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일기인척 하는 나의 성장기 7
엄마가 3박4일 아이를 보러 온다는 명목으로 우리집에 왔다. 엄마가 온다고 한 날부터 오라고 해놓고, 알겠다고 했는데 막상 그 날이 다가오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이기적인 엄마는 자기 중심적인 대화만 할 거고 이상한 말을 우길텐데 그걸 또 남편과 내가 들어야 한다는 거만으로도 답답했다. 게다가 시부모님이 엄마가 왔다고 인사를 하러 오실텐데 그 모두와 함께 있는 상황은 정말이지 미칠 것 같이 싫은데말이다.
그래도 엄마는 아빠가 돈을 벌어오지 않고 우리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그런 생활 속에서 아등바등 돈을 벌고 살림을 하고 우리를 키웠기 때문에 엄마에 대해서는 원래 연민이 컸다. 그래서 엄마에게는 성인이 되고 나서 화를 낸 적도 없고, 엄마가 하자는 것도 다해주고, 돈도 주고, 여행도 보내주고 최선을 다했다. 엄마가 너무 불쌍해서.
근데 아이를 낳고 40일 경에 남편이 집에 없어서 2주간 엄마가 집에 와서 아기를 같이 봐줬다. 신생아 시절이라 24시간 동안 먹고 자고 싸고 하는 때여서 잠도 못 자면서 아기를 같이 봤다. 아마 내가 유치원 시절 이전이 아니고서는 그 이후로 엄마와 24시간 붙어서 3끼를 같이 먹고 하루종일 집에서 갇혀 있던 적이 있었을까. 엄마와 지낸 2주간의 기간은 나에게 거울치료를 하게 해준 동시에 엄마에게 질리는 시간이 되었다. 남편이 그토록 싫어하던 나의 모습은 다 엄마에게 배운 거였다. 엄마에게서 남편이 싫어하는 나의 모습을 본게 한두개가 아니다. 사실 엄마의 그 모습을 나는 싫다거나 이상하다고 못 느끼면서 살았는데, 나와 남편이 결혼을 하고 싸우는 과정에서 나에게서 싫어하는 점이 어떤 것인지 알게됐다. 그 모습은 엄마에게 있는 모습이었다.
예를 들어 무심결에 쓰레기나 물건들을 아무데나 늘어놓는다던지, 그걸 절대 치우지 않고 방치한다던지, 오직 내 중심적으로 생각하거나 대화해서 대화중에 급 화제를 돌린다던지, 핸드폰이나 딴짓하느라 실컷 얘기하는 사람의 말을 건성으로 듣는다던지 하는 것말이다.
우리집은 깨끗한 적이 별로 없었다. 치우는 것도 배워야 안다. 나는 물건이 널어져 있고, 제대로 정리가 안된 집에서 계속 살아왔으니까 그게 이상한지 몰랐다. 좀 물건이 늘어져 있으면 어때. 나중에 치우지 뭐. 이런 식으로 청소를 미루고 미루고 옷들이나 짐을 쌓아두고 그랬다. 깔끔한 집이 될 수 없었던 건 수많은 이사 탓도 있겠지. 초본에 수없이 다닌 이사 흔적을 누군가에게 보여줘야 하는 상황이 오면 좀 창피했다. 나의 과거를 들킨 것 같아서.
씻고 정리하고 일상을 어떻게 영위하는지도 배워야 안다. 그걸 배우지 못한 나는 이상한 채로 자랐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조금씩 배워갔다. 지금의 나는 부모가 만든 것이 아니다. 사회생활 눈칫밥으로 하나씩 배웠다.
엄마가 집에 와서 양말을 벗어서 아무데나 놓고 자기 물건을 방에 늘어놓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 엄마는 여전하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걸 내가 치워줬다.
저녁에 아이를 재우고 엄마와 나가서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때에 그동안 엄마가 나에게 수백번 말하던 내가 듣기 싫어하는 소리를 내내 했다. 보통이면 듣고 넘기고 참는데, 이제는 참을 수가 없다. 그래서 지금까지 쌓아둔 이야기를 다했다. 다행히 울지 않았다. 울지 않은 내가 어찌나 대견한지. 엄마가 적잖이 놀랐다. 내가 지금까지 이런 적이 없었으니까. 세세한 이야기를 적고 싶지만 그건 하나씩 에피소드로 풀어도 될만큼 너무 많다.
수많은 말을 하면서 엄마는 내가 자살할 만큼 힘들었다는 걸 몰라. 내가 자살했어야 엄마가 아빠가 잘못을 좀 깨달았을까 라는 말을 했다. 부모에게 자식이 이런 말을 한다니 기함하는 사람도 있겠지. 근데 진짜다. 나는 20대, 30대 초반 결혼 전까지 자살을 머릿속에 두고 살지 않은 적이 없었다. 이런 상황을 벗어나는 건 죽는 거 뿐이라는 생각이었다.
엄마에게 내 속 마음을 내 생각을 털어놓으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엄마도 제발 그렇게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나마 엄마에겐 애정이 남아서 이렇게 얘기라도 하는거다. 아빠는 내 마음 속에서 지웠다. 연약하고 부모말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아이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고 이제와 자식에게 돈과 효도를 바라는 아빠에겐 질렸다. 나는 한번 버리면 절대 용서하지 않는 사람인데, 우리 가족만 그걸 모른다.
부모가 되니까 부모가 나에게 한 짓이 얼마나 말도 안되고 잔인하고 무자비한 것이었는지 깨닫는다. 오직 보호와 사랑으로 감싸도 부족할 아이에게 그렇게 하다니. 속에서 열불이 난다. 이런 마음도 언젠가 흘려보내야하는데, 아직이다.
덧.
제목을 3번이나 지웠다 다시 썼다.
처음 제목은 엄마는 내가 자살했어야 내가 얼마나 힘든지 알았을텐데
두번째는 내가 죽거나 망해야 했는데
결국은 내가 망했어야 했는데로 제목을 먼저 지었다.
위에 두 제목은 브런치에서 놀랄까봐 ㅎㅎㅎ 죽거나 혹은 망하거나 이런 제목으로 지을걸 그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