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03. 다시 흐르기 시작한 시간
평생 잊지 못할 거야. 넘실대는 우울과 끝없이 솟아나는 생각을 병으로서 인정받았던 그 순간을.
면죄부를 얻은 기분이었지. 본질적인 화해나 구원이 되어 주지는 못하지만 최소한 자신을 돌아보고 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는 점에서.
우울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좀 걸렸어. 하지만 헤맴 또한 의미가 있었지. 우울을 마주 볼 수 있게 된 덕에 스스로에 대해 몰랐던 것들을 알게 되었고 인정하게 됐어. 그렇게 너를 응원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된 거야.
이 시점에서 네게 줄곧 하고 싶었던 말을 하려 해.
지금까지 고생했어. 애쓰느라, 힘들어하느라, 살아내느라.
너는 자주 자책하고 자신을 몰아세우지만, 너는 그 무엇도 잘못하지 않았어. 매 순간 최선을 다했을 뿐. 너는 자주 자신을 실패자로 여기지만, 너는 단 한 번도 잘못 살지 않았어. 최선을 다해 발버둥 쳤을 뿐.
나만은 알아. 너의 모든 선택은 최선이었어. 너는 단 한 번도 너 자신을 속인 적이 없었어. 올곧게, 어쩌면 미련하게 노력했지. 그 노력이 좋은 결과를 보장해주진 못했을 뿐.
나는 그저 우리가 살아 있는 이 순간을 온전히 기쁘게 생각해. 살아 있다는 것만큼 생에 이룰 수 있는 최선이자 최고의 증명이 또 있을까.
앞으로도 여전히 삶의 여러 파도에 흔들리겠지. 최선을 다해 살아도 늘 최고의 결과가 나진 않으니. 소소한 깨달음과 살아감에 대한 용기를 단 한 순간에 짓밟아 버리는 존재들도 함께 여전하니.
그래, ...그 존재들. 그들을 잊고 있었네. 오늘은 우리를 흔드는 것들에 이야기해야겠어. 다시금 살아갈 용기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꺾으려 하는 수많은 것들의 일부인, 그들에 대해서 말이야.
지금까지 나를 가장 크게 흔든 존재는 나 자신이었어. 그런데 나 자신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얻고 나니, 지금까지 나를 흔들어 온 게 나 하나만은 아니었다는 게 보이더라. 그걸 깨닫고 난 뒤부터 나는 오랫동안 고민했어. 나를 흔드는 것들을 나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처해야 하는가. 어떻게 하면 나를 지킬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네게 전할 수 있을까.
내 경험을 조금 덧붙이자면, 내가 우울을 고백하면 모두가 나를 이해해 줄 거라고 믿었어. 친밀하고 가까운 사람들에게만 고백하기로 했으니까. 그런데 내가 생각한 거랑은 조금 다르더라. 이해해 주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섞여 있었고 그 차이가 나를 다시금 상처 입혔어.
왜 어떤 사람은 나를 이해하고, 어떤 사람은 예상과 달랐을까. 그 이유가 나에게 있는 건 아닐까. 혹시 내가 바랐던 대답이 있었던 건 아닐까. 그런 생각들에서 꽤 오랫동안 빠져나오지 못했지.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는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야. 나의 이 결론이 네가 같은 고민을 하게 될 때 도움이 되기를.
무엇보다 중요한 건 우울이나 공황 같은 병증을 떠나, 너를 온전히 이해하려는 사람과, 너를 확인하려는 자들을 구분하는 거야. 그 둘은 아주 달라. 사용하는 화법도 태도도 다르지만, 무엇보다 전자에게는 위로를 받지만 후자에게선 자괴감만 얻거든. 더 이상 스스로를 자책하지 않기로 결심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전으로 돌아가게 될 만큼, 크게 흔들리게 될 만큼 괴로워지지.
이해하려는 사람은 질문하지 않아. 들으려고 노력하지. 위로하려 애써 거창한 말을 꺼내지도 않고, 무언가를 캐묻기보다는 네가 계속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곁에서 들어주고 고개를 끄덕여 주지.
그러나 확인하려는 사람은 끝없이 질문해. 모든 대화와 반응이 온통 질문이지. 상대방의 우울과 쉬어감을 이해하지 못해서. 본인의 관점이 이해하기 어려운 상대의 방식보다 더 낫다고 여겨서. 본인의 질문이 상대를 불편하게 만든다는 것을 깨닫지 못해서. 상대의 마음보다 자신의 호기심 해소가 더 중요해서. 어쩌면 단순히 서툴어서.
