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01. 완벽주의자의 우울
그날 너는 죽지 않았다.
죽음을 경험하는 대신 살아남아, 마음속 한켠에 숨겨둔 회고록을 발견했지. 우울하고 고통스러운 모든 순간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속마음. 아침 햇살의 따뜻함에 눈을 뜨고 한낮의 바람에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크지 않아도 소소한 삶에 대한 소망. 죽고 싶은 마음, 그 너머에는 온통 그런 것들이 가득했어.
하지만 네 삶에 뭐 하나 쉽고 간결한 게 있었어야 말이지. 라디오 사연으로 나올 법한 에피소드는 한두 개쯤이면 충분했을 텐데, 평생 한 번 겪을까 말까 한 일도 한 번이면 되는데, 왜 네겐 그런 일이 유독 잦았을까.
평탄한 행복은커녕 평범한 휴식조차 뒷전이 되어 버린, 호흡보다 한숨이 두드러지는 세상. 너의 세상은 늘 그런 식이었고, 그 세상을 조금이라도 나은 모양새로 바꾸려면 대가가 필요했어. 그건 안타깝게도 너의 바람과 반대되는 선택을 해야만 얻을 수 있었고. 결국 나아지는 건 없었어. 모든 것이 반복되기만 했지.
때로는 잘 살고 싶은 마음이, 사람을 죽고 싶게 하기도 해. 그 마음이 사람을 우울로 밀어 넣고 죽음이라는 단어 가까이 끌고 가. 직접 내려가 보지 않으면 절대 공감할 수 없을, 날카로운 칼날과 숨통을 억죄는 목줄로 가득한 그 밑바닥까지. 네가 삶에 매달리기보다 죽음에 자신을 매다는 걸 선택했던 이유도, 그래서였을지도 모르겠다.
우울의 세계에서는 모든 것에 무감해져. 삶을 아름답게 보라는 말들이나 연애를 해보라거나 취미를 가져보라는 온기 섞인 말들은 매번 차게 식어. 긍정적이건 능동적이건, 그 어떤 행동양상에 불을 붙이기 위한 연료는 쉽게 휘발되어 공중으로 흩어지고.
무뎌지는 데 익숙해진 탓에 그 어떤 것에서도 위로를 받지 못하지. 너를 향해 다가오는 따뜻한 것들 중엔 나쁜 의도를 가진 것이 없단 걸 알면서도, 우울 밖의 세상이 건네는 좋은 말과 착한 조언은 '아직 잘못 살고 있다', '완벽하지 못하다'는 증명으로 돌아와 매번 너를 체념하게 만들었어.
어느 점심, 티타임 자리에 있던 한 사람이 "우울증 환자 중엔 우울증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우울한 상태에 머물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는 말을 지나가듯 던졌어. 그날 넌 그 말에 완전히 갇혀 버렸지. 그 사람은 네가 우울증 환자라는 걸 알지 못했으니 그 말이 너를 저격한 건 아니었을 텐데도.
언젠가부터 너의 고통은 타인에게 설명하고 이해시켜야 할 프레젠테이션 대상이 돼 있었어. 삶은 버거운 프로젝트였고, '여전히 잘못 살고 있다'는 성적표를 받은 기분이었어.
밤새 고민하고 자문했어. "이것보다 더 뭘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살아야 되는 거지?", "이렇게까지 해서 살아야 해?"
"더 긍정적으로, 더 능동적으로, 더 단단하게."
그런 말들은 네 상태를 묻지 않았어. 너의 오늘을 살피지 않은 채 그저 '완벽해야 한다', '노력하며 살라'는 방향만을 가리켰지. 마치 정지 버튼 없는 영상처럼, 멈추고 싶다는 말조차 허락되지 않는 것처럼. 그때부터였을 거야. 삶이 지겨워지기 시작한 건.
그땐 삶을 마음대로 멈출 수 없다는 사실이 원망스러웠어. 사람이 스스로 죽는 순간을 결정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 살아내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사실이 얼마나 잔인하게 느껴졌는지...
지금은 그 잔인함을 인정하기로 했어. 여전히 못마땅하고 마음대로 풀리는 거 하나 없지만, 사는 동안 맞이하는 모든 순간을 원망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그렇게 사는 건 너무 힘든 일이니까. 삶의 구조가 원래 그렇게 생겨먹었다는 걸 인정하고 나면, 이보다 더 나아지진 않더라도 최소한 견딜만해질지도 모르니까.
요즘은 묻지 않는 연습을 하고 있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왜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는지" 같은 질문 대신 오늘을 지나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명분만 문장 하나로 남겨 두는 연습. 잘 살 거라는 다짐이나 반드시 나아지겠다는 채찍질은 충분히 해왔으니까.
이것이 용기 있는 선택이길 바라. 매 순간 정답을 고르진 못하더라도, 완벽하지 않아도, 살아 있는 한 오답을 맞이할 일은 없을 거라고 믿고 싶어.
이 글은 내가 우리를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시도야. 너와 나의 삶은 그다지 사랑스럽지 않았고 어쩌면 앞으로도 그럴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우리의 편이 되어줄 문장 하나 정도는 남을 거라 믿으니까.
완벽이나 노력이란 말로 몰아세우는 삶 말고. '살아야 한다'는 억지 다짐으로 스스로를 세뇌할 필요 없이. 조금 부족해도 괜찮으니까 매일 한 줄의 문장만 남겨가며 하루를 채워 나가자. 그 하루가 한 달이 되고 일 년이 될 때까지 살아보자. 우리 안에 쌓인 문장들이 만들어 낸 기록에, 완성된 희망이 가득 차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