빛이 이혼을 안 할거 같더라고요. 좌절이었어요. 그런데 신기한 건 제가 스물한 살 정도, 그러니까 대학교 2학년 때쯤부터 부모님이 갑자기 안 싸우시더라고요. 모르죠. 제가 안 볼 때 싸웠는지는. 적어도 제 앞에서는 싸우지 않았아요. 신기한 일이죠.

상담사: 그러게요. 정말 신기하네요. 뭔가 계기나 이유가 있을 텐데요.

나: 저도 궁금해서 엄마한테 몇 번 물어봤는데, 그냥 단순하게 '포기'했다고 하더라고요. 엄마가 가지고 있던 주식이 올랐던 걸까요? (그래서 마음에 여유가 생겼을지도 모르겠네요.) 하하. 아무튼 제 인생에서 앞에 21년은 그렇게 매일 싸우더니, 뒤에 16년은 그럭저럭 잘 지내더라고요. 차라리 앞에 잘 지내고 뒤에 싸웠다면 더 나았을 텐데.

상담사: 그러게요. 맞네요. 바뀐 게 나았을지도 모르겠네요. 자, 눈을 한번 감아보세요. 눈을 감고 양팔을 이렇게 크로스로 자신을 안아주는 것처럼 해보세요. 그리고 이렇게 한번 말해보실래요? "어린 시절부터 이렇게나 힘들었는데, 너무나도 잘 컸구나. 이런 환경에서도 이렇게 바르게 잘 자랐구나."이렇게요. 말해볼 수 있겠어요?

나: 아니요......

상담사: 네. 좋아요. 그럼 말하지 않고, 양팔을 그대로 둔 채 제가 한 말을 속으로 생각만 해보세요. "어린 시절부터 이렇게나 힘들었는데, 너무나도 잘 컸구나. 이런 환경에서도 이렇게 바르게 잘 자랐구나."

나: 네.

상담사: 잘하셨어요.

나: (시계를 보며) 이제 거의 시간이 다 된 건가요?

상담사: 네. 오늘 상담을 정리할 시간이에요. 오늘 이렇게 어렸을 때 이야기를 나눴는데 어떠셨어요? 좋았던 점이 있으실까요?

나: 네. 제 이야기를 정말 잘 들어주시니 좋았어요. 친구들한테 이야기하면 불행 배틀이 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것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더 힘들었다.' 이런 식으로. 그냥 차분히 들어주시니 마음이 좀 홀가분해진 거 같아요.

상담사: 그래요. 다행이에요. 아까 말씀드렸던 TCI 검사지예요. 어렵진 않아요. 그냥 편하게 읽어보시고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면 0, 그렇다는 3, 이런 식으로 체크해주시면 돼요.

140문항의 TCI 검사를 마치고 상담실을 나왔다. 결과를 얼른 보고 싶었지만, 이번 주와 다음 주는 상담사가 휴가라서 2주 후에 상담 일정을 잡았다. 두 번째 상담, 아직 이렇다 할 변화는 없지만 내가 나를 위해 무언가 하고 있다는 것,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들었다. 나아질 수 있을 것 같은 희망도 조금씩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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