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일기인척 하는 나의 성장기 6
나는 화가 났을 때 즉시 표현하지 못한다. 일단 참는다. 나 스스로 예민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기 검열을 심하게 한다. 이거 혹시 나만 기분 나쁜거 아닐까? 다른 사람은 넘어가는 일 아닐까? 하고 대부분 참는다. 그러다가 도저히 못 참게 되는 지경에 이르면 그 사람을 안보는 상태가 된다.
남편은 안보고 살 수 없으니까, 남편에게 화가 날 때는 대체로 감정이 폭발하듯 표현하게 된다. 당연히 남편에게도 지속적으로 참는다. 그러다 쌓이고 쌓이다 보면 어느 작은 사건이 트리거가 되어서 그동안 쌓아뒀던 일을 마구마구 쏟아낸다. 심지어 그걸 얼굴 보고 얘기도 못해서 아주 장문의 카톡을 보낸다. 이건 남편이 가장 싫어하는 행동이다. 화가 나는 게 있으면 그때그때 이성적으로 얘기하고 풀자고, 모아놨다가 쌓아둔 걸 장문의 카톡으로 풀어내지 말라고 지난 10년 내게 말했다. 안 고쳐진다.
일 년쯤 상담을 받고 있는 선생님과도 이런 나의 성향에 대해서 늘상 이야기 했다. 그때마다 선생님은 예민한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고 하나의 성향일 뿐이고, 예민하면 또 어떠냐며 그것이 장점이 될 수도 있고 잘 받아들이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안다.
그런데 순간 기분 나쁜 일이 생기면 일단 그 기분에 확신이 들지 않는다. 이거 나만 이렇게 느껴서 나만 이상한 사람되는거 아냐? 라고. 사실 좀 이상한 사람이 되면 어떤가 싶지만 내 감정에 대해서 부모가 특이하다 희한하다는 반응을 너무 많이 보였던 탓에 나는 내 감정을 자꾸 자기 검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담도 받고 병원도 다니고 하는 이유는 이런 나의 성향이 아이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상담 선생님이 만약 아이가 그런다면 어떤 조언을 해주겠냐고 물었을 때, 나는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자 당연히 아이의 감정을 존중해주는 말을 해줄거라고 대답했다.
기질은 보통 부모에게서 온다. 꽤 예민한 편인 나와 남편 사이에서 무던한 아이가 나오기 바라는 건 욕심이라는 것을 안다. 아이에게서 벌써 예민한 기질을 발견할 때 나는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 앉는다. 예민한 사람의 삶이 어떤 것인지 너무 알기에, 미안한 마음이 든다.
언젠가 어디서 본 글귀가 있었다.
바늘에 찔리면 바늘에 찔린 만큼만 아파하면 된다. ‘왜 내가 바늘에 찔려야 했나’, ‘바늘과 나는 왜 만났을까’, ‘바늘은 왜 하필 거기 있었을까’, ‘난 아픈데 바늘은 그대로네’, 이런 걸 계속해서 생각하다 보면 예술은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사람은 망가지기 쉽다.
- 도대체, 《일단 오늘은 나한테 잘합시다》(위즈덤하우스)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예민한 기질은 많은 생각을 꼬리에 물게 만들고, 위축되게 만들었다. 물론 그런 기질 덕에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고, 일을 기민하게 잘해서 사회적으로 인정도 많이 받았다. 그래도 아직까지 예민한 나를 인정하지 못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예민한 나는 이성적으로 화를 내지 못하고 쌓아두다가 폭발하거나 손절한다. 이런 패턴이 지속적으로 반복된다. 이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다. 화가 나는 이유가 전부 예민함 때문은 아니고, 예민함을 가진 내가 스스로 화가 나는 감정을 누르는게 문제다.
아이가 예민한 기질을 가졌다 해도 예민함은 하나의 캐릭터고 옳고 그른, 좋고 나쁜것으로 평가될 것이 아니라고 말해줄 것이다. 하지만 엄마 스스로는 그렇게 하고 있지 못하다면 그건 전달되지 않는다. 오늘도 나는 아이에게 말뿐인 엄마가 되지 않기 위해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완벽한 엄마가 되고 싶다기 보다 스스로든 아이에게든 온전히 감정과 생각을 존중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