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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가J Sep 27. 2023

케냐, 마사이마라. 다시 돌아간다면 이 곳으로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 나는 몰랐다.


나는 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휴양지인 여행지는 재미없다.

나는 물보다 산을 더 좋아한다. 그래서 동물이 뛰어노는 초원이 너무 좋았다.

나는 쇼핑보다 체험하고 액티비티 하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이런 사람이었다. 가장 여실히 깨달았던 나라가 케냐이다.



어디선가 품바가 튀어나올 것만 같은 케냐의 마사이마라 한 복판이다.

인간이 만들어놓은 우리도 울타리도 없는 드넓은 초원에서 2박 3일동안 게임 드라이빙을 한다.

시력이 좋은 드라이버를 만나면 BIG 5를 모두 볼 수 있는 행운도 있다.

나는 사자, 표범, 사막여우, 하마 등등을 봤는데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했다.



동물원에서 수없이 봐온 익숙한 아이들이었다.

목이 긴 기린은 넓은 들판을 여유롭게 걸어다니며

 유유자적 동네를 떠돌아다녔다.

둥근게 둘러쳐진 울타리 안이 아니라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는 자유로움이 있었다.

이 모습이 신기한 나는 문명화된 사회에 살고 있었다.

슬픔이 없는 기린의 눈빛은 보는 나도 행복하게 했다.



점심 때가 지나면 사자들이 발라당발라당 드러눕는다.

인간처럼 배가 부르니 잠이 오는지 수풀이 우거진 곳에 자리잡고 누워 눈을 껌뻑이고 있다.

얼굴에는 지난 날의 흔적이 가득하다.

어느 동물과의 싸움에서 생긴것인지

긴 흉터가 얼굴을 가로질러 있었고

매서운 눈빛은 거친 야생의 삶을 보여주는 듯 했다.

힘 없이 축 늘어져있는 동물원의 사자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날 것 그대로의 사자였다.



사자가족은 사냥한 저녁식사를 맛있게 하고 있었다.

엄마와 아빠는 먼 발치에 물러나있었고

아기 사자들은 장난치고 뒹굴며 즐겁게 저녁식사를 했다.



아기들 살을 발라주기 위해 사냥감을 

이러저리 헤집어 놓은 암사자이다.

인간이 썰어서 넣어주는 고기가 아닌

목숨을 걸고 잡아낸 저녁식이다.

지금 이 싸움에서 지면 자기 새끼들도 굶어죽고 자기도 죽을 수 있는 위기를 매일 넘기는 녀석들이다.

거리를 두고 마주한 사자 가족의 모습들은

한없이 평화로워 보였다.

적당한 온도에 적당한 포만감 모두가 잠들 준비를 하는 저녁의 여유로움

자는 순간에도 경계 태세를 갖추어야 하는 그들이지만 왠지 그 모습들이 너무나도 좋았다.


이게 사자지.


인간의 욕심에 슬픈 눈을 한 동물들을

이제는 더 이상 못 볼것 같다.



한참 사진을 찍고 있으니 드라이버 패트릭이 말했다.



" 사진도 좋은데 말이야, 멋진 노을을 등 뒤에만 두지마 "



사자 가족에 푹 빠져있던 나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뒤로 돌렸다.

그리곤 마주할 수 있었다. 내 생에 가장 아름다운 노을을.


시선을 가로막는 고층건물도 없고

화려한 네온사인이 하늘에 번지지도 않고

시끄럽게 울려대는 경적소리도 없고

오로지 자연으로만 가득한 완벽한 노을이었다.

빨간색, 주황색 핑크색 노란색으로 이어지는 하늘의 무지갯빛 망토는

그렇게 서서히 나의 머릿속에 마음속에 스며들었다.


넓은 들판에 나무 한그루. 그리고 하늘

누가 보면 텅 비어보이겠지만 나의 눈엔 가장 완벽하고 풍성한 그림이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이렇게 멋있을 수 있구나.

더 채워넣으려고 하기 전에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삶을 살아야되겠다.



지금 그 사자가족이 표범이 기린이 사막여우가 살아남아있는지 모르겠다. 죽었다면 그것도 자연의 섭리겠지.

하지만 그 노을만큼은 여전했으면 좋겠다.

지금 가도 내가 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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