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 알람벨이 울린다. 터키에 온 첫번째 이유인 열기구 투어를 하는 날이다.
5월의 튀르키예 새벽은 춥다. 두꺼운 외투를 입어도 입어도 이가 딱딱 부딪친다.
잠이 덜 깬 얼굴로 숙소문을 열고 나왔다. 깜깜한 밤에 불빛 하나 보이지 않는다.
하늘에는 별이 가득하지만 낭만을 느낄 정신이 없다.
바람소리는 한국 겨울바람처럼 매섭다. 사람들의 말소리도 없고 오가는 차량 소리도 없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내 머릿속에는 온갖 합리화가 떠오른다. 예정시간보다 늦는 픽업에 합리화는 가속화된다.
' 그냥 들어가서 잘까? 뭐 얼마나 좋을 거라고. 얼어죽겠다. '
들어가진 않겠지만 인상 팍- 쓰면서 픽업차량을 기다린다.
여행은 늘 이렇다.
설레임을 가득 안고 왔지만 언제나 기다림의 연속이고 지루함과 싸워 이겨야 한다.
찰나의 순간, 머릿속에 떠오르는 온갖 변명들을 버릴 수 있어야하고
내가 선택한 것에 대해 겸허히 받아들이고 즐길 수 있어야 한다.
10시간이 넘는 야간버스, 새벽같이 일어나야하는 기상시간, 절대 맞춰지지 않는 픽업시간
인도 자이살메르의 살인적인 더위가 따뜻했었던 것 같은 착각이 들 때쯤
저 멀리서 희미한 불빛이 비춰온다. 곧 차 한대가 숙소 앞에 멈춰선다.
새벽기상을 해내고 추위를 견딘 사람들이 차 안에 가득하다.
피곤함, 추위에 대한 짜증이 없고 설레임과 즐거움만이 가득하다.
" 헬로- "
" 헬로-, 밖에 너무 춥군. "
" 그러게. 어디서 왔어 ? "
한국에서는 하지 않던 가벼운 인사가 여행지에서는 습관이 되었다.
행복한 순간을 마주하고자 떠나온 사람들에게 건네는 조그만 응원과 안녕은
늘 마음의 온도를 1도 높여준다.
스몰토크를 이어가다보면 수십대의 차량이 모여있는 곳에 도착한다.
형형색색의 커다란 벌룬들이 땅바닥에 몸을 누이고 있고 하늘의 검은 장막은 어느새 걷혀가고 있었다.
뜨거운 불길이 지펴지면 벌룬이 서서히 부풀어오른다.
동그란 모습을 보이면 얼른 열기구에 올라타야 한다.
하늘로 날아갈 시간이다.
야간버스를 타고 카파도키아에 도착해 한 숨 자고 동네를 돌아다녔다.
두 발을 땅에 디디고 돌아다녔을 때는 몰랐던 카파도키아의 진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요정들의 집인 것 같은 기암괴석은 카파도키아 전체를 감싸고 있었고
어디선가 팅커벨이 기지개를 키며 날아올 것만 같았다.
태양이 서시히 올라왔고 햇빛을 받은 열기구들은 더욱 찬란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발바닥 아래, 지구의 것이 아닌 것 같은 바위들은 햇빛과 교감하며 시시각각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빨주노초파남보 다양한 색깔의 벌룬들이 하늘을 유영했다.
이렇게 동화같은 풍경을 본 적이 있었던가.
내가 살아가는 세상안에 또 다른 세계를 발견한 것 같았다.
카파도키아에서는 배울 수 있었다.
이 세상안에는 다양한 세계가 있다는 것.
팅커벨의 동네, 사자가 뛰어노는 세렝게티의 동네
고층빌딩 가득한 맨하튼의 동네, 소똥과 살아가는 갠지스의 동네
고고한 안나푸르나의 동네, 낭만이 가득한 에펠탑의 동네
이 세상을 즐겁게 살아갈 이유를 배웠다.
무서움과 두려움이 있을 미래지만, 그보다
아직 내가 발견하지 못한 세계를 발견할 날이 가득한 미래가 얼른 왔으면 좋겠다.
여행은 그렇게, 삶을 즐겁게 열심히 살아갈 이유가 되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