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주관적인 에세이 1
불혹: 나이 40세를 이르는 말.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게 되었음을 뜻한다. 공자가 40세에 이르러 직접 체험한 것으로, 《논어》〈위정편(爲政篇)〉에 언급된 내용이다.
라고 네이버에 나와있다.
40세, 그래 불혹을 한 달 앞두고 있다. 아홉수라 그런가. 올해 초부터 생각이 너무 많아서 괴로웠다. 어릴 때는 마흔이 되면 한자리 차지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한자리는 커녕 이뤄놓은 것도 없고 앞으로가 크게 기대가 되지 않았다. 그런 점이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왔는데, 돈을 좇아야 했었나 싶었다. 좋아하고 재밌는 일은 돈이 안된다.
입시할 때 대학 배치표를 펼치고 답답했던 그 시절이 떠올랐다. 좋은 학교를 가기엔 부족하고, 그렇다고 후진 학교를 가기엔 넉넉한 그렇게 애매한 점수를 받아 참 애매한 위치이던 내가 말이다. 대학은 문을 닫고 가는 게 제일 좋다고 하는데 나는 이런 애매한 점수 덕택에 수석으로 합격했다. 전혀 기쁘지 않았다. 어려운 살림에 보탬이 된다는 점 빼고는 하나도 좋지 않았다. 좋은 학교를 꼴찌로 가고 싶었다.
회사생활을 10여 년 하고 나니 그 애매했던 내 위치는 달라질 줄 알았는데 여전히 그대로다. 나는 좋은 회사를 가기에는 부족하고 그렇다고 후진 회사를 가기엔 넘치는 사람이었다.
지난 회사는 한 스타트업 회사의 자회사 개념이었는데, 그 자회사에 있기에는 내가 넘치고 그렇다고 본사에 가기엔 부족한 사람이라고 평가받는 듯했다. 결국 나는 거기를 떠났고, 그 이유에는 애매한 나의 위치 때문이었는데 요즘 그곳을 함께 다녔던 팀원들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다들 스스로 애매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여기에 있기에는 아까운 사람인데, 그렇다고 내 눈높이에 맞는 곳에는 부족한 사람인 거다. 우리는 대체 어느 자리에 있어야 꼭 맞는 자리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운이 좋아 나보다 넘치는 회사를 가야 제 자리를 찾았다고 생각할까?
불혹의 나이가 가까워졌는데도 여전히 나는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고 판단이 흐려진다. 특히 나 스스로에 대한 판단은 더욱 그렇다.
타인에게는 희망을 쉽게 말하면서도 나 스스로에게는 희망을 심어주지 못한다. 희망이 없는 30대 마지막은 참으로 불행하다.
나는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끝없는 고민 속에서 답답함 안에서 그냥 나는 지극히 주관적인 이야기를 쓰기로 결심했다.
항상 누가 읽어주길 바라는 글만 써왔는데, 그냥 이제는 나를 위한, 내 마음을 보살피기 위한 글을 써보기로 했다.
아 모르겠다. 어떻게든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