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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정 Feb 23. 2024

판교 사투리 적응하기

사십 대의 스타트업 생존기 1

코로나가 시작하기 직전, 여행 기자 생활을 마치고 우연한 기회에 스타트업 씬으로 넘어왔습니다. 첫 스타트업은 여행 분야의 스타트업이었는데, 같은 여행 콘텐츠니까 비슷하겠거니 했죠. 구성원의 평균 연령이 20대 중후반이라 해서 그 얘기를 듣고 세대 차이만 극복하면 되겠다 싶었습니다. 아니 웬걸. 세대 차이는 없었는데(?) 프로세스, 시스템, 심지어 쓰는 툴이나 대화에서 사용하는 단어까지도 너무 생소해서 초반에 난처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흔히 말하는 판교 사투리라고 스타트업 씬에 있는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는 용어들이 있었는데, 경력직으로 들어간 터라 누구에게 속 시원하게 물어보지도 못하고 이리저리 검색하기도 했습니다. 실제 쓰는 단어의 의미와 다르게 사용되는 경우나 프로세스에 관한 단어가 있어서 검색해도 나오지 않아 난감 했습니다.


오죽하면 스타트업이 많은 판교에서 자주 사용하는 말이라고 해서 약간 놀리듯 ‘판교 사투리’라고 부를까 싶었죠. 스타트업 문화가 미국 실리콘 밸리에서 왔기 때문에 실리콘 밸리 용어를 그대로 쓰는 경우가 많아서라는데, 처음 이런 용어를 접하는 사람이라면 당황할 수밖에 없습니다.


“신규 프로젝트는 린하게 MVP로 출시해보시죠! 잘 안되면 피보팅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이번 프로젝트의 R&R을 명확하게 정하면 좋겠습니다. 내일부터 관련 스크럼 하겠습니다.”


“이번 프로젝트 랩 업 (wrap-up)방식은 KPT로 하면 좋겠어요. 얼마나 OKR을 달성했는지 나눠보면 좋겠습니다.”


스타트업에 재직하고 있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해석해 드리면 아래와 같습니다.


“신규 프로젝트는 빠르게 최소한의 요건이 충족되는 제품(Minimum Viable Product)으로 출시해 보시죠! 잘 안 되면 시장의 변화에 맞게 사업의 방향을 신속하게 전환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이번 프로젝트는 각각의 역할과 책임을 명확하게 정하면 좋겠습니다. 내일부터 15분 동안 빠르게 현재 상태를 공유하고 서로의 경험을 나누는 회의를 빠르게 진행하겠습니다.”


“이번 프로젝트 회고 방식은 좋았던 부분, 문제라고 생각하는 부분,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실천하면 좋을 부분을 나눠 얘기하는 방식으로 하면 좋겠어요. 얼마나 성과를 달성했는지 나눠보면 좋겠습니다.”


잘 이해 가시나요? 굳이 왜 저렇게 영어를 과다하게 사용하고 그러나 싶은 생각도 종종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밌는 점이 저도 어느새 이런 용어를 사용하면서 그들과 싱크(Sync)를 맞추고 있습니다. 얼라인(Align) 된 거죠. 크크크. 이 두 단어도 스타트업 씬에서 많이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이제 제 입에 붙어버렸다고요. 후훗.


한 사람이 사용하는 단어의 조합만 봐도 그 사람의 인품이나 배경 등을 알 수 있다고도 하더라고요. 누군가 저를 보면 스타트업 사람인지 다 알겠죠? 어색하기만 했던 이런 단어들이 제 입에서 술술 나오는 걸 보니 저도 스타트업 사람 다 되었나 봅니다.


앞으로 최소 10살 이상 차이 나는 구성원들과 생소한 프로세스, 툴, 용어를 사용하면서 좌충우돌하는 40대의 스타트업 생존기를 쓰려고 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이 글은 지난 해 얼론 앤 어라운드 뉴스레터에서 연재했던 것을 브런치로 옮긴 것입니다. 얼론 앤 어라운드 뉴스레터는 일과 삶, 여행, 인생을 담은 뉴스레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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