그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이야기에 집중을 못한다는 게 느껴지더라. 내가 이야기하는 동안 본인의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 것 같았어. 혹은 다음 질문을 찾느라 집중을 못하는 것 같기도 했고. "그랬구나" 하고 별 거 아닌 이야기를 들은 것처럼 대하기도 하지만, 본인의 생각을 들려주려 하려는 경우가 많았고. 상당히 조심스럽다는 듯한 말투와 표정으로. 그러면 무례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한 번 시작하면 멈추질 않더라. 감탄하거나, 고마워하거나, 감동받거나, 눈물을 흘리며 멋진 조언이라고 반응하거나. 그런 반응 중 하나를 보일 때까지 멈추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었어.
물론 상대를 이해하기 위한 대화와, 본인의 의견을 피력하려는 대화가 다르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 본인이 상대를 위로하기 위한 것이 아닌 본인의 관점을 설파하려는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걸 모르고 있을 가능성도 높다고 봐. 나 역시 잘 모르고 있었으니까. ...그래. 아직은 그들을 이해해보고 싶기도 해. 미련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아무래도 미워할 수가 없어. 싫어지지가 않네.
애초에 불편하다고 딱 잘라 말할 수 있었다면 달랐을지도 몰라. 그들과 대화를 나눌 때마다 매번 자책했는데 단 한 번도 속마음을 표현하지는 못했거든. 어쩌면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 같아. 관계를 망칠 것 같아서가 아니라, 그들에게 "악의가 없다"는 걸 잘 알아서 그랬어. 그들이 “너를 걱정해서 한 말이었다”라고 말할 거라는 걸 확신하고 있어서 그랬어.
이해하려는 사람들과의 대화는 이렇지 않았어. 그들의 말은 훨씬 따스했어. 같이 울어주고. 안아주고. 나를 단 한 번도 의심하게 만들지 않았기에 그들의 대화가 확연히 다르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던 거야.
악의가 잘 벼려진 칼날이라면, 악의 없는 마음은 무딘 칼날이야. 무딘 칼날은 그 무엇도 깔끔하게 베어내지 못해. 살점이 너절대는 지독한 흔적을 남기지. 그리고 칼을 쥔 자는 칼을 휘두르기 전까지 그게 얼마나 날카로운지 알지 못해. 애초에 자신이 쥐고 있는 게 칼이라는 것도 모를지도.
그들이 우리와 친밀한 거리에 머무르고 있다는 건 충격적인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주변 모두를 경계하는 데 에너지를 쏟을 필요는 없어. 적어도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대화 앞에서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건 우리 자신뿐이라는 걸 잊지만 말자.
우울을 앓는 이들에게, 세상은 설명을 자주 요구해. 우리가 어떻게 우울을 겪게 됐는지. 엄살이 아닌 정당한 아픔이긴 한 건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세상이 이해하기 합당한지. 노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은 안 해봤는지. 판단하고 또 파악하려 들지.
그러나 모든 것을 설명할 필요는 없어. 모든 대화에 응할 필요도, 모든 질문에 답할 필요도 없다고 봐. 널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 앞에서 널 설명하려 애쓰지 않아도 돼. 이 모든 건 설득이 아닌 이해와 공감의 영역에 있으니까. 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건 너의 설명이 부족해서가 아니야. 그건 너의 문제가 아니라, 상대의 문제야. 이해는 의지 없는 사람에게는 끝내 닿지 않아. 그러니 설명 대신 거리를 두고 설득 대신 침묵을 선택해도 돼. 그건 회피가 아니라 너 자신을 지키는 방법이야.
무엇보다 너를 판단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너뿐이라는 것을 잊지 말길. 이해할 각오도, 자격도 없는 이들의 시선에 너를 내어주지 말 것. 너는 이미 충분히 너의 삶을 살아내고 있으니까. 그것이 네가 이룬 최선이자 최고의 증명이니까.
나는 한동안 이해받지 못한 대화를 곱씹으며 스스로를 의심하고 또 자책했어. 이제는 알아. 모든 대화가 나를 설명할 기회일 필요는 없다는 걸.
이게 나의 오랜 고민에 대해 내린 결론이야. 내가 나답게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최선이지.
이해하려 애쓰는 마음 앞에서는 조금 더 솔직해지고, 이해할 준비가 없는 대화 앞에서는 스스로를 지키는 것. 모두에게 이해받으려 하는 대신, 나를 잃지 않는 방향을 늘 우선순위에 두고 살아가는 것.
그저 이 글이, 나의 결론이 부디 네가 너를 지키는 데 도움이 되기를. 내가 나답게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기를. 이제 내가 바라는 것은 그것뿐이야.